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노벨
← 목록
3x
1.0
인생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로 간다 · 제 38화

붉은 에러 로그

📅 2026-10-02 18:10•✍️ 만우자•👁️ 0•

1. 억압된 동조

 

푸른빛 플라스마 칼날이 허공을 가르며 내려앉았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바닥의 강화 콘크리트가 맥없이 녹아내리며 매캐한 유황 냄새가 치솟았다.

 

강우진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바닥에 떨어뜨린 소총의 총열을 발끝으로 걷어차며, 전면으로 두 걸음 성큼 나아갔다.

 

"우진 씨, 피해!"

 

뒤편 메인 콘솔 기둥에 기대어 있던 윤채린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의 은빛 동그라미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사방으로 척력 파동을 뿜어냈지만, 쇄도하는 다섯 개의 그림자를 한꺼번에 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블랙 큐브 알파.

 

15년 전, 한국첨단통신기술연구원의 지하 차폐실에서 함께 숨을 쉬었던 피실험자 아이들이었다.

 

Subject-02 강민우.

 

성인이 된 그의 얼굴은 차가운 티타늄 장갑 마스크에 반쯤 가려져 있었고, 드러난 두 눈동자는 동공의 크기조차 변하지 않는 무기질의 잿빛을 띠고 있었다.

 

그의 정수리 위에는 완벽한 구(球) 형태의 칠흑빛 덩어리가 박혀 있었다.

 

검은 동그라미(●).

 

자유의지와 이레귤러를 상징하던 원환의 중심에 인위적인 통제 핵이 때려 박힌 채, 주변의 모든 빛과 온도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저주의 기하학체였다.

 

강민우의 손목 장갑에서 튀어나온 플라스마 블레이드가 우진의 목덜미를 베어 넘기기 직전이었다.

 

인과율 지연 제로.

 

중앙 코어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자체 신경망에 내장된 반사 데이터로 움직이는 살상 병기.

 

우진의 망막에 푸른빛 미래 궤적선이 그려지는 것과 동시에 칼날이 도달했다.

 

0.3초의 병목조차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인 반응 속도였다.

 

치익!

 

우진은 고개를 비틀어 칼날을 흘려보냈다.

 

목덜미를 스친 열기가 피부를 태우며 지독한 화농 냄새를 풍겼지만, 우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날아드는 칼날이 아니라, 민우의 귀 뒤편으로 길게 흉터를 남긴 경추 3번 결합부에 고정되어 있었다.

 

'보인다.'

 

우진의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4cm의 수술 흉터가 불에 달군 쇠꼬챙이처럼 뜨겁게 맥동했다.

 

시신경을 짓누르는 극심한 안압과 함께, 망막 속의 세계가 흑백으로 탈색되었다.

 

4단계, 과거 추적(Past Tracing).

 

시간의 축이 거꾸로 회전하며, 민우의 신체에 축적된 15년간의 인과율 좌표가 자수정빛 궤적선으로 허공에 펼쳐졌다.

 

우진의 시야에 겹쳐진 것은 차가운 살상 병기의 형상이 아니었다.

 

어두컴컴한 지하 격리실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덜덜 떨며 울먹이던 열두 살 어린 소년의 등이었다.

 

- 우진아, 나 집에 가고 싶어.

 

엄마 냄새가 안 나.

 

- 조금만 참아, 민우 형.

 

우리 아버지가 꼭 구해준다고 했어.

 

지워졌던 유년기의 편린이 기억의 방화벽을 뚫고 우진의 뇌간을 강타했다.

 

그들은 적이 아니었다.

 

살아서 시스템의 괴물이 되어버린, 15년 전의 동포들이었다.

 

"민우 형."

 

우진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민우의 무기질적인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그의 뇌간에 때려 박힌 생체 칩이 즉각 명령 불복종을 감지하고 고압 전류를 방출했다.

 

치지직!

 

민우의 목덜미에서 검붉은 스파크가 튀었고, 그는 억눌린 짐승처럼 헐떡이며 반대쪽 손에 쥐고 있던 인과율 집속 단도를 우진의 명치를 향해 찔러 넣었다.

