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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로 간다 · 제 70화

지하 수로 잠입

📅 2026-10-02 18:10•✍️ 만우자•👁️ 0•

1. 칠흑의 관로와 14분의 모래시계

 

쿵, 하는 둔중한 진동과 함께 육중한 주철 차폐판이 닫혔다.

 

등 뒤에서 새어 나오던 역삼역 지하 공조실의 희미한 주황색 나트륨 불빛마저 완전히 차단되자, 시야는 말 그대로 완벽한 암전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코를 찌르는 것은 15년 동안 부식된 채 고여 있던 짙은 구리 냄새와, 피부를 에일 듯 파고드는 차가운 냉각 슬러지의 잔류 비린내였다.

 

어떠한 빛도, 어떠한 소리도 통과하지 못하는 고립된 관로 속.

 

직경 1.2미터의 원통형 합금 관로 내벽은 사방에서 강우진의 어깨와 무릎을 짓누르듯 좁혀들고 있었다.

 

강우진은 턱밑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을 삼키며 왼쪽 손목의 아날로그 다이버 워치를 비틀어 올렸다.

 

미세한 트리튬 야광 도료가 발하는 녹색 인광이 시계 다이얼의 초침을 드러냈다.

 

‘13분 48초.’

 

15년 전 강정호 박사가 설계했던 특수 고압 냉각수 배출 갱도.

 

수동 청동 밸브를 열어 수천 톤의 폐수가 역삼역 지하 배수로로 쏟아져 나간 뒤, 바닥에 유독한 잔류 질소 가스가 차오르기 전까지 인간의 폐포가 허락받은 시간은 정확히 14분뿐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이 관로는 인간이 숨 쉴 수 없는 거대한 밀폐 독가스실로 변한다.

 

우진은 묵직한 군용 K2C1 단축형 소총의 멜빵을 단단히 조여 메고, 손바닥에 덧댄 방탄 전술 장갑으로 바닥의 진흙 같은 잔류 찌꺼기를 짚었다.

 

차가웠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뼈를 시리게 만드는 냉기였다.

 

한때 그의 망막 위에는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였었다.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의 머리 위로 피어오르던 정교한 기하학적 도형들.

 

사물의 이동 궤적을 0.3초 앞서 그려내던 푸른색 예지선.

 

공간을 강제로 밀어내고 탄환조차 멈춰 세우던 절대 척력의 광륜.

 

하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은 소름 끼칠 만큼 고요했다.

 

오리진 코어 콘솔에 사파이어 마스터 암호 키를 꽂아 넣었던 순간, 영혼의 일부처럼 얽혀 있던 모든 이능의 회로가 남김없이 소각되어 사라졌다.

 

관자놀이를 짓누르던 15년 묵은 편두통은 씻은 듯 사라졌지만, 그 대가로 찾아온 것은 상처 입기 쉬운 나약한 인간 본연의 육체와 오감뿐이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우진은 축축한 배관 바닥에 팔꿈치를 박아 넣으며 몸을 앞으로 당겼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

 

다음에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반사신경과 감각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심장을 거칠게 뛰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박동은 결코 절망의 떨림이 아니었다.

 

살아있다는 감각.

 

자신의 발과 손으로 직접 운명을 기어가고 있다는 날것의 생명력이 혈관 속을 타고 돌았다.

 

“우진 씨, 뒤따라가고 있어요. 전방 경사각이 점점 가팔라집니다.”

 

바로 뒤편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한서연의 침착한 목소리가 울렸다.

 

좁은 원형 파이프 내벽을 타고 울리는 소리는 금속성의 잔향을 남기며 흩어졌다.

 

서연은 방수 전술 배낭 속에 외장 하드와 비상 통신 단말기를 단단히 결속한 채 우진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는 젖은 진흙투성이였지만,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서연 씨, 호흡 일정하게 유지해요. 폐활량을 아껴야 합니다. 태호는?”

 

“문제없습니다, 형님.”

 

서연의 뒤에서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5년 전 연구소 참사 당시 납치되어 목덜미에 자폭 테르밋이 심어졌던 피실험자 동생, 박태호였다.

 

비록 칩의 자폭 뇌관은 우진의 백신으로 제거되었지만, 그의 육체에 새겨진 강화 인간 특유의 근력과 본능은 여전히 날카롭게 살아 있었다.

