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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로 간다 · 제 34화

교차로의 혈투

📅 2026-10-02 18:10•✍️ 만우자•👁️ 0•

1. 궤도의 암전

 

치지지직-!

 

폭파된 신호 제어함에서 뿜어져 나온 시커먼 유독 가스와 푸른 전기 불꽃이 폭우를 뚫고 솟구쳤다.

 

교차로 사방을 지탱하던 신호등의 녹색과 붉은 불빛들이 한순간에 핏기 잃은 눈동자처럼 일제히 꺼져 내렸다.

 

동시에 사거리 전체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겼다.

 

그러나 궤도의 관성은 멈추지 않았다.

 

동쪽 언덕길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던 25톤 액화석유가스(LPG) 탱크로리의 거대한 차체가 비명을 지르며 좌우로 흔들렸다.

 

브레이크 패드가 드럼을 갉아먹는 찢어지는 쇳소리가 빗줄기를 찢었다.

 

시속 70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쇳덩어리가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접지력을 상실한 채, 꼬리를 바깥으로 틀며 교차로 중심부를 향해 회전하기 시작했다.

 

잭나이프 현상이었다.

 

운전석 안쪽, 칠흑빛 검은 세모(△)를 정수리에 박아 넣은 기사는 뇌혈관의 극심한 압박으로 눈을 뒤집은 채 핸들에 턱을 묻고 있었다.

 

그의 목덜미로 뻗어 내려온 검은 실선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오른발을 가속 페달에 짓누르고 있었다.

 

반대편 차선에서는 마흔두 명의 승객을 태운 심야 광역버스가 꺼져버린 신호등에 당황해 급제동을 시도하고 있었다.

 

끼기기긱-!

 

버스의 차체가 빗물에 미끄러지며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두 차량의 물리적 궤적이 교차하는 지점은 불과 20미터 앞이었다.

 

신호등을 꺼뜨려 0.5초의 정면충돌 각본은 비틀었지만, 관성으로 돌진하는 탱크로리의 거대한 몸체는 여전히 버스의 측면을 쓸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우진 씨!"

 

교통섬 바닥에 엎드린 서연이 진흙투성이가 된 얼굴로 절규했다.

 

"비켜요! 거긴 부딪혀요!"

 

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쪽 관자놀이 흉터에서 솟구친 핏물이 눈가를 덮어 시야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우진의 망막에 비친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2단계 '변화 감지'의 푸른 예측선과 4단계 '과거 추적'의 자수정빛 궤적선이 빗속에서 거미줄처럼 얽혀들었다.

 

탱크로리가 미끄러지는 각도, 타이어와 아스팔트 사이의 마찰 계수, 차체 하부의 차축이 받는 비틀림 토크까지.

 

수천 개의 수식과 기하학적 파동이 뇌간을 강타했다.

 

우진은 피를 토하듯 숨을 몰아쉬며 아스팔트를 박차고 달렸다.

 

2. 사점을 향한 돌격

 

쿵!

 

쿵!

 

쿵!

 

우진의 군화가 물웅덩이를 사납게 짓밟았다.

 

정면에서 거대한 탱크로리의 헤드라이트가 지옥의 아가리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치여 죽는 것은 순간이었다.

 

인간의 육체 따위는 흔적도 없이 갈려 나갈 충돌 궤도.

 

그러나 우진의 눈은 탱크로리의 범퍼가 아닌, 회전하는 거대한 차체의 밑바닥을 똑똑히 응시하고 있었다.

 

'보인다.'

 

트레일러와 트랙터를 연결하는 중심 연결 핀, 킹핀(Kingpin).

 

과거 추적의 자수정빛 잔상이 가리킨 곳은 바로 그 연결부의 금속 피로 균열이었다.

 

과적과 빗길 하중으로 인해 이미 미세한 실금이 가 있던 그 취약점.

 

저 핀을 부러뜨려 트랙터의 구동력과 가스탱크 트레일러의 회전력을 강제로 분리하지 않는다면, 버스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우진은 허리춤에서 고전압 인과율 펄스가 충전된 충격 바톤을 끝까지 뽑아 올렸다.

 

"크아아아악!"

 

우진은 돌진하는 탱크로리의 거대한 바퀴 축 아래로 몸을 던졌다.

 

빗물 섞인 아스팔트 위를 등으로 미끄러지며 차체 하부로 파고드는 순간, 머리 위로 수 톤의 쇳덩어리가 굉음을 내며 스쳐 지나갔다.

