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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로 간다 · 제 71화

첫 번째 방어선 돌파

📅 2026-10-02 18:10•✍️ 만우자•👁️ 0•

1. 암전 속의 조롱

 

지하 6층 예비 코어 룸의 서늘한 냉기가 피부를 칼날처럼 벴다.

 

공조 배출구를 뜯고 발을 디딘 바닥은 일반적인 건물 바닥이 아니었다.

 

진동을 완벽히 흡수하는 순백의 무균 특수 수지 타일이 축구장 두 개는 족히 들어갈 너비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것은 기계 오일 냄새와 영하 수십 도의 액체 질소가 증발하며 내뿜는 비릿한 서리 냄새뿐이었다.

 

"결국 기어 올라왔군, K-07."

 

천장에 매립된 수십 개의 지향성 스피커에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지훈이었다.

 

정면 백 미터 너머, 거대한 원통형 양자 슈퍼컴퓨터의 외벽 모니터 수십 대가 일제히 푸른빛을 번뜩이며 켜졌다.

 

화면 속 서지훈은 붕대를 칭칭 감은 몰골이었으나, 입꼬리는 기괴할 정도로 찢어져 있었다.

 

"배수관을 기어 다니는 쥐새끼 꼴이라니. 네놈 머리 위에 떠 있던 그 거창한 특이점은 어디로 갔지?"

 

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깨에 멘 K2C1 소총의 개머리판을 쥔 손가락에 서서히 힘을 주었을 뿐이다.

 

관자놀이의 4센티미터 흉터는 더 이상 욱신거리지 않았다.

 

두통도, 시신경을 짓누르던 살인적인 압박도 없었다.

 

망막 위에서 깜빡이던 네모와 세모, 동그라미의 환영은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세상은 오직 서늘한 형광등 불빛과 무거운 그림자, 그리고 날카로운 기계음만이 존재하는 현실 그 자체였다.

 

'도형이 보이지 않아.'

 

적의 살의를 미리 알려주던 0.3초의 푸른 궤적도, 적중할 탄도를 그려내던 조준경도 없었다.

 

오직 인간의 오감과 척수 반사,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단련해 온 육체의 기억만이 남아 있었다.

 

"우진 씨, 저기……!"

 

등 뒤에서 엄호 태세를 취하던 한서연이 낮게 숨을 들이켰다.

 

중앙 메인 콘솔로 향하는 광활한 순백의 복도.

 

그 양옆의 바닥 타일이 유압 실린더 소리를 내며 갈라지더니, 열두 개의 직사각형 포드가 수직으로 솟아올랐다.

 

치익―!

 

고압의 냉각 가스가 뿜어져 나오며 강화 유리문이 일제히 개방되었다.

 

포드 안에서 걸어 나온 자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눈빛은 이미 죽어 있었다.

 

몸에 밀착된 칠흑색 방탄 슈트, 목덜미에 깊숙이 박혀 붉은빛을 뿜어내는 3세대 나노 바이오 전극 소켓.

 

그들의 정수리 위에는 아무런 기하학적 형상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우진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신경계 전체가 저 양자 컴퓨터의 살상 알고리즘과 100퍼센트 동기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3세대 강화 능력자 친위대다."

 

서지훈의 웃음소리가 스피커를 찢을 듯 울렸다.

 

"뇌간에 직접 심은 나노 소켓이 중앙 코어의 전술 연산망과 직결되어 있지. 고통도, 공포도, 망설임도 없다.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인간의 반사 신경으로는 기계가 직접 집행하는 탄도를 피할 수 없어."

 

철컥!

 

열두 명의 친위대가 일제히 가슴에 든 인과율 집속 돌격소총을 치켜들었다.

 

총구 끝에서 푸른빛의 응축된 플라스마 펄스가 맥동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장 구석의 격벽이 열리며, 날카로운 고주파 소음과 함께 여섯 대의 원반형 비행체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케르베로스 Mk-4 자율 방어 드론.

 

원반 하부에 달린 3총열 초소형 미니건이 서늘한 금속음을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총 스물네 개의 총구가 우진과 서연, 박태호 세 사람을 완벽한 부채꼴 화망으로 조준하고 있었다.

 

"우진이 형, 저놈들……."

 

태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태호의 손에 들린 거대한 배관 렌치가 바닥을 긁으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자신 역시 불과 얼마 전까지 저렇게 뇌간에 칩이 박힌 채 살상 병기로 쓰였었다.

 

저 무표정한 얼굴들 속에 갇혀 있을 동포들의 비명이 태호의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쏴라."

 

서지훈의 냉혹한 명령이 떨어졌다.