 

태호는 침투 조의 후방을 경계하며 손바닥으로 관로 연결부의 리벳을 능숙하게 짚어나가고 있었다.

 

“30미터 전방에서 파이프가 45도 상향으로 꺾입니다. 넥스트 큐브 사옥의 지하 콘크리트 기초 지지벽을 관통하는 구간입니다.”

 

태호의 차분한 브리핑에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태호 말대로 상향 각도 구간부터는 양쪽 팔꿈치로 지지하면서 전진한다. 서연 씨를 중앙에 두고 속도 올린다.”

 

2. 파주의 신호와 보이지 않는 결사대

 

같은 시각, 경기도 파주시 문산천 제방도로 인근 폐염색 공장 지하 2층.

 

완벽한 구리 동판과 탄소 섬유로 둘러싸인 아날로그 벙커, 거점 7번의 공기는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지직, 찌르르르.

 

진공관 앰프의 발열판 위에서 푸르스름한 열기가 피어오르고, 구형 아날로그 주파수 수신기에서는 서울 상공을 훑고 지나가는 국가안전기획처의 전파 감시 노이즈가 거칠게 긁혀 나왔다.

 

“우진 오빠 일행이 배출관에 진입한 지 2분이 지났어요.”

 

윤채린이 낡은 모니터 앞에 바짝 다가앉으며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시선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콘솔 위에는 서울 수도권 전력망과 테헤란로 지하철 2호선 일대의 비상 신호 계통도가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었다.

 

오리진 코어가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괴물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 권력이라는 합법의 외피를 덮어쓴 채 ‘국가 라이프 플래너’라는 이름으로 부활을 획책하고 있었다.

 

정부는 오리진 코어 폭로 방송을 ‘국가 기간 데이터망에 대한 북한 및 불순 세력의 사이버 테러’로 규정했고, 전국의 통신망을 군용 단일 게이트웨이로 묶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이 통제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144.820MHz.

 

디지털 전산망이 깔리기 전부터 이 땅의 지하와 옥상, 외곽의 창고를 지켜왔던 아날로그 단파 무선망이었다.

 

“채린아, 3번 릴레이 안테나 증폭기 올려라. 남산 중계탑 쪽에서 정부 전파관리국 감청 차량 두 대가 신호를 훑고 있다.”

 

벙커 한편에서 굵은 납땜 인두기를 쥐고 있던 송민규가 땀을 닦으며 외쳤다.

 

그의 등 뒤로는 15년 된 구형 서버 랙들이 굉음을 내며 팬을 돌리고 있었다.

 

“잡히면 어떻게 되죠?”

 

“어떻게 되긴, 파주 벙커 위치가 털리고 계엄군 장갑차가 들이닥치는 거지. 하지만 최소한 저 녀석들이 테헤란로 지하 배관 쪽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려면, 우리가 여기서 계속 가짜 트래픽을 뿜어대야 해.”

 

민규가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그 웃음 속에는 생사를 넘나드는 자들만이 품을 수 있는 거친 투기가 배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만 싸우고 있는 게 아니야.”

 

그의 말대로였다.

 

무전기 스피커 너머로 미세한 파찰음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보내오는 암호화된 단파 신호들이 꼬리를 물고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 [부산 거점 2번 수신.

 

해운대 전산 중계소 인근 아날로그 망 확보 완료.

 

명령 대기 중.]

 

— [대전 거점 4번.

 

정부 청사 외곽 광케이블 분기점 감시 중.

 

더미 패킷 주입 준비 완료.]

 

— [광주 거점 6번.

 

상무지구 전광판 제어기 물리 접속 성공.

 

신호만 주십시오.]

 

정부의 거짓 발표에 속지 않고,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숨죽이며 때를 기다려온 해커들과 기술자, 해직 언론인들의 결사체, ‘언체인드’였다.

 

그들은 넥스트 큐브가 500만 대의 스마트폰에 심어두었던 미러 큐브 앱의 백그라운드 소켓을 역이용해 거대한 그물망을 엮어두고 있었다.

 

우진 일행이 지하 6층 예비 코어 룸에 도달해 외장 하드를 콘솔에 꽂는 순간, 그들이 쥐고 있는 모든 아날로그 및 P2P 회선이 일제히 불을 뿜을 터였다.

 

채린은 가슴에 걸린 아버지 윤상혁의 유품 목걸이를 꽉 쥐었다.