 

망설임도, 자비도 없는 시스템의 강제 집행이었다.

 

2. 백신의 공명

 

"우진 씨!"

 

채린이 몸을 던지려던 찰나, 우진은 피하지 않았다.

 

피하는 대신, 왼손을 뻗어 날아드는 플라스마 단도를 손바닥으로 틀어쥐었다.

 

치이익!

 

장갑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살갗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고통이 척수를 타고 뇌간으로 번졌다.

 

우진의 입술 틈으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의 손아귀는 단도를 부러뜨릴 듯 더욱 강하게 조여졌다.

 

"크륵……!"

 

민우의 기계화 마스크 너머로 기괴한 금속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거리가 영(0)으로 좁혀졌다.

 

우진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던 투명한 크리스털, 부친 강정호가 남긴 마스터 해방 소스코드 '프로메테우스'가 찬란한 백색 섬광을 뿜어냈다.

 

우진은 피투성이가 된 오른손을 그대로 뻗어, 민우의 목덜미 생체 소켓에 프로메테우스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내리꽂았다.

 

"더는 남의 각본대로 살지 마."

 

우진의 중추 신경계에 봉인되어 있던 방화벽 백신 코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갔다.

 

투명했던 크리스털이 순식간에 눈이 멀 듯한 은빛으로 타오르며, 민우의 목덜미 단말 속으로 파고들었다.

 

치지지지직!

 

"아아아악!"

 

민우의 목구멍에서 기계음이 아닌, 살아있는 인간의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머리 위에 정지해 있던 칠흑빛 검은 동그라미(●)의 표면에 거미줄 같은 은빛 균열이 번져나갔다.

 

그것은 파괴가 아니었다.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된 살상 알고리즘을 태워버리고, 15년간 암전되어 있던 인간의 자아를 깨우는 신경 백신의 침투였다.

 

우진의 망막에 민우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흘렀다.

 

수술대 위에 결박되어 뇌간에 드릴이 박히던 순간의 공포.

 

기억이 하나씩 지워질 때마다 소리 없이 흘렸던 눈물.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속에 품고 있던 가족들의 얼굴.

 

"우…… 진……?"

 

민우의 흐리멍덩하던 눈동자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초점이 맞춰지고, 마스크 틈새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인간의 것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순간, 천장에 매설된 스피커에서 귀를 찢는 경고음과 함께 차가운 음성이 홀 전체를 뒤흔들었다.

 

[경고.

 

Subject-02 자율 제어 신경망 오염 감지.]

 

[체내 소각 자폭 프로토콜 강제 인가.

 

5초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비정상적인 고주파음과 함께 민우의 흉곽 내부에서 붉은빛 방전관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민도현을 산화시켰던 바로 그 끔찍한 자폭 장치였다.

 

"안 돼…… 또 잃을 수는 없어!"

 

우진의 눈이 핏발로 물들었다.

 

그는 프로메테우스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관자놀이 흉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든 신경 에너지를 크리스털에 쏟아부었다.

 

"채린아! 지금이야!"

 

우진의 고함에, 채린이 주저 없이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마스터 엔지니어 키를 가슴에 품고 우진의 등 뒤로 달려들었다.

 

그녀의 손이 우진의 어깨를 짚었다.

 

화아아악!

 

순수한 은빛 동그라미(○)를 지닌 채린의 파동과, 특이점의 중심점(⊙)을 각성한 우진의 방화벽 백신이 완벽하게 직렬로 맞물렸다.

 

두 사람의 정수리 위에서 뿜어져 나온 백색의 척력 파동이 거대한 나선형 폭풍을 일으켰다.

 

비간섭 척력의 극대화.

 

단순히 물리적 충격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넥스트 큐브가 피실험자들의 신경계에 연결해 둔 보이지 않는 검은 꼭두각시 전송선, 그 인과율의 회선 자체를 통째로 뜯어내는 개념적 척력이었다.

 

쾅!

 

민우의 가슴속에서 터져 나가려던 붉은 방전이 은빛 파동에 휩쓸려 허공으로 비산했다.

