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공포
1. 무너진 격자의 잔상
지하 100미터의 오리진 코어 메인 통제 홀을 채우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거대한 원통형 액체 챔버에서 뿜어져 나오던 시퍼런 전자기 섬광은 우진이 테르밋 뇌관을 강제로 뜯어낸 뒤로 맥없이 깜빡였다.
우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에는 뇌관의 미세 회로를 억지로 쇼트시키며 묻은 검은 그을음과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그의 시야는 맑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머리 위를 짓누르던 하얀 네모(□)와 검붉은 세모(△), 칠흑 같은 큐브의 잔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시신경을 바늘로 후벼 파던 편두통도, 관자놀이의 4센티미터 수술 흉터를 욱신거리게 하던 기괴한 안압 상승도 거짓말처럼 멎어 있었다.
유년기 신경 궤도 절제술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왜곡해 받아들이던 공감각적 노이즈가 마침내 종식된 것이었다.
오직 인간의 맨눈으로 바라보는 날것의 현실만이 망막에 맺혔다.
"허억…… 큭, 크하하……."
벽면에 처박혀 피를 토하던 서지훈이 갈라진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가 말끔하던 정장 깃을 적시고 있었다.
가슴에 달고 있던 황금 육면체 배지는 금이 간 채 바닥에 뒹굴었다.
서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벽을 짚으며 비틀비틀 상체를 일으켰다.
"대단하군, K-07……. 아니, 강우진. 네놈이 기어이 챔버의 자폭선마저 끊어냈어. 그 괴물 같은 척력으로…… 내 손발을 다 잘라냈다고 생각하겠지?"
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챔버 콘솔로 다가가 생체 링커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분리했다.
액체 관에서 빠져나온 차가운 배수 밸브가 열리며 챔버 안의 특수 냉각수가 쏟아져 내렸다.
"쿨럭…… 우, 우진아……."
마비된 두 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와이어에 매달려 있던 강정호 박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15년간의 억류와 생체 착취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노인의 얼굴이었다.
우진은 달려가 아버지를 부축했다.
가늘게 떨리는 아버지의 어깨를 감싸 쥐는 순간, 우진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뜨거운 격정이 치밀어 올랐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정신이 드세요?"
"난…… 괜찮다. 네 손이…… 따뜻하구나. 정말로 내 아들이 맞구나……."
강정호는 떨리는 마른 손을 뻗어 우진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우진의 손등에 떨어졌다.
머리 위의 족쇄도, 시스템의 잔혹한 명령 코드도 사라진 자리에서 오직 피를 나눈 부자의 온기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평온은 길지 않았다.
메인 콘솔 상단에 매달린 수십 대의 대형 모니터가 일제히 붉은빛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삐-익!
삐-익!
귀를 찢는 듯한 경보음과 함께 지상의 실시간 데이터 피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SYSTEM ALERT : KERNEL INTEGRITY FAILURE]
[사각 격자망(GRID) 동기화 손실률 : 84.7%]
[전국 결손 엔트로피(EP) : 14,200,000 돌파]
[경고 : 다중 노드 자율 궤도 붕괴 및 집단 인지 부조화 발생]
모니터에 뜬 수치는 통제 불능의 파멸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서연과 파주 거점 7번이 전국 500만 스마트폰과 전광판으로 쏘아 올린 폭로 스트리밍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넥스트 큐브가 감추어 온 5,100만 명의 인생 궤도 조작 문건, 사전에 입력된 죽음과 파멸의 시간표, 미러 큐브의 가축화 알고리즘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진이 바라던 해방의 환희가 아니었다.
2. 거울을 부수는 자들
"보아라, 강우진! 저게 네가 만든 세상이다!"
서지훈이 벽을 딛고 서서 모니터 벽면을 손가락질했다.
그의 얼굴에는 패배자의 수치심 대신 기괴한 희열과 조소가 가득했다.
모니터 속 화면은 서울 테헤란로, 광화문, 강남역, 여의도 증권가의 실시간 CCTV 영상이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십만 명의 인파가 화면을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환호하지 않았다.
승리의 깃발을 흔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질려 있었다.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며 서로의 얼굴을, 머리 위 허공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이게 다 거짓말이라고?"
"내가 10년 동안 노력해서 승진한 게…… 그 빌어먹을 시스템이 정해준 대본이었다고?"
"그럼 내 딸은? 작년에 암으로 죽은 내 딸도…… 엔트로피인지 뭔지를 메우려고 죽인 거라고?"