 

그녀의 머리 위를 맴돌던 은빛 동그라미(○) 역시 오리진 코어의 붕괴와 함께 완전히 흩어져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공백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남긴 뜻, 그리고 목숨을 걸고 차가운 배관을 기어오르고 있을 우진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였다.

 

“시작할게요.”

 

채린이 키보드 위의 낡은 엔터키를 힘차게 내리쳤다.

 

“서울시 교통정보센터와 테헤란로 지하 신호 제어망에 4중 분산 더미 펄스 송출합니다. 넥스트 큐브 관제실의 모든 외부 센서를 강남역과 삼성역 지상 교차로 쪽으로 유인하겠어요.”

 

찌르르르륵!

 

단파 송신탑의 코일이 시퍼런 불꽃을 튀기며 허공으로 보이지 않는 전파의 파도를 쏘아 올렸다.

 

지하 배관 속을 기어가는 세 사람을 지키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저항군의 첫 번째 엄호 사격이었다.

 

3. 붉은 격자망과 지능형 살인자들

 

탁, 타닥.

 

우진의 군화 끝이 미끄러운 45도 상향 배관의 용접 턱을 딛고 힘겹게 버텼다.

 

손목시계의 초침은 가차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7분 12초.’

 

절반의 시간이 날아갔다.

 

폐 속으로 들이마셔지는 공기는 눈에 띄게 희박해지고 있었고, 관로 하부에서부터 올라오는 잔류 가스의 매캐한 화학약품 냄새가 목구멍을 칼로 긁는 듯 옥죄어왔다.

 

우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앞을 가로막고 있는 세 번째 관로 분기점을 살폈다.

 

직경 1.2미터였던 관로는 여기서부터 건물의 진동을 흡수하기 위한 신축 이음관(Expansion Joint) 구간으로 이어져 있었다.

 

주름진 특수 고무와 강철 와이어로 엮인 좁은 통로.

 

그 주름관을 통과하면 바로 넥스트 큐브 사옥 지하 6층의 외벽 암반 차폐 구역이었다.

 

“잠깐, 멈춰요.”

 

맨 앞에서 기어가던 우진이 낮게 속삭이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뒤따르던 서연과 태호가 즉각 움직임을 멈추고 관로 내벽에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배관 안은 쥐 죽은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

 

오직 세 사람의 거친 심장 박동과, 파이프 너머에서 전해져오는 희미한 고주파 모터 구동음만이 웅웅거릴 뿐이었다.

 

우진은 조심스럽게 전술 조끼 주머니에서 초소형 광섬유 내시경 카메라를 꺼냈다.

 

가느다란 금속 도선을 신축 주름관의 미세한 배수 틈새로 밀어 넣었다.

 

손바닥만 한 흑백 소형 모니터의 전원이 켜지며 전방 배관 내부의 영상이 노이즈와 함께 잡혔다.

 

모니터를 확인한 우진의 턱선이 팽팽하게 굳어졌다.

 

“……젠장.”

 

나직한 욕설이 서연의 귓가에 스쳤다.

 

“우진 씨, 뭐가 보이나요?”

 

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진은 모니터를 뒤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서연과 태호가 볼 수 있게 했다.

 

화면 속, 주름관 너머로 이어지는 직선 배관 15미터 구간은 그야말로 지옥의 입구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관 내벽에 촘촘하게 박힌 십수 개의 붉은색 레이저 라인.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적외선 생체 감지 센서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배관 내부의 미세한 체온과 기압 변화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물망의 틈새는 고작 20센티미터도 되지 않았다.

 

성인 남성의 몸으로는 스치지 않고 통과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밀도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레이저망 너머에 있었다.

 

배관 상부의 레일을 따라 천천히 선회하고 있는 두 대의 검은색 기계체.

 

지름 30센티미터 남짓한 크기의 원반형 드론이었다.

 

동체 하부에는 9밀리 철갑탄을 장전한 3총열 초소형 미니건이 번뜩이고 있었고, 중앙의 센서 렌즈는 푸른색 광학 펄스를 뿜어내며 배관 내부의 음향과 열원을 실시간으로 스캔하고 있었다.

 

‘지능형 경비 드론…….’