 

목덜미에 박혀 있던 티타늄 제어 칩이 파열음을 내며 바깥으로 튕겨져 나갔다.

 

동시에 민우의 머리 위에 떠 있던 검은 동그라미의 외피가 산산조각 나며, 내부에서 은은하고 따뜻한 본래의 백색 네모(□)가 찬란하게 피어올랐다.

 

"헉…… 허억……!"

 

민우가 무릎을 꿇으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호흡은 거칠었지만, 목덜미의 스파크는 완전히 멎어 있었다.

 

자폭 시퀀스가 강제로 차단된 채, 인간으로서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3. 멈춰 선 인간 병기들

 

사태를 지켜보던 나머지 네 명의 피실험자들(Subject-04, 05, 06, 07)이 일제히 공격을 멈추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검은 동그라미들이 불안정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중앙 코어가 내리는 살상 명령과, 우진과 채린이 뿜어낸 은빛 파동이 부딪치며 뇌간의 제어 회로에 극심한 병목 현상을 유발한 탓이었다.

 

치지직, 팟!

 

천장에 설치된 360도 감시 돔 카메라의 붉은 렌즈가 사납게 줌을 당겼다.

 

중앙 관제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수석 감사관 도진우의 일그러진 얼굴이 거대한 홀 벽면의 프로젝터 스크린에 투사되었다.

 

도진우의 머리 위에는 지난번 전투의 여파로 굵은 균열이 간 4차원 붉은 큐브가 기괴한 각도로 삐걱거리며 돌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자폭 프로토콜을 강제로 상쇄했다고?]

 

도진우의 목소리는 평정심을 완전히 잃은 채 날카롭게 갈라져 있었다.

 

[K-07…… 강우진!

 

네놈 대가리 속에 든 그 흉물이 도대체 어디까지 진화한 거냐!

 

감히 시스템의 최적화 공식을 부정해?]

 

우진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프로메테우스를 움켜쥔 채, 스크린 속 도진우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부정한 게 아니다. 원래 인간의 목숨은 너희 따위가 계산할 수 있는 공식 따위가 아니었어."

 

[닥쳐라!

 

저들은 폐기된 실패작들이다!

 

시스템의 안녕을 위해 거름으로 쓰여야 마땅한 쓰레기 데이터에 불과해!]

 

도진우가 관제 콘솔을 내리치는 소리가 홀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남은 개체들 전원, 즉각 체내 코어를 완전 개방하여 자폭하라!

 

대상자 001과 함께 이 통제 홀을 통째로 증발시켜 버려!]

 

그러나 네 명의 피실험자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우진의 등 뒤에 선 채린이 양손을 펼치며 은빛 척력의 장벽을 넓게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채린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우진 씨…… 오래 못 버텨요. 저 사람들의 신경망에 걸린 명령이 너무 강해요!"

 

"알아. 한 번에 끝낸다."

 

우진은 무릎을 꿇고 있는 민우를 지나쳐, 축구장 세 개 크기의 공동 한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그곳에는 지름 3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형 3D 홀로그램이 푸른빛을 뿜으며 천천히 자전하고 있었다.

 

전 인류 인생 궤도 시뮬레이터.

 

오르비스(ORBIS Ver 9.4).

 

가까이 다가갈수록 홀로그램의 위용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구체의 표면을 이루고 있는 것은 수십억 개의 미세한 기하학적 격자들이었다.

 

대한민국 5,100만 명 전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현재의 이동 동선, 심박수,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사건과 사고의 시간표가 촘촘한 녹색 텍스트 스트림으로 실시간 갱신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내일 아침 출근길에 뇌출혈로 쓰러지도록 세팅되어 있었고, 누군가는 3일 뒤 정리해고를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알고리즘에 묶여 있었다.

 

모든 비극은 우연이 아니었다.

 

시스템의 엔트로피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배정된 '희생의 시간표'였다.

 

"이게…… 너희가 말하는 신의 섭리냐?"

 

우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분노를 넘어선 서늘한 경멸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4. 수식 거부

 

우진은 망설임 없이 중앙 메인 프레임 콘솔 앞으로 다가갔다.