 

타이어 타는 냄새와 뜨거운 엔진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우진은 회전하는 섀시 프레임 사이로 자수정빛으로 빛나는 킹핀 결합부를 똑똑히 포착했다.

 

그 결합부 위로 뻗어 있는 시스템의 검은 꼭두각시 와이어.

 

그것이 기계의 파괴마저 통제하며 버스를 향해 궤도를 틀어쥐고 있었다.

 

"끊어져라……!"

 

우진은 방화벽 백신 코드를 바톤에 전부 쏟아부으며 킹핀 결합부의 균열에 바톤의 첨단을 틀어박았다.

 

콰지지지직-!

 

고전압 스파크가 차체 하부를 하얗게 태우며 폭발했다.

 

동시에 우진의 신경계를 타고 역류하는 거대한 금속 반작용이 갈비뼈를 사정없이 들이받았다.

 

우두둑!

 

뼈가 금이 가는 둔탁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러나 그 찰나, 차축을 고정하고 있던 굵은 강철 핀이 비명을 지르며 두 동강으로 파열되었다.

 

쿠구구구궁!

 

구동축을 잃은 트랙터 헤드가 왼쪽 화단으로 꺾여 나가며 가로등을 들이받고 멈춰 섰다.

 

분리된 거대한 원통형 가스탱크 트레일러는 중심을 잃고 옆으로 전복되며 아스팔트를 갈아엎었다.

 

끼이이이이익!

 

불꽃을 폭포수처럼 뿜어내며 미끄러진 탱크로리의 후미가 광역버스의 범퍼를 불과 50센티미터 남겨두고 멈추어 섰다.

 

아슬아슬한 정지였다.

 

버스의 차창 너머로 넋이 나간 승객들의 비명과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충돌은 막았다.

 

대폭발의 참사는 저지되었다.

 

3. 빗속의 생환

 

"우진 씨! 우진 씨!"

 

서연이 비명을 지르며 젖은 도로를 달려왔다.

 

차량 밑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위로, 피투성이가 된 우진이 기침을 토해내며 기어 나오고 있었다.

 

입가에는 붉은 선혈이 흥건했고, 왼쪽 팔은 어깨 탈구로 인해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채린이 달려와 우진의 상체를 부축하며 울먹였다.

 

"아저씨…… 뼈가…… 갈비뼈가 다쳤어요. 움직이면 안 돼요!"

 

"쿨럭…… 괘, 괜찮습니다."

 

우진이 피를 뱉어내며 간신히 상체를 일으켰다.

 

비는 여전히 뺨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지만, 교차로 상공을 짓누르던 피비린내 나는 붉은 세모의 결계가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버스의 문이 열리고, 창백하게 질린 승객들이 하나둘씩 쏟아져 나왔다.

 

태성C&I 하청업체 노조위원장 김민석, 집단소송 대표 이은영, 내부고발자 박성철…….

 

그들의 머리 위를 짓누르고 있던 수십 가닥의 검은 와이어들이 뚝, 뚝 끊어져 나가며 밤하늘 속으로 증발하고 있었다.

 

죽음의 궤도에서 벗어난 인간들에게 깃드는 희미한 백색의 빛.

 

그것은 시스템이 강제로 덮어쓰려 했던 파멸의 운명이 좌절되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도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우진의 귀에 날카로운 이명이 스쳐 지나갔다.

 

관자놀이의 수술 흉터가 다시금 바늘로 찌르듯 쑤셔왔다.

 

교차로 사방, 어둠이 짙게 깔린 골목길과 도로변 차도 위로 낯선 엔진음들이 일제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검은색 선팅을 짙게 한 세단 네 대가 신호가 꺼진 교차로를 향해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차량의 지붕 위로, 주변의 빗줄기를 증발시키는 서늘한 전자기파가 일렁이고 있었다.

 

"놈들입니다."

 

채린이 그리드 오버라이더의 잔여 수치를 확인하며 얼굴을 굳혔다.

 

"통제감사실의 현장 수습 부대예요! 참사가 실패하자마자 청소 구역 전체를 강제로 소각하려고……!"

 

서연이 우진의 오른팔을 자신의 어깨에 두르며 필사적으로 부축했다.

 

"차로 가야 해. 우진 씨, 조금만 버텨요. 카니발까지만 가면……."

 

그 순간, 전복된 트랙터 운전석의 문이 덜컥 열렸다.