 

우진은 입술을 짓씹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이런 것쯤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2단계 변화 감지로 드론의 센서 사각지대와 탄도를 미리 읽어내고, 절대 척력의 파동을 한 번 튕겨내는 것만으로 저런 쇳덩이 따위는 배관 벽에 짓이겨 납작하게 찌그러뜨렸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우진에게는 그 어떤 초자연적인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레이저에 스치는 순간 경보가 울릴 것이고, 0.1초 만에 미니건의 탄막이 좁은 배관 속을 찢어발기며 세 사람을 고기 분쇄기에 넣은 것처럼 갈아버릴 터였다.

 

“태호야, 저 센서 구조 알겠어?”

 

우진이 모니터를 응시하며 낮게 물었다.

 

태호가 우진의 어깨 너머로 모니터를 유심히 살폈다.

 

그의 눈빛이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듯 차갑게 가라앉았다.

 

“‘케르베로스 Mk-4’ 자율 방어 드론입니다. 넥스트 큐브 지하 암반 시설의 최하층 환기구와 배수관에만 배치되는 물건입니다. 레이저에 걸리면 즉각 교차 사격을 개시하고, 내벽을 향해 도비탄을 유도해서 표적을 완전히 벌집으로 만듭니다. 소음기와 차폐 장치가 되어 있어서 외부 지상 전산실에는 총성이 새어 나가지도 않습니다.”

 

“우회로는?”

 

“없습니다. 저 주름관을 통과하지 못하면 지하 6층 예비 코어로 들어가는 길 자체가 차단됩니다.”

 

태호의 단호한 대답에 공기는 더욱 무겁게 얼어붙었다.

 

‘남은 시간, 5분 20초.’

 

배관 아래쪽에서부터 올라오는 잔류 질소 가스의 매캐함이 이제는 눈시울을 찌르고 있었다.

 

가쁜 숨을 쉴 때마다 폐포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물러설 수도, 주저앉아 질식해 죽을 수도 없었다.

 

우진의 뇌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초인적인 연산 능력이 사라진 자리, 그곳을 채운 것은 6년간 대기업 물류 기획팀에서 밤을 새우며 다져온 집요한 분석력과,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뼈에 새긴 실전의 직관이었다.

 

‘도형은 사라졌지만, 사물의 물리 법칙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진은 모니터 속 드론의 움직임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규칙.

 

기계는 반드시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인다.

 

인간이 만든 모든 통제 시스템에는 설계자의 오만과 타협이 남긴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태호야, 저 드론의 센서 스캔 주기를 봐.”

 

우진의 나지막한 지적에 태호와 서연의 시선이 모니터로 쏠렸다.

 

“좌측 드론이 회전하면서 음향 센서를 배관 벽으로 튕겨내는 순간, 우측 드론의 광학 카메라는 레일 상부의 분전반 쪽으로 0.8초간 사각을 형성해. 두 기체가 데이터를 동기화하는 순간 발생하는 미세한 딜레이야.”

 

“하지만 형님, 레이저망이 배관을 완전히 메우고 있습니다. 드론의 시야를 피한다 해도 레이저를 건드리면 끝장입니다.”

 

“레이저의 파장을 봐라.”

 

우진이 씩 웃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공포를 집어삼킨 서늘한 투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단일 파장이 아니야. 배관 내벽의 녹과 습기 때문에 오작동을 방지하려고, 바닥에서 10센티미터 높이의 하부 레이저는 감도를 40% 낮춰뒀어. 냉각 슬러지가 튈 때마다 경보가 울리면 안 되니까.”

 

서연의 눈이 커졌다.

 

“그렇다면…….”

 

“바닥에 엎드려서 슬러지를 덮어쓰고 포복하면 센서망을 속일 수 있어. 단, 정확히 3초의 틈새야. 드론 두 대가 서로 등을 돌리고 교차하는 3초 안에, 저 15미터 구간의 레이저망 밑을 통과해서 드론의 하부 센서 렌즈를 박살 내야 해.”

 

“우진 씨, 그건 인간의 속도로 불가능해요!”

 

서연이 사색이 되어 우진의 팔을 붙잡았다.

 

“3초 안에 15미터를 포복으로 돌파해서 공중에 뜬 드론 두 대를 맨몸으로 격추한다고요? 이능도 없는 상태에서 조금만 삐끗해도 미니건에 맞아요!”

 

“불가능하지 않아.”

 

우진은 천천히 소총의 노리쇠를 후퇴 고정했다가 놓았다.

 

찰칵, 하는 맑고 차가운 금속음이 밀폐된 관로 안에 울렸다.