 

거대한 원형 콘솔 정중앙에는 육각형 모양의 데이터 결합 단자가 시퍼런 냉각 김을 뿜어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부친 강정호가 남긴 해방의 열쇠, 프로메테우스를 꽂아 넣을 자리였다.

 

[멈춰라, K-07!]

 

스크린 속 도진우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그걸 꽂으면 서울 전역의 코드 블랙이 폭주한다!

 

700만 미러 큐브 사용자들의 뇌간에 쇼트가 발생해 도심 전체가 피바다가 될 거다!

 

네놈이 그 인과율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거짓말하지 마."

 

우진이 차갑게 일갈했다.

 

"너희는 인질을 죽일 배짱도 없어. 이 도시의 인간들이 전부 죽으면, 시스템의 엔트로피를 떠받칠 가축이 사라지니까."

 

우진은 오른손에 쥔 프로메테우스를 육각형 슬롯에 거침없이 밀어 넣었다.

 

콰아아아앙!

 

크리스털이 단자에 맞물리는 순간, 지하 4층 통제 홀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격렬하게 진동했다.

 

콘솔 주변의 냉각수 파이프가 터져 나가며 백색 증기가 솟구쳤고, 공중에 떠 있던 거대한 구형 홀로그램 '오르비스'의 푸른빛이 일순간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치지지지지직!

 

[알림.

 

미인가 마스터 패치 접속 확인.]

 

[경고.

 

커널 레벨 인과율 재연산 프로세스 강제 구동.]

 

[전체 노드 데이터 무결성 검증 시작…….]

 

기계적인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며, 공중에 떠 있던 수천만 명의 데이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5,100만 개의 녹색 이름들이 광속으로 스크롤 되며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때였다.

 

관제실 화면 너머에서 도진우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홀 안을 메우던 기계음마저 일순간 잦아들며, 기괴할 정도의 적막이 내려앉았다.

 

오르비스 시뮬레이터의 중심부, 거대한 구체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던 붉은색 스크린 하나가 거대한 경고창을 띄우며 전면에 튀어나왔다.

 

삐이이이익!

 

[FATAL SYSTEM ANOMALY : 치명적 시스템 이상]

 

[대상 노드 식별 코드 : Node-1 / Prototype K-07]

 

[성명 : 강우진(姜宇鎭)]

 

[연산 파라미터 적용 시도 중…… 실패.]

 

[원인 : 궤도 방정식 해(解) 산출 불가.]

 

텍스트가 번쩍일 때마다 화면 전체가 붉은빛으로 울렁거렸다.

 

우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화면 속에는 우진의 생년월일과 15년 전 연구소의 기록, 그리고 현재 테헤란로 태성C&I에서의 행적까지 모든 데이터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수천만 명의 사람들과 달리, 우진의 이름 바로 옆에 붙어 있어야 할 결정적인 항목들이 전부 깨져 있었다.

 

[현재 궤도 : Error: Null]

 

[예정된 파멸 시점 : Error: Infinite Loop]

 

[인과율 결손 환원값 : Error: Undefined]

 

[최종 산출 상태 : Error: ?]

 

5. 붉은 에러 로그

 

'Error: ?'

 

물음표 하나가 붉은 피처럼 선명하게 박혀 깜빡이고 있었다.

 

5,100만 명의 인간을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사각형의 격자 속에 가두고 통제해 왔다는 절대적인 시스템.

 

그 시스템의 중추 연산 장치가, 강우진이라는 단 하나의 존재 앞에서는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세모도, 네모도, 심지어 동그라미조차도 아니었다.

 

시스템의 수학적 공식 그 자체를 거부하는 절대적인 공백.

 

존재해서는 안 되는 완전한 버그였다.

 

"저게…… 뭐지?"

 

우진의 등 뒤로 다가온 채린이 넋을 잃은 채 화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모든 사람의 미래가 적혀 있는데…… 우진 씨의 칸만 비어 있어요. 시스템이 우진 씨의 미래를 전혀 계산하지 못하고 있어……!"