 

2. 격리된 사선(死線)

 

콰아아앙―!

 

케르베로스 드론의 9밀리 철갑탄과 친위대의 푸른 인과율 광탄이 동시에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바닥의 순백 타일이 처참하게 깨져 나가며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뛰어!"

 

우진은 서연의 허리를 낚아채듯 끌어안고 좌측의 두꺼운 구조 기둥 뒤로 몸을 던졌다.

 

태호 역시 반대편 배전반 함체 뒤로 굴러 들어갔다.

 

타타타타탕!

 

콰직, 콰아앙!

 

콘크리트 기둥 뒤편으로 살인적인 탄막이 꽂혔다.

 

고막을 찢는 총성과 함께 분쇄된 시멘트 가루가 눈앞을 뿌옇게 가렸다.

 

기둥의 모서리가 깎여 나가며 살을 파고드는 열기가 피부를 태울 듯했다.

 

'도형이 없으니 적의 공격 타이밍을 알 수가 없다.'

 

예전 같았다면 적들의 총구에서 뻗어 나오는 붉은 세모와 0.3초 뒤의 미래 궤적을 읽고 여유롭게 탄환 사이를 걸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눈을 깜빡이는 찰나에도 총알이 어디서 날아들지 알 수 없었다.

 

단 한 발만 스쳐도 뼈와 살이 뜯겨 나가는 현실의 전장이었다.

 

"우진 씨, 귀에 꽂은 무전기……!"

 

서연이 방탄복 주머니에서 소형 트랜시버를 꺼내 우진의 귀에 밀어 넣었다.

 

치지직, 치익―.

 

극심한 노이즈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윤채린이었다.

 

[우진 씨!

 

들려요?

 

제 목소리 들려요?!]

 

파주 거점 7번 아날로그 벙커에서 들려오는 채린의 절박한 외침이었다.

 

"들린다, 채린 씨!"

 

우진은 기둥에 등을 바짝 붙인 채 K2C1 소총의 노리쇠를 후퇴 고정했다가 놓았다.

 

찰칵, 하는 쇳소리가 차갑게 손바닥을 울렸다.

 

[지금 지하 6층 방어망의 로컬 관제망을 뚫고 있어요!

 

민규 씨가 외부 방화벽에 가짜 트래픽 폭탄을 쏟아붓고 있어서, 제가 내부 로컬 서버의 센서 주파수를 낚아챘어요!]

 

"드론의 사격 패턴을 읽을 수 있겠나?"

 

[케르베로스 Mk-4는 개별 인공지능이 아니에요!

 

천장에 매설된 로컬 센서 타워에서 중계하는 통합 사격 알고리즘으로 통제되고 있어요!

 

6대가 3개 조로 나뉘어서 1.2초 간격으로 교차 사격을 퍼붓는 구조예요!]

 

파주의 어두운 벙커 안에서, 채린의 손가락이 낡은 기계식 키보드를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을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우진 씨, 지금 정면 기둥에서 시계 방향으로 드론 1호와 2호가 선회하고 있어요!

 

3, 2, 1…… 지금 왼쪽으로 꺾여요!]

 

우진은 채린의 카운트다운에 맞춰 몸을 웅크렸다.

 

위이잉―!

 

채린의 말대로, 기둥 좌측 상공을 훑고 지나가던 드론 두 대의 미니건 회전축이 반대편 배전반 쪽으로 꺾였다.

 

일점사로 쏟아지던 탄막이 배전반 쪽으로 분산된 찰나의 공백.

 

0.8초.

 

"태호야, 고개 숙여!"

 

우진은 기둥 밖으로 상체를 반쯤 튕겨내며 소총을 견착했다.

 

가늠자와 가늠쇠 너머로 허공에 뜬 은색 드론의 동체가 잡혔다.

 

푸른 궤적도, 조준 보정도 없었다.

 

군 시절 수천 발을 쏘며 몸에 새겼던 근육의 감각, 호흡을 멈추는 순간의 정적.

 

탕!

 

탕!

 

탕!

 

3점사로 발사된 5.56밀리 소총탄이 드론 하부의 광학 센서 렌즈를 정밀하게 타격했다.

 

쨍강!

 

퍼엉!

 

불꽃이 튀며 한 대의 드론이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크윽!"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전방의 3세대 강화 인간 세 명이 소총을 들고 우진을 향해 정밀 사격을 가했다.

 

투가가각!

 

기둥 모서리에 총탄이 박히며 우진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뜨거운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빠르다.'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뇌간의 칩이 근육에 직접 전기 신호를 전달하고 있었다.