 

“내가 앞장선다. 내가 첫 번째 드론을 낚아채서 바닥에 처박는 순간, 태호가 뒤따라 들어와 두 번째 녀석의 구동부를 날려. 서연 씨는 그 틈에 콘솔 접속용 케이블을 챙겨서 내 등 뒤로 붙어요.”

 

우진은 서연의 떨리는 손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걱정 마요, 서연 씨. 내 눈엔 이제 세모도 네모도 안 보이지만, 내 눈앞에 있는 동료들과 내가 가야 할 길은 그 어느 때보다 똑똑히 보이니까.”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담담해서, 오히려 듣는 이의 심장을 세차게 흔들어 깨웠다.

 

우진은 방탄모의 턱끈을 바짝 조이고, 배관 바닥의 악취 나는 검은 슬러지를 양손 가득 퍼올려 자신의 전술 조끼와 어깨, 얼굴에 빈틈없이 문질렀다.

 

체온을 차단하고 광학 반사를 막기 위한 원시적이고 처절한 위장이었다.

 

태호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대검을 거꾸로 쥐었다.

 

손목시계의 초침이 마침내 임계점에 다다랐다.

 

‘3분 40초.’

 

“숨 참아.”

 

우진의 나지막한 명령과 함께, 세 사람은 지옥의 아가리를 향해 몸을 던졌다.

 

4. 살얼음판의 교차로

 

쉬이이익—.

 

주름관을 빠져나오자마자 살얼음 같은 냉기가 온몸의 털을 곤두세웠다.

 

바닥은 얼어붙을 듯 차가운 기름 찌꺼기와 냉각 폐수로 질척거렸고, 천장과 벽면을 가득 채운 붉은색 레이저 선들이 우진의 정수리 바로 위 5센티미터 높이에서 섬뜩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우진은 턱을 바닥에 완전히 짓이긴 채, 도마뱀처럼 팔꿈치와 발끝의 마찰력만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차가운 오수가 뺨을 타고 흘러 입안으로 들어왔지만 침을 삼킬 여유조차 없었다.

 

위이잉—.

 

머리 위 1미터 높이에서 첫 번째 드론의 반사경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푸른색 광학 스캔 렌즈가 배관 벽을 훑고 지나간다.

 

‘지금이다.’

 

우진의 동체 시력이 찰나의 빈틈을 포착했다.

 

좌측 드론이 레일 끝에서 180도 회전하며 데이터 동기화 펄스를 내뿜는 순간, 우측 드론의 총열이 상부 환기구 쪽으로 비스듬히 들려 올라갔다.

 

정확히 0.8초의 사각.

 

우진은 바닥을 박차며 상체를 튕겨 올렸다.

 

붉은 레이저 선 하나가 그의 방탄 조끼 견목 패드를 스치며 치이익, 하고 나일론 섬유를 태우는 연기를 피워 올렸다.

 

경보 부저의 접점이 닿기 직전, 우진의 오른손이 허공을 갈랐다.

 

타앙!

 

K2C1 소총의 개머리판이 첫 번째 드론의 상부 레일 결합부를 정확하게 후려쳤다.

 

스파크가 튀며 쇳소리가 진동했다.

 

드론의 모터가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찰나, 우진은 왼팔로 드론의 본체를 낚아채 자신의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지잉!

 

철컥!

 

하부의 3총열 미니건이 강제 발사 시퀀스를 가동하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총구가 우진의 목덜미를 겨누는 절체절명의 0.1초.

 

우진은 주저 없이 전술 대검의 칼날을 미니건의 총열 회전축 톱니바퀴 사이에 깊숙이 쑤셔 박았다.

 

콰직!

 

모터가 과부하로 쇼트를 일으키며 검은 연기를 토해냈다.

 

동시에 우진은 드론을 배관 바닥의 차가운 오수 속에 처박고 온몸의 체중을 실어 짓눌렀다.

 

치지지직!

 

합선된 전류가 물을 타고 우진의 방탄 장갑을 통해 찌릿하게 타고 올라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 순간, 배관 반대편에서 두 번째 드론이 붉은색 비상 경보등을 점멸하며 총구를 우진의 등 뒤로 돌렸다.

 

‘삐이이이—!’

 

타깃 락온(Lock-on) 음이 좁은 관로를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우진이 몸을 피하기에는 배관이 너무 좁았고, 손은 첫 번째 드론을 억누르느라 묶여 있었다.

 

“우진 씨!”