 

[말도 안 돼…… 저런 로그는 존재할 수 없다!]

 

정적을 깨고 스크린 너머에서 도진우의 경악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오르비스는 우주의 물리 법칙과 인과율을 완벽히 모델링한 신의 뇌다!

 

어떻게…… 일개 인간 따위의 변수를 연산해 내지 못한다는 말이냐!

 

저 물음표는 대체 뭐냐고!]

 

도진우가 발악하며 콘솔 키를 미친 듯이 두드리는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렀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강제 재연산 명령을 쏟아부어도, 붉은 화면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우진의 노드를 중심으로 시스템 격자망 전체에 균열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쩌저적!

 

마치 두꺼운 빙판이 깨져나가는 듯한 파열음이 홀 전체를 뒤흔들었다.

 

우진의 이름 옆에 뜬 'Error: ?'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노이즈가 오르비스 구체의 표면을 갉아먹으며 번져나갔다.

 

우진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화상을 입어 피투성이가 된 손바닥 위로, 은빛 파동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15년 전, 아버지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째고 통제 칩을 뜯어내며 남겼던 마지막 속삭임이 귓전을 때렸다.

 

- 우진아, 너는 누구의 각본도 따를 필요가 없다.

 

- 세상이 정해준 사각형을 부수고, 네 손으로 궤도를 그려라.

 

아버지는 우진을 단순한 저항자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시스템의 모든 통제 수식과 인과율 방정식을 원천 무효화시키는, 유일무이한 '자유의지의 특이점'으로 해방해 놓았던 것이다.

 

"도진우."

 

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스크린 속 도진우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은빛 동그라미와 붉은 중심점이 섬뜩할 정도로 선명하게 빛났다.

 

"너희는 나를 죽일 수도, 통제할 수도 없어."

 

[이 괴물 자식이……!]

 

"내 미래는 너희 시스템 따위가 정하는 게 아니니까."

 

우진은 프로메테우스를 더욱 깊숙이 비틀어 박았다.

 

6. 망령의 조소

 

콰르릉!

 

중앙 메인 프레임 내부에서 폭발적인 스파크가 튀며 연쇄 쇼트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오르비스 시뮬레이터의 구형 홀로그램이 반파되며 지직거렸고, 수천만 개의 궤도 데이터들이 통제를 잃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서울 전역을 옥죄고 있던 '코드 블랙'의 동기화율이 89%에서 급격히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경고.

 

메인 코어 제어권 상실.]

 

[분산 백업 네트워크와의 링크가 강제 단절됩니다.]

 

[오르비스 Ver 9.4 셧다운 시퀀스 가동…….]

 

홀 전체를 뒤덮던 붉은빛이 깜빡이며 암전되기 시작했다.

 

도진우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 있던 대형 스크린마저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신호가 끊겼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완전히 꺼진 줄 알았던 메인 콘솔 상단의 보조 모니터 하나가 스르륵 켜졌다.

 

지하 4층의 광케이블과 분산 회선이 전부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단 하나의 독립 아날로그 폐쇄 회로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치익…… 치지지직.

 

거친 주파수 노이즈를 뚫고, 낯익은 실루엣 하나가 흑백 화면 위로 떠올랐다.

 

서지훈이었다.

 

상임이사회에 의해 폐기 처분되어 사망했던 줄 알았던 그 사내였다.

 

화면 속의 서지훈은 현실의 육신이 아니었다.

 

넥스트 큐브의 지하 깊숙한 아카이브 서버에 저장되어 있던 생전의 백업 인격, 혹은 그가 죽기 직전 시스템 심연에 남겨둔 잔류 영상 데이터였다.

 

화면 속 서지훈의 얼굴은 기괴할 정도로 창백했고, 그의 눈동자는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 아닌 텅 빈 구멍처럼 뚫려 있었다.

 

[크크…… 결국 여기까지 기어 들어왔구나, 우진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서지훈의 목소리는 금속을 긁는 듯 메말라 있었다.

 

우진의 눈썹이 꿈틀했다.

 

"서지훈……?"

 

[그래.

 

네 눈앞에 뜬 그 붉은 에러 로그를 보았겠지.