누군가는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오열했다.
자신이 일궈온 삶의 모든 성취와 비극이 고작 거대 전산망의 변수 조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아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더 끔찍한 것은 그 뒤에 찾아온 공포였다.
스마트폰 화면 속 미러 큐브 앱이 강제 종료되고, 내일의 일정과 최적화 경로를 알려주던 인공지능이 침묵하자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앱이 안 켜져……!"
"야, 내일 주식 어떻게 해야 해? 나 어디로 가야 하냐고!"
"정답이 사라졌잖아!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데!"
사람들은 길을 잃은 개미 떼처럼 우왕좌왕했다.
언제 사고가 날지, 언제 죽을지,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 모든 것을 계산해 주던 사각의 요람이 사라지자, 인간은 날것의 미래라는 거대한 암흑 앞에 내던져졌다.
불확실성.
단 1초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그 원초적인 공포가 수백만 군중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야! 너 왜 날 그렇게 쳐다봐?"
"비켜! 네가 내 궤도를 훔쳐 가려는 거지?"
누군가가 옆 사람의 멱살을 잡았다.
한번 터져 나온 의심과 광기는 삽시간에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길가에 세워진 자동차들이 뒤집히고, 상점의 유리창이 깨져나갔다.
도심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사람들은 진실을 전파하던 전광판을 향해 돌을 던졌다.
"화면 꺼! 저딴 개소리 치우라고!"
"차라리 몰랐을 때가 나았어!"
"내 네모를 돌려내! 내 안전한 네모를 돌려달란 말이야!"
확성기를 든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절규했다.
그 절규는 단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광장에 모인 수천, 수만의 군중이 합창하듯 울부짖기 시작했다.
"네모를 돌려줘!"
"우리를 다시 관리해라!"
"내일의 정답을 알려달라고!"
모니터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음성은 지하 100미터 통제 홀의 스피커를 찢을 듯이 울렸다.
인간은 자유를 얻은 순간, 그 자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족쇄를 채워달라며 울부짖고 있었다.
자유의 공포가 문명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3. 설계자의 조소
서지훈이 비틀거리며 우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깨진 안경 너머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번뜩이며 우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들리느냐? 저 울부짖음이? 저게 바로 인간의 민낯이다, 강우진."
우진의 턱 근육이 굳어졌다.
서지훈은 가슴을 쥐어짜며 비열하게 웃었다.
"내가 말했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맡겨두면 문명은 스스로를 불태워 멸망할 뿐이라고. 인간은 나약해. 자유 따위는 원하지 않아.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건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정해져 있는 안전한 일상과, 고민할 필요 없는 선택지, 그리고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라는 알량한 착각뿐이다!"
서지훈의 목소리가 통제 홀의 높은 천장을 때렸다.
"너는 저들에게서 그 안락한 껍질을 강제로 벗겨냈어. 벌거벗겨진 벌레들이 살을 에는 바람에 비명을 지르고 있잖아! 저들은 네놈을 구원자로 보지 않아. 자신들의 따뜻한 사각 감옥을 부숴버린 파괴자, 흉측한 괴물로 볼 뿐이다!"
우진은 서지훈의 멱살을 잡지 않았다.
주먹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차갑게 가라앉은 푸른 눈동자로 모니터 속 군중을 응시했다.
그의 귓가에 15년 전,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지하철 2호선에서 백색 네모를 띄운 채 무기력하게 출근하던 회사원들.
조작된 시간표에 따라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숨을 거두어야 했던 이름 모를 임원.
자신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거대한 톱니바퀴의 부속품으로 갈려 나가던 무수한 사람들.
그들은 시스템의 희생자였지만, 동시에 그 시스템이 주는 안락함에 마약처럼 취해 있던 공범들이기도 했다.
"……알고 있었다."
우진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서지훈의 웃음이 뚝 멎었다.
우진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지하 100미터의 냉기보다 더 차갑고 단단했다.
"자유가 따뜻한 안식처일 거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알을 깨고 나오는 새는 둥지를 잃고, 껍질을 벗은 살갗은 흙먼지에 찢기기 마련이니까."
우진은 천천히 품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의 손끝에 단단하고 차가운 사각의 물체가 닿았다.
아버지가 15년의 세월을 바쳐 액체 챔버 속에서 깎아낸 단결정 사파이어 반도체.