 

서연의 비명이 터져 나온 찰나.

 

우진의 등 뒤를 스쳐 지나간 그림자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박태호였다.

 

태호는 군화 발로 배관 측면의 강철 리벳을 디딤돌 삼아 날아오르며, 양손으로 쥐고 있던 묵직한 주철 배관 렌치를 전력을 다해 내리찍었다.

 

깡—!!

 

귀를 찢는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두 번째 드론의 중앙 광학 렌즈가 박살이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드론이 중심을 잃고 빙글빙글 돌며 무차별 난사를 시작하려는 순간, 태호가 드론의 통제 회선 뭉치를 맨손으로 움켜쥐고 단숨에 뜯어냈다.

 

뿌드득, 툭!

 

구리선과 광케이블 다발이 끊겨 나가며 튀긴 스파크가 어두운 배관 내부를 대낮처럼 번쩍 밝혔다.

 

마침내 두 대의 살인 기계가 차가운 폐수 바닥에 고철 덩어리가 되어 널브러졌다.

 

치직, 치익…….

 

꺼져가는 배터리의 잔류 전류 소리만이 적막 속에 흩어졌다.

 

우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탄 조끼 앞자락은 기름과 진흙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대검을 쑤셔 박았던 오른손 손목은 삐었는지 욱신거리는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해냈다.’

 

초인적인 힘 따위는 없었다.

 

오직 인간의 근육과 뼈, 찰나의 판단과 동료를 향한 믿음만으로 기계의 통제망을 찢어 발긴 것이었다.

 

“태호야,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형님이 판을 깔아주지 않으셨다면 접근조차 못 했을 겁니다.”

 

태호가 피 묻은 손을 털어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 속에는 15년 동안 갇혀 있던 피실험자의 트라우마를 제 손으로 깨부수었다는 은밀한 긍지가 깃들어 있었다.

 

“두 사람 다 다친 데는 없어요?”

 

서연이 배낭을 고쳐 메며 다가왔다.

 

그녀의 이마에도 검은 기름때가 묻어 있었지만, 두 눈만큼은 결연한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괜찮아요. 서연 씨, 시간은?”

 

우진이 묻자 서연이 손목의 계측기를 확인했다.

 

“1분 15초 남았어요. 유독가스 센서가 황색으로 변하고 있어요. 서둘러야 해요!”

 

관로 뒤편에서부터 슈우우, 하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희미한 백색 연무가 밀려오고 있었다.

 

배수 공백기가 끝나고 차오르기 시작한 치명적인 고농도 질소 잔류 가스였다.

 

우진은 고개를 돌려 전방을 바라보았다.

 

드론이 지키고 있던 직선 코스의 끝, 두꺼운 4중 차폐 패널로 봉인된 직경 1미터의 원형 비상 점검 해치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표면에는 넥스트 큐브의 푸른색 육면체 로고와 함께 붉은색 스텐실 문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RESTRICTED AREA : SUB-CORE VAULT B-6]

 

(출입 제한 구역 : 지하 6층 예비 코어 볼트)

 

마침내 도달한 것이었다.

 

국가 권력과 결탁해 전 국민을 데이터 가축으로 묶어두려는 괴물의 새로운 심장, 그 바로 밑바닥에.

 

5. 철문 너머의 심연

 

“태호야, 해치 잠금장치 구조는?”

 

우진이 K2C1 소총을 앞으로 고쳐 메며 물었다.

 

태호가 해치 중앙의 유압식 회전 휠과 디지털 키패드를 신속하게 점검했다.

 

“외부 전산망과는 분리된 순수 기계식 3중 빗장입니다. 화재나 비상사태 시 냉각수가 역류하지 못하도록 안쪽에서 수동으로 걸어 잠그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15년 전 설계 표준대로라면, 상부의 비상 수동 해제 레버를 180도 꺾으면 걸쇠가 강제로 풀립니다.”

 

태호가 배관 천장에 녹슬어 붙어 있는 붉은색 T자형 철제 레버를 가리켰다.

 

두꺼운 구리스와 먼지가 엉겨 붙어 있어 성인 남성 서넛이 매달려도 쉽게 돌아갈 것 같지 않은 흉물스러운 쇠막대였다.

 

‘치이이익—!’