 

참으로 아름답지 않으냐?

 

전 인류 5천만 명 중 유일하게 시스템의 수식에 잡히지 않는 단 하나의 오차…… 절대적인 버그.]

 

서지훈의 잔류 영상이 기괴하게 입꼬리를 찢으며 비웃었다.

 

[네 아버지는 널 구원했다고 믿었겠지.

 

네 뇌간을 찢고 칩을 뽑아내어, 이 완벽한 사각 격자의 세계에서 너를 해방시켰다고 자위했겠지.]

 

"헛소리 집어치워."

 

[헛소리?

 

크하하하!

 

우진아, 너는 정말로 네가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하느냐?]

 

서지훈의 조소가 텅 빈 통제 홀을 음산하게 울렸다.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화면 가득 그의 섬뜩한 눈빛이 들어찼다.

 

[수식에 잡히지 않는다는 건 축복이 아니다.

 

그것은 저주야.]

 

"뭐?"

 

[시스템의 격자에서 완전히 튕겨 나간 규격 외 개체, '아웃라이어'.

 

궤도가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 맞이할 결말이 무엇인지 아느냐?]

 

서지훈이 손가락을 들어 우진을 가리켰다.

 

[너는 사회의 모든 인과율 네트워크에서 고립될 것이다.

 

시스템이 너를 지우지 못한다면, 시스템이 유지되는 이 세상 전체가 너를 이물질로 취급해 밀어낼 테니까.

 

너를 둘러싼 모든 인간관계, 네가 딛고 선 땅, 네가 숨 쉬는 공기마저 너를 거부하게 될 거다.]

 

서지훈의 목소리에 광기가 서렸다.

 

[너 혼자만 살아남고, 네 곁에 있는 모든 자들은 네가 뿜어내는 인과율의 결손에 휘말려 갈가리 찢겨 죽을 것이다.

 

지금 네 등 뒤에 선 저 계집도, 네 어미도, 밖에서 떨고 있는 기자년도 전부 다!]

 

"입 닥쳐!"

 

우진이 소총 개머리판으로 보조 모니터를 후려쳤다.

 

콰창!

 

모니터 화면이 산산조각 나며 불꽃이 튀었고, 서지훈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도 그제야 뚝 끊겼다.

 

7. 무너지는 심장부

 

정적이 찾아왔다.

 

깨진 모니터 파편 사이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우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서지훈의 망령이 내뱉은 말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었다.

 

우진 자신이 지난 며칠간 뼈저리게 겪어왔던 '인과율 보존 법칙'의 잔혹한 이면이었다.

 

자신이 궤도를 비틀 때마다, 그 대가는 고스란히 주변 사람들에게 튀어 새로운 비극을 만들어냈다.

 

'내가…… 세상을 파괴하는 버그라는 건가.'

 

우진의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죄어들었다.

 

그때, 등 뒤에서 조용한 온기가 전해졌다.

 

채린이 다가와 우진의 피투성이가 된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그녀의 은빛 동그라미가 부드럽게 깜빡이며 우진의 떨림을 가만히 받아내고 있었다.

 

"흔들리지 마요, 우진 씨."

 

채린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저자가 한 말은 전부 거짓말이에요. 우진 씨가 버그라면, 나도 버그예요. 여기 살아난 민우 오빠도 버그고요."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자신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강민우를 가리켰다.

 

민우의 정수리 위에는 여전히 은은한 백색 네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살상 병기가 아니었다.

 

살아서 자신의 삶을 되찾은 한 명의 인간이었다.

 

"우리가 시스템의 부품이 되기를 거부했다고 해서, 저주받아야 할 이유는 없어요."

 

채린이 우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진 씨가 혼자 짊어지게 두지 않아요. 절대로."

 

우진은 채린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차가웠던 심장에 다시 뜨거운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래. 도망칠 곳은 없다.'

 

그때였다.

 

쿠구구구궁!

 

지하 4층 통제 홀의 천장에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떨어져 내리며 굉음이 울렸다.

