유리 감옥의 아버지
1. 영하 40도의 심장부
유압식 래치가 풀리며 세 겹의 텅스텐 차폐 격벽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밀폐되어 있던 공간 내부의 공기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뿜어낸 것은, 사람의 폐포를 단숨에 얼어붙게 만들 만큼 혹독한 영하 40도의 한기였다.
지하 6층 최심부에 자리 잡은 원형 돔 형태의 공간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외벽을 따라 나선형으로 도열한 수만 대의 원기둥형 양자 블레이드 서버들이 푸른색과 보랏빛 냉각 액체를 뿜어내며 기괴하게 웅웅거리고 있었다.
"크윽, 빌어먹을…… 추위가 살을 찢는 것 같네."
박태호가 피투성이가 된 어깨를 감싸 쥐며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문턱을 넘었다.
그의 호흡이 허공에 닿자마자 하얀 얼음 알갱이가 되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강우진(姜宇鎭)은 추위를 느낄 새조차 없었다.
격벽을 통과하는 순간, 시야의 모든 것을 압도하는 기괴한 광경이 두 눈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돔 천장 한가운데, 수십 가닥의 굵은 고압 티타늄 파이프와 광케이블에 매달려 공중에 부유하듯 떠 있는 지름 10미터의 거대한 투명 구체.
그것은 방탄 강화유리로 주조된 구형 냉각 챔버였다.
챔버 내부를 가득 채운 청록색 전도성 냉각 액체 속에서, 한 남자가 무중력 상태처럼 허공에 떠 있었다.
뼈마디가 도드라질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몸.
피부는 15년 동안 햇빛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탓에 시체처럼 창백했고, 머리칼은 서리처럼 하얗게 세어 있었다.
남자의 목덜미와 척추를 따라 굵직한 인공 신경 전극과 광섬유 튜브 수십 가닥이 피부를 뚫고 깊숙이 박혀 있었다.
튜브를 타고 흐르는 형광빛의 연산 데이터 패킷들이 남자의 신경망으로 쏟아져 들어갈 때마다, 그의 바짝 마른 근육질이 고통스럽게 경련했다.
두 눈을 감은 채 차가운 액체 속에 갇혀 있는 남자.
15년 전, 테헤란로의 불길 속에서 아들의 관자놀이를 째고 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사람.
아버지, 강정호 박사였다.
쿵.
쿵.
격벽 너머에서부터 우진의 귓전을 때리던 55헤르츠의 극저주파 진동이 이곳에서는 공간 전체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기계의 구동음이 아니었다.
양자 컴퓨터의 연산 클럭과 억지로 동기화되어, 억지로 생명을 쥐어짜 내며 울리고 있는 아버지의 비정상적인 심장 박동이었다.
우진의 목구멍 안쪽에서 뜨거운 쇳물이 치솟는 듯한 통증이 번졌다.
"……아버지."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온 목소리는 한기 속에서 파르르 떨렸다.
도형을 보던 시각의 왜곡은 사라졌지만, 오히려 맨눈으로 마주한 현실의 참혹함은 망막을 칼로 베어내는 것보다 더 아프게 심장을 후벼 팠다.
15년간 시스템의 부품으로 갈려 나간 아버지의 껍데기가 저곳에 있었다.
2. 시스템과 융합된 의식
"우진 형, 저기 콘솔 모니터 좀 봐요!"
태호가 피 묻은 손가락으로 중앙 유리 챔버 바로 아래에 설치된 반원형 제어 콘솔을 가리켰다.
우진은 서둘러 콘솔 앞으로 달려갔다.
콘솔 상단의 홀로그램 모니터에는 수십 개의 상태 창이 붉은색 경전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SYSTEM INTEGRATION STATUS : 83.7%]
[HOST NEURAL COMPATIBILITY : OVERHEAT WARNING]
[CRITICAL ERROR : HOST SEPARATION ATTEMPT WILL CAUSE IRREVERSIBLE BRAIN DEATH]
[HOST STABILITY : 11.2% - SHUTDOWN THRESHOLD APPROACHING]
"83퍼센트……?"
우진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호스트 신경 통합률 83.7퍼센트.