 

등 뒤 10미터 지점까지 백색 가스가 뱀의 혓바닥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공기 중에 섞인 유독 성분에 눈이 따가워지고 목구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서연 씨는 내 뒤에 바짝 붙어요. 문이 열리는 즉시 안쪽으로 굴러 들어갑니다.”

 

“알겠어요!”

 

“태호,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당긴다.”

 

“예!”

 

우진과 태호가 동시에 손을 뻗어 녹슨 T자형 레버를 움켜쥐었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금속의 감촉.

 

이능이 사라진 우진의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팽팽하게 당겨졌다.

 

“하나, 둘, 셋…… 당겨!!”

 

우진의 포효와 함께 두 남자의 체중이 레버에 실렸다.

 

뿌드득, 삐걱!

 

15년간 굳어 있던 쇳덩이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녹슨 철가루가 비 오듯 쏟아져 내리며 두 사람의 얼굴을 때렸다.

 

힘줄이 끊어질 듯 솟아오르고, 폐 속의 산소가 한계에 달해 눈앞이 하얗게 점멸하는 순간.

 

철컥—!!

 

쾅!

 

육중한 유압 핀이 빠져나가는 묵직한 파열음과 함께, 원형 해치가 안쪽으로 10센티미터가량 덜컥 내려앉았다.

 

동시에 차폐 패널 틈새로 살인적인 에어컨 냉기와 함께 눈부신 형광등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밀어!”

 

우진이 어깨로 해치를 거칠게 들이받았다.

 

끼이이익— 쾅!

 

육중한 철문이 활짝 열려 젖혀지며, 세 사람은 바닥을 구르듯 차폐벽 너머의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태호가 번개처럼 손을 뻗어 해치를 다시 닫고 수동 빗장을 내리찍었다.

 

쿵!

 

등 뒤에서 밀려들던 유독가스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하아…… 하아…… 하아…….”

 

차가운 타일 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사람은 미친 듯이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폐포 깊숙이 파고드는 산소의 맛이 달콤하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우진은 거친 숨을 고르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마주한 순간, 그의 숨이 다시 한번 턱 끝까지 멎어 들었다.

 

“……여기가, 지하 6층 예비 코어?”

 

서연의 떨리는 목소리가 거대한 침묵의 공간을 울렸다.

 

그곳은 역삼역 지하 7층의 음산했던 암반 동굴이나 본사 지하의 차가운 서버실과는 차원이 달랐다.

 

축구장 두 개를 합쳐놓은 듯한 광활한 지하 벙커 홀.

 

벽면 전체는 순백색의 무균 타일과 방음 패널로 둘러싸여 있었고, 천장 높이만 15미터에 달하는 공간 중앙에는 수천 가닥의 초고속 광케이블이 기둥처럼 치솟아 있었다.

 

그 기둥들의 정중앙.

 

거대한 원통형 양자 슈퍼컴퓨터 메인 프레임이 푸른빛을 맥동하며 장엄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콘솔 상단의 거대한 홀로그램 전광판에는 붉은색 글씨로 전국 단위의 데이터 동기화 현황이 실시간으로 카운트다운되고 있었다.

 

[NATIONAL LIFE PLANNER : D-DAY OPERATION]

 

(국가 라이프 플래너 : 전국 동시 송출 준비율 89.4%)

 

[GOVERNMENT GATEWAY : CONNECTED]

 

(대한민국 정부 국가안전기획처망 직결 완료)

 

[SYSTEM INITIALIZATION : 00:42:15 REMAINING]

 

(시스템 전면 가동까지 남은 시간 : 42분 15초)

 

42분.

 

그 시간이 지나면 대한민국 5,100만 명의 모든 금융, 의료, 통신, 인사 데이터가 이 단 하나의 서버로 통합되어 영구히 통제된다.

 

오리진 코어를 부수며 일궈냈던 희생과 폭로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

 

“우진 씨, 저기 메인 콘솔이 있어요!”

 

서연이 홀 중앙, 계단 위에 우뚝 솟은 메인 제어 단말기를 가리켰다.

 

외장 하드를 꽂아 언체인드의 마스터 펌웨어를 주입할 수 있는 유일한 목표점이었다.

 

그러나 우진은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메인 콘솔 앞, 넓은 대리석 홀 중앙에 일정한 간격으로 부동자세를 취하고 서 있는 ‘그림자들’에게 꽂혀 있었다.

 

하나, 둘, 셋…… 모두 열두 명.

 

검은색 특수 방탄복을 입고 얼굴을 카본 마스크로 가린 자들.