 

조준과 격발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 특유의 망설임이나 미세한 떨림이 전혀 없었다.

 

모니터 속 서지훈이 광기 어린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소용없다! 드론 하나 부순다고 뭐가 달라지지? 저 아이들의 신경계는 내 슈퍼컴퓨터의 클럭에 맞춰 박동하고 있다! 네놈의 조잡한 소총 따위로 뚫을 수 있는 방어선이 아니야!"

 

3. 균열의 전조

 

[하아, 젠장……!]

 

무전기 너머에서 채린의 거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단순한 피로의 탄식이 아니었다.

 

무언가 거대한 압력이 그녀의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억눌린 고통의 비명이었다.

 

"채린 씨? 무슨 일입니까?!"

 

우진이 소리쳤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시스템이…… 역탐지를 걸어오고 있어요.]

 

채린의 숨소리가 가빴다.

 

[지하 6층 양자 컴퓨터가 제 해킹 포트를 감지했어요.

 

제 머릿속…… 아니, 신호망을 타고 역위상 펄스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요……!]

 

파주 거점 7번 아날로그 은신처.

 

어두컴컴한 지하 벙커의 브라운관 모니터들이 파르르 떨리며 붉은 노이즈를 뿜어내고 있었다.

 

채린은 키보드를 잡은 두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의 머리 위, 허공에 은은하게 떠 있던 은빛 동그라미(○).

 

오리진 코어가 파괴된 뒤에도 이레귤러의 상징처럼 남아 있던 그 순수한 원환의 표면에, 보이지 않는 칼날로 긁어낸 듯한 미세한 실금이 좍 그어졌다.

 

쩌적―.

 

머릿속 뇌수를 바늘로 쑤시는 듯한 격통이 척수를 타고 쏟아져 내렸다.

 

코피 한 줄기가 채린의 인중을 타고 흘러내려 키보드 자판 위로 뚝 떨어졌다.

 

"채린아! 무리하지 마라, 연결 끊어!"

 

옆에서 구형 진공관 단파 안테나의 다이얼을 붙잡고 있던 송민규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안 돼요, 민규 씨……! 지금 연결을 끊으면…… 우진 씨 일행은 저 안에서 벌집이 돼요!"

 

채린은 피 묻은 소매로 입술을 틀어막으며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목숨을 바쳐 남겨준 그리드 오버라이더의 잔류 알고리즘.

 

그것을 쥐어짜 내어 지하 6층의 센서망을 강제로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의 역공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단순한 소프트웨어 해킹이 아니었다.

 

양자 컴퓨터가 방출하는 살인적인 인과율 연산 부하가 네트워크 케이블을 타고 채린의 신경계로 거꾸로 역류하고 있었다.

 

은빛 동그라미의 균열이 조금씩 더 깊어지고 있었다.

 

마치 깨지기 직전의 유리그릇처럼, 불길한 파열음이 그녀의 영혼 속에서 울려 퍼졌다.

 

[우진 씨…… 들려요?

 

제 말…… 똑바로 들어야 해요.]

 

채린의 목소리가 떨림 속에서도 서늘할 정도로 또렷해졌다.

 

[친위대 12명…… 저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에요.

 

3인 1조, 4개 분대로 나뉘어서…… 중앙 통제 컴퓨터의 단일 명령 링크로 묶여 있어요.]

 

"링크라고?"

 

[네!

 

드론의 센서 데이터를 친위대의 뇌간 칩이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드론의 눈을 멀게 해도, 친위대의 시신경 데이터가 다시 드론으로 흘러 들어가요!

 

그 고리를 끊어야 해요!]

 

"어떻게 끊지?"

 

[드론 세 대가 동시에 교차 사격을 가하는 순간…… 0.4초 동안 시스템 전체의 대역폭이 포화 상태에 빠져요.

 

12명의 친위대와 드론이 동시에 데이터를 주고받느라 발생하는…… 구조적인 병목이에요!]

 

우진의 눈빛이 번뜩였다.

 

병목.

 

비록 궤도 시각화 능력은 사라졌지만, 그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완벽한 통제를 추구하는 시스템일수록, 모든 데이터를 한곳으로 모아 처리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찰나의 지연.

 

[제가…… 다음 사격 타이밍에 맞춰서 로컬 센서 타워에 과부하 펄스를 쏠게요!

 

단 한 번이에요.

 

0.4초 동안 드론의 자세 제어 자이로와 친위대의 조준선이 강제로 풀릴 거예요!]

 

"채린 씨, 당신 상태는……!"

 

[저는 괜찮으니까…… 제발, 뚫어요!]