이것은 아버지가 단순히 기계에 결속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강정호 박사의 뇌세포와 시냅스 전체가 넥스트 큐브의 양자 메인 프레임 연산 회로와 물리적·개념적으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이 거대한 지하 서버가 5,100만 명의 인생 궤도를 계산하고 국가 라이프 플래너의 알고리즘을 굴리는 동안, 그 연산의 부하와 열기를 아버지가 자신의 생체 뇌로 고스란히 받아내며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고문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지금 당장 저 유리 챔버의 전극을 강제로 뽑아내면, 양자 컴퓨터의 억류 자성이 끊어지는 반작용으로 아버지의 뇌세포는 0.1초 만에 숯덩이처럼 타버린다.
분리하는 즉시 영구적인 뇌사에 빠지는 구조였다.
"말도 안 돼……."
태호가 주먹을 쥐며 신음했다.
"저걸 억지로 뜯어내면 박사님이 돌아가신다는 거잖아요! 그럼 어떻게 꺼내요?"
그때, 챔버 내부의 청록색 액체 속에서 기포가 보글거리며 피어올랐다.
감겨 있던 강정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삐이이익—!
콘솔의 뇌파 계측 그래프가 톱니바퀴처럼 튀어 올랐다.
챔버 상부의 스피커를 통해, 기계음이 뒤섞여 긁히는 듯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우, 진…… 이냐……?"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쉰 목소리였다.
유리벽 안쪽에서, 힘겹게 눈을 뜬 아버지가 고개를 떨군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초점이 흩어진 그의 눈동자는 액체 속에서 우진의 얼굴을 찾으려는 듯 흔들렸다.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챔버의 차가운 강화유리 벽면에 손바닥을 얹었다.
"아버지! 저예요. 우진이에요. 제가 왔어요!"
유리벽을 통해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냉기는 뼈마디를 시리게 만들었지만, 우진은 손을 뗄 수 없었다.
강정호의 입술이 희미하게 뒤틀렸다.
눈가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전도성 액체 속에 흩뿌려지며 사라졌다.
"왔구나…… 기어이…… 여기까지……."
"말씀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 꺼내드릴게요. 서연이가 백도어를 열었고, 암호 키도 제가 가지고 있어요!"
우진은 품속에서 푸른빛을 맥동하는 단결정 사파이어 마스터 암호 키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챔버 안의 강정호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목덜미에 박힌 케이블들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푸른 스파크를 튀겼다.
"안…… 된다…… 우진아……."
"아버지!"
"내 뇌간은…… 이미…… 이 기계의…… 연산 중추와…… 80퍼센트 넘게 얽혀 있다…… 억지로 끊어내면…… 내 뇌세포는 그 순간 증발해……."
강정호의 호흡이 가빠질 때마다 콘솔의 산소 포화도 수치가 뚝뚝 떨어졌다.
"국가안전기획처 놈들이…… 발동한 테라 인코그니타 때문에…… 지하 4층과 5층이…… 이미 무너졌다…… 10분도…… 남지 않았어…… 사옥 전체가 매몰된다……."
3. 15년의 속박과 속삭임
치이익—!
그때, 돔 천장 모서리에 매설된 대형 지향성 스피커에서 거친 노이즈와 함께 익숙하고 불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하…… 참으로 감동적인 부자 상봉이로군.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야, 강우진."
우진과 태호의 시선이 일제히 통제실 상단의 음향 패널로 쏠렸다.
서지훈이었다.
중앙 통제 홀 바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그가, 어느새 내벽의 비상 인터컴 라인을 활성화한 것이었다.
스피커 너머로 서지훈의 찢어지는 듯한 기침과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섞여 나왔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지? 네 아버지는 구출할 수 있는 피해자가 아니야. 그는 이 거대한 양자 요람을 지탱하는 살아있는 나사못이고, 연산 소켓이다!"
"닥쳐라, 서지훈!"
태호가 소총을 치켜들며 스피커를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나 서지훈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네 아버지가 왜 15년 동안 저 차가운 액체 속에서 연명할 수 있었는지 아나? 그가 원해서야! 자신의 나약한 죄책감 때문에, 도시 전체의 엔트로피가 붕괴하여 수백만 명이 죽어 나가는 꼴을 볼 수 없어서 스스로 뇌를 내어준 거라고! 저 노인은 스스로 시스템의 심장이 되길 자처했다!"