 

메인 콘솔의 과부하로 인해 지하 데이터 센터의 냉각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면서, 암반층을 지탱하던 차폐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위잉- 위잉- 위잉-!

 

본사 건물 전체에 대피 비상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비상 상황.

 

지하 4층 메인 프레임 멜트다운 위험 감지.]

 

[본사 사옥 전 구역 자동 폐쇄 및 전력 강제 차단 3분 전.]

 

"우진 씨! 서둘러야 해요!"

 

채린이 소리쳤다.

 

"서버실이 폭발하면 지하 4층 전체가 매몰돼요!"

 

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콘솔에서 마스터 해방 키 '프로메테우스'를 뽑아 품에 넣었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강민우를 일으켜 세워 자신의 어깨에 둘러멨다.

 

"가자, 민우 형. 15년 만에 집에 가는 거야."

 

민우는 떨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우진의 어깨를 힘주어 붙잡았다.

 

그의 눈가에서 참아왔던 눈물이 흘러내려 마스크를 적셨다.

 

"채린아, 남은 세 명의 칩 소켓에 오버라이더 펄스를 쏴서 동면 상태로 유도해. 끌고 나갈 시간이 없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간 뒤 구조팀을 부른다!"

 

"네!"

 

채린이 그리드 오버라이더의 다이얼을 돌려 잔류 충격파를 방출했다.

 

멈춰 서 있던 세 명의 피실험자(Subject-04, 06, 07)들이 미세한 경련과 함께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지며 가동 중단 모드로 전환되었다.

 

쿠궁!

 

콰르릉!

 

천장이 무너지며 굵은 철골이 굉음을 내며 바닥으로 처박혔다.

 

우진은 민우를 부축한 채, 채린과 함께 붕괴하는 통제 홀의 비상 탈출로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오르비스의 거대한 구체가 불꽃을 뿜으며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그 파편들 사이로, 부서진 모니터에 박혀 있던 붉은 물음표의 잔상이 우진의 망막에 깊게 새겨져 있었다.

 

8. 지상으로 질주

 

비상 탈출로는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비상 발전기마저 쇼트가 났는지, 붉은 유도등만이 벽면을 따라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바닥이 요동쳤고, 머리 위 배관에서는 고온의 냉각수가 빗줄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쿨럭! 쿨럭!"

 

민우가 우진의 어깨에 기댄 채 밭은기침을 토해냈다.

 

15년간 기계로 사육당했던 육체는 자폭 코드가 뽑혀 나간 충격을 견뎌내느라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조금만 버텨, 형. 거의 다 왔어!"

 

우진은 이를 악물었다.

 

갈비뼈의 통증과 손바닥의 화상이 온몸을 찢어발기는 것 같았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앞서 달리던 채린이 지하 3층과 연결된 비상 계단 철문을 힘껏 밀어젖혔다.

 

철문이 열리자, 지상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동시에 채린의 무전기에서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채린아!

 

우진 씨!

 

들려요?!]

 

한서연 기자의 목소리였다.

 

[사옥 지하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어요!

 

대테러 특공대랑 경찰 병력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고요!]

 

채린이 숨을 헐떡이며 무전기를 입가에 댔다.

 

"서연 언니! 우리 탈출하고 있어요! 지하 3층 비상 하역장 쪽으로 차 대주세요! 민우 오빠를 구했어요!"

 

[민우 씨를……?

 

알겠어요!

 

화물차 아저씨랑 바로 하역장 경사로로 돌진할게요!

 

1분 안에 나와요!]

 

무전이 끊어졌다.

 

우진 일행은 무너져 내리는 계단을 딛고 단숨에 지하 3층 하역장으로 뛰어올라갔다.

 

넓은 하역장 공간에는 이미 짙은 유독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저 멀리 지상으로 이어지는 셔터 문 틈새로 서울의 밤공기와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끼이이익- 쾅!

 

그 순간, 셔터 문을 부수며 진회색 카니발 차량이 요란한 엔진음을 내뿜으며 하역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운전석의 화물차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다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타요! 어서 타!"

 

슬라이딩 도어가 활짝 열리고, 뒷좌석에서 사색이 된 한서연과 우진의 어머니가 몸을 내밀었다.