 

채린의 절규와도 같은 외침 끝에, 삐이이익 하는 고주파 비명이 무전기를 타고 흘렀다.

 

4. 살선(殺線)을 찢다

 

"태호야! 서연 씨!"

 

우진이 기둥 뒤에서 낮게 외쳤다.

 

"채린 씨 신호가 떨어지면, 태호는 우측 배전반 뒤 드론의 낙하지점으로 연막탄을 던져! 서연 씨는 내 뒤에서 3초 뒤에 뛰면서 콘솔 1번 랙으로 달려!"

 

"알겠습니다, 형!"

 

태호가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조끼에 매달린 특수 교란 연막탄의 안전핀을 뽑아 쥐었다.

 

서연 역시 떨리는 손으로 외장 하드가 든 가방 끈을 고쳐 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포로 창백해진 얼굴이었지만, 눈동자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

 

[지금이에요!]

 

무전기에서 채린의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지하 6층 천장 정중앙에 매달린 거대한 원통형 센서 타워에서 푸른 불꽃이 파지직 튀었다.

 

위이잉― 텅!

 

남아 있던 다섯 대의 케르베로스 드론이 일제히 허공에서 뒤뚱거리며 고도를 잃었다.

 

동시에 전방에서 총구를 겨누고 전진하던 12명의 강화 친위대원들의 고개가 기계적인 경련을 일으키며 일제히 왼쪽으로 0.5초간 꺾였다.

 

데이터 병목과 역위상 펄스가 그들의 뇌간을 강타한 것이다.

 

"지금이다!"

 

우진은 지체 없이 기둥 밖으로 몸을 날렸다.

 

슈우우욱― 쾅!

 

태호가 던진 특수 교란 연막탄이 우측 바닥에 작렬하며 짙은 백색 연무를 뿜어냈다.

 

은빛 동그라미의 잔류 파동이 농축된 화학 연막이 순식간에 복도 절반을 집어삼켰다.

 

센서가 마비된 드론들이 허공을 향해 맹목적인 난사를 퍼붓기 시작했다.

 

투다다다다당!

 

도비탄이 사방의 벽과 바닥을 때리며 불꽃을 튀겼다.

 

우진은 연막 속으로 미끄러지듯 몸을 낮춰 슬라이딩했다.

 

타일 바닥을 미끄러져 들어가며, 눈앞을 가로막은 첫 번째 친위대원의 하체를 향해 K2C1의 총구를 겨눴다.

 

탕!

 

탕!

 

무릎 관절을 정확히 꿰뚫은 총탄에 대원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우진은 일어서는 탄력을 이용해 쓰러지는 대원의 어깨를 딛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눈앞에 자세 제어를 회복하려 버벅대던 드론 한 대가 있었다.

 

우진은 소총을 등 뒤로 돌려 메고, 허리춤에서 꺼낸 특수 합금 나이프를 드론의 상부 로터 구동축에 깊숙이 쑤셔 박았다.

 

콰득!

 

모터가 타들어 가는 비명과 함께 드론이 연기를 내뿜으며 추락했다.

 

"우진이 형, 뒤요!"

 

태호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연막을 뚫고 나온 친위대원 두 명이 우진의 등 뒤로 인과율 집속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초점이 없었으나, 근육은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려 하고 있었다.

 

우진은 몸을 비틀며 바닥을 굴렀다.

 

콰아앙!

 

푸른 플라스마 광탄이 우진이 있던 바닥을 강타해 거대한 구덩이를 파냈다.

 

그 폭풍에 우진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으윽!"

 

등이 차가운 금속 랙 모서리에 부딪히며 숨이 턱 막혔다.

 

갈비뼈 부근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치밀었다.

 

이능이 사라진 인간의 몸.

 

충격은 고스란히 뼈와 내장으로 전달되었다.

 

두 명의 친위대가 차가운 걸음걸이로 우진을 향해 총구를 내렸다.

 

그들의 목덜미 소켓에서 붉은빛이 번쩍이며 다음 사격 명령을 수신하고 있었다.

 

'끝인가?'

 

우진의 뇌리에 차가운 절망이 스치던 찰나였다.

 

"이 괴물 자식들아―!"

 

포효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허공을 갈랐다.

 

태호였다.

 

태호는 전속력으로 돌진해 한 대원의 허리를 럭비 태클로 꺾어 바닥에 메다꽂았다.

 

쿠웅!

 

다른 한 대원이 총구를 태호의 머리로 돌리려던 순간, 탕!

 

하는 총성이 복도에 울렸다.

 

권총을 양손으로 쥐고 사격 자세를 취한 한서연이었다.