우진의 시선이 유리벽 너머의 아버지를 향했다.
강정호는 부정하지 않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그저 묵묵히 우진의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강우진…… 네가 저 노인을 살리겠다고 케이블을 뽑는 순간, 시스템의 남은 인과율 부하가 저 노인의 머릿속에서 폭발한다. 반대로 네가 손을 놓고 도망치면, 8분 뒤 발파될 테라 인코그니타의 액체 테르밋이 이 돔 전체를 섭씨 3,000도의 지옥으로 만들어 너희 셋을 통째로 화장시켜 주겠지."
서지훈의 웃음소리가 점차 발작적으로 변해갔다.
"어느 쪽을 골라도 끝이다! 네 녀석이 그토록 찬양하던 자유의지가 만들어낸 결말이 고작 이거야! 선택해 봐라, 강우진! 아버지를 네 손으로 뇌사시켜 죽일 텐가, 아니면 여기서 함께 불타 죽을 텐가!"
지이익, 쿵!
스피커가 과전압으로 터져 나가며 서지훈의 음성이 끊겼다.
정적 속에서 남은 것은, 천장을 울리는 둔탁한 폭발음과 흔들리는 콘크리트 잔해들뿐이었다.
쿠구구구구!
천장 모서리의 텅스텐 패널 사이로 미세한 균열이 가며 하얀 분진이 쏟아져 내렸다.
지하 4층과 5층의 지지 암반이 폭파 충격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4. 바이패스의 진짜 의미
"우진아…… 내 말을…… 들어라……."
유리벽 안쪽에서 강정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힘겨웠지만, 눈빛만은 15년 전 아들의 손을 잡고 테헤란로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연구원의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진이 다급하게 유리에 얼굴을 밀착시켰다.
"방법이 있다고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뭘 해야 아버지를 살릴 수 있습니까!"
"마스터 암호 키를…… 메인 콘솔의 슬롯에 꽂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코어가 즉각 소각되면서…… 내 신경망 전체가 불타버려……."
강정호의 시선이 우진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15년 전 아버지가 메스로 새겨 넣었던 4cm의 수술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네 관자놀이의 흉터는…… 단순한 상처가 아니다…… 내가 네 뇌신경 궤도를 절제할 때…… 내 고유 뇌파와 역위상으로 공명하도록 설계해 둔…… 유일한 생체 바이패스 리셉터다……."
우진은 숨을 들이켰다.
자신의 관자놀이에 남겨진 흉터.
초인적인 능력을 잃어버린 지금도,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맥동하듯 욱신거리던 바로 그곳이었다.
"코어의 냉각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하면…… 양자 상태의 인터록이…… 단 10초간 열린다…… 그 찰나에…… 챔버 하단의 수동 바이패스 단자에 네 관자놀이의 단말을 접속해야 한다……."
"제 머리를…… 직접 연결하라고요?"
"그렇다…… 내 뇌에 걸려 있는 83퍼센트의 연산 부하를…… 네 방화벽 백신 신경계로…… 순간적으로 분산시켜 넘겨받는 거다…… 엔트로피의 분할 전이……."
강정호의 눈에 참혹한 슬픔이 차올랐다.
"하지만 우진아…… 그건 네 신경망에도 살인적인 과부하를 준다…… 자칫하면 너와 나, 둘 다 뇌세포가 타버려 함께 죽을 수도 있어……."
"하겠습니다."
우진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목소리에는 티끌만 한 떨림조차 없었다.
"우진 형! 그건 너무 위험해요!"
태호가 우진의 팔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형은 이제 초인적인 척력도, 미래를 보는 눈도 없잖아요! 평범한 몸으로 저 괴물 같은 컴퓨터의 부하를 받으면 뇌가 버티지 못해요!"
"태호야."
우진이 태호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도형 대신 맑고 투명한 인간의 결의가 담겨 있었다.