 

"우진아!"

 

어머니의 찢어지는 외침이 연기를 뚫고 우진의 가슴에 가닿았다.

 

우진은 채린과 함께 민우를 뒷좌석으로 밀어 넣은 뒤, 자신도 차량 안으로 몸을 던졌다.

 

슬라이딩 도어가 닫히는 것과 동시에, 화물차 기사가 가속 페달을 바닥까지 밟았다.

 

부아아앙!

 

카니발은 타이어 비명을 지르며 셔터 잔해를 뚫고 지상 램프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9. 불타는 테헤란로

 

지상으로 빠져나온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테헤란로 한복판은 아수라장이었다.

 

넥스트 큐브 본사 45층 마천루의 저층부 창문들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유리 파편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건물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수십 대의 경찰차와 소방차의 경광등이 밤하늘을 붉고 푸르게 어지럽히고 있었다.

 

사옥 옥상에 군용 규격으로 솟아 있던 거대한 위성 송수신 파라볼라 안테나가 굉음과 함께 꺾여 내리며 불기둥을 뿜어냈다.

 

"하느님 맙소사……."

 

운전대를 잡은 화물차 기사가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중앙 코어 오르비스의 붕괴로 인해, 넥스트 큐브가 서울 상공에 전개해 두었던 사각 통제 격자망이 가시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우진의 눈에만 보이던 기이한 현상이 도심 전체에 신기루처럼 번졌다.

 

빌딩 숲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던 푸른색 격자선들이 지직거리며 산산조각 났고, 길가에 멈춰 서 있던 시민들의 머리 위에서 희미한 빛의 파편들이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미러 큐브의 디지털 세뇌에서 풀려난 시민들이 영문을 모른 채 차에서 내려 불타는 마천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진아, 다친 데는 없니……? 세상에, 이 손이 왜 이래!"

 

어머니가 피투성이가 된 우진의 손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우진은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엄마. 끝났어요. 일단은…… 끝났어요."

 

서연이 태블릿 PC의 전원을 켜며 외쳤다.

 

"우진 씨, 최진석 선배랑 다시 연결됐어요! 본사 서버가 터지면서 언론망 레벨-4 보안 락이 완전히 풀렸대요! 해외 분산 서버를 통해 전국 포털과 유튜브 라이브에 오르비스 시뮬레이터의 내부 영상이 동시 송출되기 시작했어요!"

 

태블릿 화면 속에는 방금 전 우진이 콘솔을 파괴하며 추출했던 5,100만 명의 조작된 궤도 데이터와, 채용·금융 조작 문건들이 낱낱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댓글 창이 초당 수천 개씩 올라가며 전국적인 여론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도진우와 넥스트 큐브의 가면이 완전히 벗겨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우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는 창밖으로 불타오르는 넥스트 큐브 본사 사옥을 묵묵히 응시했다.

 

'Error: ?'

 

망막에 잔상처럼 남아 있는 그 붉은 로그.

 

그리고 깨진 모니터 너머로 서지훈의 망령이 내뱉었던 저주 같은 경고.

 

'너는 사회의 모든 인과율 네트워크에서 고립될 것이다. 시스템이 너를 지우지 못한다면, 세상 전체가 너를 이물질로 취급해 밀어낼 테니까.'

 

본사의 심장부는 부수었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온 세상의 법칙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는, 거대하고 처절한 전쟁의 서막이었다.

 

"아저씨, 차를 강남 밖으로 몰아주세요."

 

우진이 화물차 기사를 향해 낮게 말했다.

 

"도심은 곧 완전히 봉쇄될 겁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야 해요."

 

"어디로 갈까요?"

 

우진은 품속에 든 부친의 일기장과 마스터 해방 키를 만지작거리며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도시의 눈이 닿지 않는 곳. 규격에서 벗어난 자들이 숨을 수 있는…… 버려진 땅으로 갑니다."

 

카니발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뒤로한 채, 불타는 테헤란로의 연기를 가르며 서울 외곽을 향해 어둠 속으로 질주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