 

서연이 쏜 총탄이 대원의 어깨 방탄판을 때려 궤도를 틀어놓았다.

 

그 0.5초의 틈을 놓치지 않고 우진이 바닥을 차고 일어나 쓰러진 드론의 파편을 대원의 목덜미 소켓에 내리꽂았다.

 

파지지직!

 

나노 전극이 단락되며 푸른 스파크가 튀었고, 대원은 경련과 함께 앞으로 꼬꾸라졌다.

 

5. 붉은 타이머와 깨진 원환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첫 번째 방어선의 외곽을 지키던 드론 세 대와 친위대 1분대가 완전히 침묵해 있었다.

 

바닥은 깨진 타일과 탄피, 타들어 가는 전선 찌꺼기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승리를 기뻐할 틈은 없었다.

 

저 멀리, 양자 슈퍼컴퓨터의 본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중앙 통로.

 

그곳에는 여전히 여덟 명의 친위대원과 두 대의 드론이 진형을 재정비하며 서늘하게 버티고 있었다.

 

치익― 치지직.

 

우진의 귀에 꽂힌 무전기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피를 토해내는 소리였다.

 

"채린 씨! 채린 씨, 대답해요!"

 

우진이 다급하게 무전기를 쥐었다.

 

[하아…… 하…… 우진 씨…….]

 

채린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늘어져 있었다.

 

파주 벙커 안, 채린은 키보드에 한 손을 얹은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 위를 맴돌던 은빛 동그라미(○).

 

그 아름답고 투명했던 원환의 절반 이상이 거미줄 같은 붉은 균열로 뒤덮여 있었다.

 

시스템의 역공격을 혼자서 온몸으로 받아낸 대가였다.

 

동그라미의 중심, 이레귤러들의 상호 인식을 상징하던 붉은 점마저 빛을 잃고 바래가고 있었다.

 

"채린아! 그만해, 제발! 머리에서 피가 나잖아!"

 

송민규가 울부짖으며 채린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채린은 떨리는 손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우진 씨…… 들려요?

 

넥스트 큐브 관제실에서…… 카운트다운을…… 앞당겼어요.]

 

"뭐라고?"

 

[원래 42분이었는데…… 방어선이 뚫리니까…… 서지훈이 긴급 강제 동기화 프로토콜을 가동했어요…….]

 

우진이 고개를 들어 중앙 메인 프레임의 대형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순백색 타일 벽면 전체를 붉게 물들이며, 거대한 디지털 숫자가 미친 듯이 줄어들고 있었다.

 

[SYSTEM LAUNCH COUNTDOWN : 19:42]

 

십구 분 사십이 초.

 

시간이 절반 이하로 단축되어 있었다.

 

"하하하하! 쥐새끼들이 용을 쓰는군!"

 

천장의 스피커에서 서지훈의 광기 어린 비웃음이 쏟아져 내렸다.

 

"외곽 찌꺼기들을 좀 부쉈다고 이긴 줄 알았나? 국가 라이프 플래너의 데이터 패킷은 이미 전국 기간망으로 복제 전송되고 있다! 앞으로 20분도 안 남았다, 강우진! 저 아이들의 뇌세포를 다 태워서라도 네놈들을 뼈째 갈아 마셔주마!"

 

철컥, 철컥, 철컥.

 

중앙 통로를 가로막은 여덟 명의 친위대원들이 일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덜미 소켓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이 한층 더 짙어지며, 전신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했다.

 

오버클럭.

 

중앙 컴퓨터가 대원들의 생명 유지 한계선을 무시하고 최대 출력의 살상 모드를 강제로 주입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가와 콧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 자식…… 사람 목숨을……!"

 

태호가 피가 맺히도록 주먹을 쥐었다.

 

우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탄창을 갈아 끼웠다.

 

남은 탄환은 두 탄창.

 

서연의 손에 들린 외장 하드 하나에 5,100만 명의 자유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귓가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채린의 거친 숨소리.

 

그녀의 영혼을 지탱하던 은빛 동그라미가 산산조각 나기 직전이었다.

 

'물러설 곳은 없다.'

 

도형의 예측선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발을 내딛는 그 순간, 허공에는 그 어떤 시스템도 계산해 내지 못할 새로운 궤적이 새겨질 뿐이다.

 

우진은 서연과 태호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 속에 담긴 흔들림 없는 신뢰를 확인한 우진은, 소총의 가늠자를 중앙 통로의 붉은 사선(死線)을 향해 똑바로 겨누었다.

 

"가자."

 

망설임 없는 한마디와 함께, 세 사람은 19분의 시한폭탄이 맥동하는 최후의 심장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