"내가 능력을 잃었다고 해서, 내 의지까지 사라진 건 아니야. 15년 동안 아버지는 나를 지키기 위해 이 지옥에서 홀로 그 무게를 버텼어. 이제는 내가 짊어질 차례다."
우진은 콘솔 하단으로 몸을 숙였다.
강정호의 말대로, 두꺼운 강화 플라스틱 덮개 아래에 15년 전 구형 아날로그 규격으로 주조된 은색 접촉 단자가 숨겨져 있었다.
[EMERGENCY NEURAL BYPASS PORT - NODE-0 / NODE-1 ONLY]
그 단자의 크기와 형태는, 우진의 관자놀이 흉터 모양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아버지 강정호는 15년 전 연구소가 불타던 그날, 이미 언젠가 아들이 자신을 찾아올 이 순간을 예견하고 이 단자를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5. 10초의 인터록
위이이잉—!
코어룸 전체를 뒤흔드는 적색 경보음과 함께 천장의 스프링클러에서 액체 질소 증기가 쏟아져 내렸다.
콘솔 모니터의 수치가 임계점을 찍었다.
[CORE TEMPERATURE CRITICAL : OVERHEAT PURGE IMMINENT]
[QUANTUM INTERLOCK OPENING : 10 SECONDS]
[10…… 9…… 8……]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구형 유리 챔버를 감싸고 있던 초전도 전자석 링이 푸른 스파크를 튀기며 천천히 회전을 멈췄다.
양자 컴퓨터가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와의 접속 격벽을 강제로 해제하는 단 10초의 공백기였다.
"지금이다! 태호야, 챔버 비상 배수 레버를 잡아!"
"네, 형!"
태호가 온 힘을 다해 벽면의 붉은 유압 레버를 붙잡고 매달렸다.
우진은 사파이어 마스터 암호 키를 왼손에 쥔 채, 오른쪽 관자놀이를 콘솔 하단의 은색 바이패스 단자에 밀착시켰다.
철컥.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 핀들이 우진의 흉터 조직을 파고들며 신경망에 직접 맞물렸다.
"크아아악!"
우진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칼로 살을 찢는 고통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지옥이었다.
수만 볼트의 고압 전류가 뇌간을 직격하는 듯한 충격.
15년 동안 넥스트 큐브의 양자 컴퓨터에 축적되어 있던 수천만 명의 인생 궤도 데이터, 왜곡된 인과율의 쓰나미, 차가운 엔트로피의 결손 찌꺼기들이 단자를 타고 우진의 중추신경계로 무자비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시야가 순식간에 하얗게 번쩍였다.
백색 암전.
능력을 쓸 때 겪었던 감각의 차단이 아니었다.
뇌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하얗게 타들어 가는 실질적인 생체 파괴의 감각이었다.
코와 입, 귀에서 뜨거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버텨라. 끊어지지 마라.'
우진은 어금니가 부서져라 악물었다.
턱관절을 타고 붉은 피가 흘렀지만, 그는 머리를 떼지 않았다.
자신의 신경망 속으로 쏟아지는 거대한 데이터의 격류 너머에서, 15년간 홀로 이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던 아버지의 지친 영혼이 느껴졌다.
'아버지의 짐을 나눈다.'
우진의 뇌간 깊숙이 각인되어 있던 방화벽 백신 코드가 폭발하듯 활성화되었다.
초인적인 힘은 사라졌을지언정, 그가 평생을 견뎌온 고통의 면역력은 뇌신경계 속에 온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지이이잉—!
우진의 관자놀이에서 눈이 멀 것 같은 순백의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 섬광은 바이패스 케이블을 역류하여 유리 챔버 속 강정호의 목덜미 전극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NEURAL OVERLOAD SPLITTING : 50%…… 60%…… 80%]
[HOST COMPATIBILITY DROPPING : 83% → 41% → 12%!]
[NEURAL DECOUPLING SUCCESSFUL!]
"지금이야, 태호야! 당겨!"
우진이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끄아아아아!"
태호가 부러진 쇄골의 고통을 짓씹으며 온 체중을 실어 붉은 레버를 바닥까지 내리찍었다.
푸슈우우우욱—!
거대한 에어 밸브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구형 유리 챔버 바닥의 배수구가 열렸다.