 

그들의 목덜미에는 3세대 나노 바이오 전극 소켓이 푸른빛을 점멸하며 중추신경계로 파고들어 있었고, 손에는 차가운 인과율 집속 돌격소총이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우진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 것은 그들의 무장이 아니었다.

 

‘……움직이지 않아.’

 

그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미세한 근육의 떨림도, 눈 깜빡임도 없었다.

 

마치 거대한 전산망의 일부로 박제된 부품처럼, 완벽한 침묵 속에서 메인 프레임을 등지고 서 있었다.

 

15년 전 연구소에서 사라졌던 피실험자 아이들을 기반으로, 서지훈과 넥스트 큐브가 완성해 낸 최후의 걸작.

 

자아와 고통이 완벽히 거세된 채 중앙 알고리즘의 살상 명령만을 반사적으로 실행하는 ‘3세대 강화 능력자 친위대’였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

 

우진의 눈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태호의 굳어버린 안색이 그들의 상태를 대변하고 있었다.

 

“형님…… 저 녀석들…….”

 

태호의 목소리가 억눌린 공포로 잘게 떨려 나왔다.

 

“목덜미 칩이 코어와 100% 동기화되어 있습니다. 감정도, 망설임도 없는 기계들이에요. 저 통로를 지나지 않고는 콘솔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때였다.

 

지하 홀의 정적을 깨고, 천장에 매설된 수십 개의 지향성 스피커에서 나직하고 비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치직, 치익.

 

“배관을 기어 다니는 쥐새끼처럼 용케도 기어 올라왔군, 강우진.”

 

소름 끼치도록 익숙한 목소리.

 

메인 콘솔 상부의 거대한 브라운관 모니터가 켜지며, 휠체어에 앉은 채 붕대를 감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었다.

 

서지훈이었다.

 

비록 우진과의 격투로 온몸이 부서지고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화면 너머 그의 눈빛에는 세상을 손에 넣었다는 뒤틀린 광기와 오만이 가득 차 있었다.

 

“네놈이 오리진 코어를 부수고 영웅이라도 된 줄 알았겠지. 하지만 봐라. 우매한 대중은 자유를 감당하지 못해 울부짖으며 스스로 족쇄를 채워달라고 애원했고, 정부는 기꺼이 그들의 목줄을 내게 넘겨주었다.”

 

서지훈이 턱을 치켜들며 모니터 너머의 우진을 꿰뚫어 보듯 비웃었다.

 

“이제 넥스트 큐브는 일개 사기업이 아니다. 국가 그 자체다. 그리고 네놈의 그 잘난 기적, 눈앞을 어지럽히던 그 도형 놀음은 이미 네 뇌 속에서 불타 사라졌지. 능력도 없는 일개 나약한 인간이, 과연 이 완벽한 국가의 방패를 뚫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서지훈의 손가락이 휠체어 팔걸이의 붉은 스위치를 내리눌렀다.

 

삐이익—!

 

날카로운 전자음과 함께, 홀 중앙에 석상처럼 멈춰 서 있던 열두 명의 강화 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꺾었다.

 

치지지직!

 

그들의 목덜미 소켓에서 시퍼런 스파크가 튀며, 열두 쌍의 차가운 눈동자가 우진과 서연, 태호를 향해 일제히 락온되었다.

 

동시에 천장 배수로 상부에서 십수 대의 지능형 경비 드론이 추가로 사출되며 퇴로를 완벽히 차단했다.

 

도형도, 미래 예지도, 절대 척력도 없는 좁은 사지.

 

하지만 강우진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K2C1 소총의 총구를 천천히 들어 올려 화면 속 서지훈의 미간을 똑바로 겨누었다.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오직 자신의 피와 살로 괴물에게 종말을 고하겠다는 거대한 분노와 전율이었다.

 

“서지훈.”

 

우진의 목소리가 텅 빈 지하 벙커의 공기를 서늘하게 갈랐다.

 

“네가 만든 시스템이 완벽할지 몰라도, 인간은 계산식대로 움직이지 않아. 내 두 발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내 손으로 네 그 가짜 낙원을 끝장내 주마.”

 

철컥.

 

우진의 손가락이 차가운 방아쇠에 걸렸다.

 

물러설 곳 없는 지하 6층의 심연 속에서, 최후의 결전이 마침내 총성을 터뜨릴 준비를 마쳤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