 

피투성이가 된 50대 화물차 기사가 비틀거리며 차 밖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의 머리 위에 박혀 있던 칠흑빛 검은 세모(△)가 미세하게 떨리며 백색으로 전환되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내, 내가…… 무슨 짓을……."

 

기사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발이 떨어지질 않았어……."

 

우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고 대상자.'

 

시스템이 사채의 늪에 빠뜨려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던 또 하나의 무고한 피해자였다.

 

그를 이곳에 버려두고 간다면, 들이닥치는 수습 부대에 의해 가장 먼저 '사고사 위장 살해'를 당할 것이 뻔했다.

 

"저 사람도 데려갑니다."

 

우진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살려야 해요. 저 사람이 살아서 증언해야…… 넥스트 큐브의 고의적 참사 조작이 법적으로 증명됩니다."

 

4. 어둠 속의 습격자들

 

채린이 재빨리 달려가 비틀거리는 화물차 기사의 팔을 붙잡았다.

 

"아저씨! 정신 차려요! 살고 싶으면 우리 따라와요!"

 

기사는 영문도 모른 채 채린의 이끌림에 따라 카니발을 향해 비틀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차로를 포위한 검은 세단들의 문이 열리며, 검은 방탄 복포를 입은 공작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덟 명.

 

그들의 머리 위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고정된 검은 네모(■)가 박혀 있었다.

 

자유의지가 거세된 넥스트 큐브의 청소 전문 요원들이었다.

 

철컥, 철컥.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는 단순한 화약 총기가 아니었다.

 

푸른빛의 고밀도 인과율 에너지 빔을 방출하는 최신형 인과율 집속 돌격소총이었다.

 

"타깃 K-07 및 사고 대상자 노드 포착."

 

선두에 선 현장 공작원이 무감각한 목소리로 지령을 내렸다.

 

"오염 구역 영구 소각 프로토콜 가동. 발포."

 

슈우우욱-!

 

빗줄기를 찢으며 날아드는 대여섯 발의 푸른 광탄이 교차로의 아스팔트를 강타했다.

 

쿠쾅!

 

콰광!

 

아스팔트가 고열에 녹아내리며 돌멩이와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엎드려요!"

 

우진은 서연을 끌어안고 보도블록 뒤편으로 몸을 굴렸다.

 

어깨의 통증이 뇌리를 하얗게 탈색시켰지만, 감각을 잃은 왼팔 대신 오른손으로 바톤을 꼬나쥐었다.

 

0.3초의 인과율 지연 시간.

 

저들은 기계화 단말이지만, 본사 코어의 원격 명령을 수신하여 반응하는 일반 공작원들이다.

 

민도현이나 피실험자 병기들과 달리 명령 수신과 근육 반응 사이에 반드시 0.3초의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그 틈을 찢는다.'

 

우진은 숨을 가다듬으며 4단계 과거 추적의 좌표를 가동했다.

 

보도블록을 부수며 쇄도하는 공작원 두 명의 발목 관절, 방탄복의 결합 부위가 자수정빛으로 선명하게 망막에 맺혔다.

 

"서연 씨, 기사를 데리고 차 시동을 걸어요."

 

우진이 낮게 속삭였다.

 

"채린 씨가 차폐막을 칠 겁니다. 내가 시선을 끌겠습니다."

 

"하지만 우진 씨 몸이……!"

 

"10초면 됩니다."

 

우진의 눈빛에 서늘한 광기가 어렸다.

 

"10초 뒤에 차를 밀고 들어와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진의 신형이 보도블록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탕!

 

탕!

 

탕!

 

공작원들의 총구가 일제히 우진을 향해 돌아갔다.

 

그러나 우진은 이미 그들의 조준선이 정렬되기 0.3초 전, 빗물 고인 바닥을 사선으로 미끄러지며 탄도를 회피하고 있었다.

 

푸른 광탄이 우진의 옷깃을 스치며 섬유를 태웠지만, 우진의 바톤은 이미 첫 번째 공작원의 무릎 안쪽 인대를 정확히 가격하고 있었다.

 

콰직!

 

"크악!"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는 반동을 이용해, 우진은 사내의 어깨를 딛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회전하는 바톤 끝에서 응축된 방화벽 백신 펄스가 번개처럼 작렬했다.

 

두 번째, 세 번째 공작원의 헬멧 안면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며 뇌간에 강력한 인과율 쇼트가 흘러들어갔다.

 

지지직-!

 

두 사내가 경련을 일으키며 뒤로 나자빠졌다.