챔버를 가득 채우고 있던 청록색 전도성 냉각액이 소용돌이를 치며 바닥의 배수관으로 빠져나갔다.
액체가 빠져나가며 발생한 강력한 공기압의 반동으로, 강정호의 목덜미와 척추에 박혀 있던 수십 가닥의 신경 튜브들이 퍽, 퍽 소리를 내며 줄줄이 뽑혀 나갔다.
치지직, 파바박!
튜브 끝에서 터져 나온 고압의 스파크가 허공을 갈랐다.
액체가 완전히 빠져나간 챔버의 전면 강화유리가 유압 장치에 의해 위쪽으로 열려 젖혀졌다.
지탱해 주던 부력을 잃은 강정호의 마른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버지!"
우진은 관자놀이의 단자를 뜯어내듯 몸을 날렸다.
금속 핀이 뜯겨 나가며 관자놀이 흉터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아버지를 두 팔로 받아냈다.
쿵.
품 안에 안긴 아버지의 몸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웠다.
키가 크고 듬직했던 15년 전의 아버지는 간데없고, 한 줌의 재처럼 가벼워진 노인만이 그의 가슴에 안겨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우진이 피 묻은 손으로 아버지의 뺨을 감싸 쥐었다.
강정호의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숨결이 새어 나왔다.
완전히 타버릴 뻔했던 그의 뇌파가, 우진이 부하를 분산해 준 덕분에 기적적으로 희미한 맥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메마른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아버지는 마침내 바로 눈앞에서 자신을 부둥켜안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우진…… 아……."
"네, 아버지. 저예요. 이제 끝났어요. 제가 꺼내드렸어요."
강정호의 거친 손이 떨리며 올라와 우진의 피투성이가 된 관자놀이 흉터를 매만졌다.
"미안하다…… 내 아들아…… 널…… 너무 오래…… 아프게 했구나……."
"아니에요. 저 하나도 안 아파요. 그러니까 제발 버티세요."
우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려 아버지의 창백한 이마 위로 떨어졌다.
그것은 시스템의 수식이 아닌, 인간의 체온을 담은 뜨거운 눈물이었다.
6. 붕괴하는 요람과 최종 봉인
콰아아앙—!
그 감격의 순간을 비웃듯, 돔 천장 전체가 반으로 쪼개지며 거대한 콘크리트 상판 하나가 바닥으로 굉음을 내며 추락했다.
쿠구구구구!
지하 5층을 받치고 있던 기둥들이 모조리 부러지며 지반 침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양자 서버 타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며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치솟는 불길과 자욱한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돔 내부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WARNING : STRUCTURAL COLLAPSE IN 180 SECONDS]
[SECTOR-OMEGA PURGE PROTOCOL INITIATED]
"형! 시간이 없어요! 3분 뒤면 여기 전체가 매몰돼요!"
태호가 무너진 서버 파편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호스트를 잃어버린 메인 컴퓨터는 제어 불능의 과부하 상태에 빠져 스스로 자폭 시퀀스를 가속하고 있었다.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이 미쳐 날뛰는 양자 서버들의 연산을 완전히 정지시켜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배수로의 비상 격벽조차 열리지 않는다.
우진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사파이어 마스터 암호 키를 주워 들었다.
이제 신경망의 분리는 끝났다.
시스템을 영원히 끝장낼 시간이었다.
"아버지, 이걸…… 콘솔에 꽂겠습니다."
우진의 말에 강정호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꽂아라…… 15년 동안…… 세상을 가두었던…… 저 뒤틀린 네모를…… 우리 손으로…… 지워버리자꾸나……."
우진은 아버지를 태호에게 조심스럽게 인계한 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폭발하는 불길을 뚫고 중앙 제어 콘솔로 다가갔다.
콘솔 정중앙, 붉은빛으로 맥동하는 최종 마스터 포트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INSERT MASTER CIPHER TO PURGE ALL ORBITS]
우진은 떨리는 손으로 사파이어 반도체 칩을 슬롯 입구에 맞물렸다.
망설임은 없었다.
이것으로 네모 프로젝트가 쌓아 올린 15년의 허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끝이다."
탁.