오리진 코어의 모든 사각 격자 연산식을 영원히 소각하고, 이 땅의 모든 능력자에게서 이능을 거두어갈 마스터 암호 키였다.
우진이 사파이어 칩을 꺼내 들자, 서지훈의 두 눈이 경악으로 찢어졌다.
"그, 그것은……? 설마 강정호…… 네놈이 기어이 그걸 완성했단 말이냐?"
서지훈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얼굴에서 조소와 광기가 순식간에 탈색되고, 원초적인 공포가 밀려들었다.
"안 돼……! 그걸 꽂으면 안 된다! 오리진 코어가 완전히 지워지면…… 대한민국의 모든 전산망과 사회 인프라를 복구할 백업 데이터조차 영구 소멸해! 저 미쳐 날뛰는 군중을 진정시킬 방법이 영원히 사라진다고!"
4. 지상의 비명, 지하의 진동
쿵!
쿵!
쿵-!
그때, 머리 위 천장에서 거대한 진동이 울렸다.
지하 100미터까지 닿을 리 없는 둔탁한 충격음이었다.
콘솔의 보안 카메라 화면 하나가 지상 1층 로비의 참상을 비추었다.
넥스트 큐브 본사의 강화 방탄유리 회전문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쇠파이프와 각목, 소화기를 들고 로비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이성이 없었다.
공포와 분노에 절은 맹목적인 광기만이 번뜩였다.
"넥스트 큐브 수뇌부를 끌어내라!"
"서지훈을 내놔! 우리 궤도를 다시 복구하라고 해!"
"차라리 시키는 대로 살 때가 편했어! 이런 지옥 같은 자유 따위 필요 없어!"
보안 요원들은 이미 총기와 진압봉을 버리고 도주한 지 오래였다.
성난 군중은 1층 안내 데스크를 부수고, 벽면의 전산 단말기를 뜯어내며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 홀을 향해 밀물처럼 쇄도했다.
[WARNING : CENTRAL ELEVATOR SHAFT BREACHED]
[비상계단 1구역부터 4구역까지 침입자 다수 감지]
군중은 지하 100미터, 오리진 코어가 있는 이곳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시스템의 지배자들을 단죄하러 오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목에 다시 쇠사슬을 채워달라고, 내일의 각본을 다시 써달라고 애원하기 위해 지옥의 아가리로 뛰어들고 있는 것이었다.
치지직-!
우진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아날로그 트랜시버에서 거친 노이즈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서연이었다.
[우진 씨!
들려요?
우진 씨!]
그녀의 목소리는 가쁘게 떨리고 있었다.
배경음으로 성난 군중의 고함과 최루탄 터지는 소리, 사이렌 소리가 뒤섞여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서연 씨, 전 괜찮습니다.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안전한 곳에 있나요?"
[본사 맞은편 빌딩 지하 계단에 숨어 있어요…….
그런데, 상황이 너무 심각해요.
우리가 공개한 증거를 보고 사람들이…… 사람들이 기뻐하기는커녕 서로를 죽일 듯이 공격하고 있어요.
경찰도, 군부대도 통제를 포기했어요.
다들 스마트폰만 붙잡고 울부짖고 있어요…….]
서연의 목소리 끝이 젖어 들었다.
진실을 밝히면 세상이 정의로워질 것이라 믿었던 한 기자의 이상이, 인간 본성의 처절한 나약함 앞에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우진 씨…… 우리가 한 일이 정말 맞았던 걸까요?
사람들은…… 사람들은 진실을 감당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어요.
차라리……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던 걸까요?]
그녀의 절망적인 자문은 통제 홀의 차가운 바닥을 울렸다.
우진은 트랜시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모니터 속에서 서로를 짓밟으며 본사로 난입하는 군중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에 서린 것은 악의가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낯선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을 때 느끼는, 뼈를 깎는 고독과 공포였다.
네모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광야에서, 그들은 맹수보다 더 끔찍한 '선택의 책임'이라는 괴물을 마주하고 있었다.
5. 알을 깨는 고통
"우진아."
쇠사슬처럼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 강정호의 목소리였다.
강정호는 떨리는 손으로 아들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의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흐르는 눈빛은 흔들림 없이 맑았다.
"네 탓이 아니다. 이것은…… 인류가 언젠가는 반드시 치러야 했던 대가다."
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강정호는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두 다리를 내려다보며 쓰게 웃었다.
"15년 전, 내가 네 관자놀이에 메스를 대고 궤도 신경을 잘라냈을 때…… 나 역시 똑같은 공포에 떨었다. 내 어린 아들에게서 평온한 일상을 빼앗고, 평생 편두통과 고립 속에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차라리 남들처럼 사각의 감옥 속에서 모르는 척, 주는 밥을 먹고 짜인 각본대로 살게 내버려 두는 것이 부모로서의 도리가 아닌가……."
노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우진아, 가축으로 사는 삶은 삶이 아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날짜가 정확히 적혀 있다고 해서 그 삶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강정호는 고개를 들어 모니터 속 군중을 가리켰다.
"저들은 지금 아파하고 있는 거다. 평생 깁스를 차고 살던 사람이 깁스를 풀었을 때, 처음 내딛는 발걸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느냐. 뼈가 시리고 근육이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두려워해 다시 깁스를 차겠다고 울부짖는다면…… 인간은 영원히 두 발로 걷지 못한다."
"아버지……."
"선택해라, 내 아들아."
강정호가 우진의 손에 쥐인 푸른 사파이어 칩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저들이 두려움에 질려 다시 괴물을 부활시키기 전에…… 네가 시작한 일을 끝맺어라. 불확실한 내일로 걸어 나가는 공포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유일한 증거다."
서지훈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닥쳐! 헛소리 집어치워, 강정호! 너희가 저들의 내일을 책임질 수 있어? 저 수천만 명의 방황과 굶주림, 범죄와 살육을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느냐고! 우리가 있었기에 저들은 평화로웠다! 우리의 네모가 있었기에 문명이 유지되었단 말이다!"
서지훈은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우려 몸을 던졌다.
그러나 우진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우진이 가볍게 발을 구르자, 바닥을 타고 흐른 투명한 척력 파동이 서지훈의 몸을 쳐올렸다.
쾅-!
서지훈은 벽면에 다시 한번 처박히며 피를 토하고 완전히 늘어졌다.
더 이상의 문답은 필요 없었다.
6. 마지막 문턱 앞에서
우진은 천천히 메인 콘솔의 중심부로 걸어갔다.
오리진 코어의 심장부.
수만 가닥의 광섬유 케이블이 집속되어 푸른빛을 맥동하는 [MASTER CIPHER PORT]가 붉은 경보등 아래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포트에 사파이어 칩을 밀어 넣는 순간, 오리진 코어의 모든 알고리즘은 영구히 소각된다.
도시를 통제하던 사각 격자망의 잔재는 완전히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우진 자신을 포함해, 이 비틀린 시스템의 파생물로 태어났던 모든 능력자들의 힘 또한 영원히 사라질 터였다.
더 이상 날아오는 총알의 궤적을 0.3초 전에 읽어낼 수도 없고, 공간을 찢는 척력으로 벽을 부술 수도 없다.
그저 남들과 똑같이 상처 입고, 피 흘리며, 내일을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우진은 트랜시버를 입가로 가져갔다.
"서연 씨."
[……우진 씨?]
"우리가 한 일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우진의 목소리는 고요하고 단호했다.
빌딩 지하에 숨어 숨을 죽이고 있던 서연의 숨소리가 멎었다.
"고통스럽다고 해서 다시 노예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넘어지더라도, 무릎이 깨지더라도 직접 걸어가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찾아야 할 진짜 삶이니까요."
[우진 씨…… 설마, 지금……?]
"곧 끝납니다. 거기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우진은 트랜시버를 내려놓았다.
쿵!
콰앙-!
통제 홀의 두꺼운 방폭 격벽 너머에서 강철문이 찌그러지는 굉음이 들려왔다.
1층을 뚫고 내려온 선발대 군중이 마침내 지하 100미터의 외곽 셔터에 도달한 것이었다.
"문 열어!"
"거기 누구 있어? 시스템을 다시 켜라고!"
"우리를 버리지 마! 제발 정답을 줘!"
벽을 두드리는 소리는 증오에 찬 적의 공격이 아니었다.
어미를 잃은 짐승들의 처절한 비명에 가까웠다.
문틈 사이로 흙먼지가 풀썩이며 떨어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진은 손에 쥔 사파이어 마스터 암호 키를 들어 올렸다.
투명한 푸른빛을 머금은 보석의 표면에 콘솔의 붉은 경고등이 어지럽게 반사되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었다.
우진의 손가락이 마스터 포트의 슬롯을 향해 흔들림 없이 전진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