맑고 청아한 금속음과 함께, 사파이어 마스터 암호 키가 포트 끝까지 깊숙이 밀려 들어갔다.
순간, 돔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던 기괴한 기계음과 웅웅거리던 저주파 진동이 거짓말처럼 딱 멎었다.
그리고 찾아온 1초간의 절대적인 침묵.
파아아아아앗—!
콘솔 모니터에서부터 시작된 눈부신 순백의 역위상 펄스가 거대한 파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수만 대의 양자 서버 화면에 띄워져 있던 수억 개의 사각 격자 수식들이 일제히 유리알처럼 깨져 나갔다.
치지직, 펑!
펑!
펑!
서버 랙마다 매설되어 있던 연산 칩들이 푸른 불꽃을 뿜으며 연쇄적으로 쇼트되어 타들어 갔다.
대한민국 5,100만 명의 삶을 보이지 않는 실로 조종하던 넥스트 큐브의 최종 심장부가, 스스로의 연산식에 불타며 근원부터 소각되고 있었다.
[SYSTEM ROOT DELETED]
[ALL GRID DATA ERASED]
[FAREWELL, ARCHITECT]
마지막 시스템 로그가 허공에 하얗게 흩어지며, 메인 콘솔의 모든 전원이 일제히 영구적으로 꺼져 내렸다.
7. 무너진 제단의 잔해 위에서
완벽했던 통제의 제단이 암흑과 화염 속에 잠겼다.
비상 발전기가 돌며 코어룸 구석, 옛 연구소 배수로와 연결된 비상 탈출용 해치가 덜컹거리며 수동으로 개방되었다.
시원한 바깥바람과 함께 물 흐르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흘러나왔다.
"열렸어요! 배수로 문이 열렸어요!"
태호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강정호 박사를 등에 업은 채 절뚝거리며 해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우진 역시 콘솔을 박차고 돌아섰다.
쿠구구궁—!
등 뒤에서 메인 프레임을 받치고 있던 거대한 텅스텐 기둥이 무너지며 그들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제어 콘솔을 통째로 짓이겨 뭉개버렸다.
우진은 몸을 날려 해치 안쪽으로 굴러떨어졌다.
쾅!
태호가 비상 레버를 잡아당기자 두꺼운 강철 해치가 닫히며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수천 톤의 콘크리트 잔해를 완벽히 차단했다.
밀폐된 어둠 속, 배수로를 타고 흐르는 차가운 지하수 위로 거친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세 사람은 배수로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였다.
비록 멍투성이에 피투성이가 된 만신창이의 몸이었지만, 그들의 호흡은 살아 있었다.
우진은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에 얹었다.
쿵.
쿵.
쿵.
일정하고 정직하게 뛰는 자신의 심장 박동.
더 이상 머리 위에 기하학적 도형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관자놀이를 짓누르던 끔찍한 편두통도, 시야를 하얗게 지워버리던 잔혹한 암전도 없었다.
오직 살갗을 스치는 축축한 흙냄새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아버지의 미약하지만 따뜻한 체온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태호가 벽에 머리를 기댄 채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우진은 웃을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배수로 천장 너머, 아득히 먼 지상을 향했다.
지하의 괴물은 마침내 숨통이 끊어졌다.
그러나 지상에는 여전히 계엄령의 장갑차들이 테헤란로를 짓밟고 있었고, 통제를 잃어버린 자유의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던 수많은 군중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통신이 끊겨 생사를 알 수 없는 서연과 채린.
'아직 끝나지 않았어.'
우진은 피 묻은 소매로 눈가를 훔쳐냈다.
이제 그는 세상의 법칙을 꿰뚫어 보는 초능력자가 아니었다.
상대의 다음 수를 미리 읽어내는 특이점도 아니었다.
그저 상처 입고 피 흘리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한 명의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두 발로 걸어 나가야만 했다.
누군가가 정해준 각본이 아닌, 자신의 온전한 의지로 선택한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가자, 태호야. 아버지를 모시고 지상으로 나간다."
우진이 먼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어둠으로 가득 찼던 지하 배수로 바닥에 선명한 핏자국과 함께 꺾이지 않는 인간의 발자국이 깊게 새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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