 

순식간에 세 명을 무력화했지만, 뒤편에서 다른 공작원들의 총구가 우진의 등을 향해 일제히 락온되었다.

 

회피가 불가능한 거리였다.

 

5. 전파 속의 교신

 

바로 그 순간, 교차로 모퉁이에서 거친 엔진음을 울리며 진회색 카니발이 돌진해 들어왔다.

 

쾅-!

 

카니발의 측면 범퍼가 공작원 두 명을 사정없이 들이받아 날려버렸다.

 

조수석 창문을 내린 채린이 그리드 오버라이더를 밖으로 내밀며 스위치를 올렸다.

 

파아아아앙-!

 

은빛 동그라미의 거대한 척력 파동이 방출되며 남은 공작원들의 총기 조준 센서와 통신 회선을 일거에 먹통으로 만들었다.

 

"아저씨! 타요!"

 

뒷좌석 문이 거칠게 열리며 서연이 손을 내밀었다.

 

우진은 쓰러진 공작원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군용 무전기를 낚아채며 카니발의 열린 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출발해요!"

 

서연이 액셀을 밟자, 카니발의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젖은 아스팔트를 박차고 나갔다.

 

뒤편에서 공작원들이 비틀거리며 일어서 총을 난사했지만, 카니발은 이미 골목길을 꺾어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차 안은 피비린내와 거친 숨소리로 가득 찼다.

 

뒷좌석 구석에 웅크린 화물차 기사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우진을 바라보았다.

 

"자, 자네들…… 대체 누구야? 저 총을 든 놈들은 또 뭐고……?"

 

"당신을 죽여서 서울 전체를 피바다로 만들려던 자들입니다."

 

우진이 찢어진 셔츠로 어깨를 감싸 쥐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빌어먹을 각본을 찢어버린 사람들이고요."

 

기사는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머리 위에 위태롭게 떠 있던 검은 세모는 어느새 꼭짓점이 부드럽게 풀려나가며, 안정된 일상을 상징하는 '백색 네모(□)'로 완전히 재구성되어 있었다.

 

그의 목숨이, 그의 인생 궤도가 기적처럼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때였다.

 

우진이 쓰러진 공작원에게서 빼앗아 온 군용 무전기 스피커에서 치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넥스트 큐브 본사 통제감사실의 내부 전용 주파수였다.

 

[통제감사실 관제실이다.

 

현장 청소팀 3조, 응답하라.

 

뱅뱅사거리 인과율 수확 작업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우진은 숨을 죽인 채 무전기를 귀에 가져다 대었다.

 

공작원들의 무전망 너머로, 본사 관제실 내부의 혼란스러운 경보음과 연구원들의 다급한 고함이 여과 없이 섞여 들려왔다.

 

[경보!

 

뱅뱅사거리 신호 제어함 완전 소실!

 

탱크로리 및 광역버스 궤도 강제 분리 확인!

 

충돌 실패…… 인과율 수확 실패입니다!]

 

[뭐라고?

 

결손 수치는?]

 

[누적 결손치, 플러스 310,000 EP를 돌파했습니다!

 

도시 상공 3구역 격자망 파열 시작!

 

코어 전압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무전기 너머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다가오더니,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스피커를 찢고 흘러나왔다.

 

본사 수석 감사관, 도진우의 목소리였다.

 

[닥쳐라.

 

비상 발전기를 돌려 코어 항상성을 유지해.]

 

그리고 이어지는 도진우의 서늘한 질문.

 

[현장 청소팀.

 

K-07 강우진의 생체 반응은 확인했나?]

 

무전기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나가지 않았다.

 

잠시의 침묵 후, 관제실 오퍼레이터의 떨리는 보고가 이어졌다.

 

[……현장 단말 8기 전원 통신 두절.

 

생체 락온 해제되었습니다.

 

그리고…… 관제 시스템에 비인가 이상 로그가 발생했습니다.]

 

[이상 로그?]

 

[대상자 001…… K-07 강우진의 변수 수치가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더 이상 시스템의 사전 예측 알고리즘으로 그의 다음 행동 궤도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격자망 전체를 붕괴시키는 거대한 수학적 특이점이 되었습니다!]

 

6. 한계치를 넘은 변수

 

지지직-.

 

무전기 너머에서 도진우가 이를 바득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상자 001의 변수 수치가 임계점을 넘었다고……?

 

강정호의 망령이 기어이 괴물을 만들어냈군.]

 

도진우의 서늘한 살기가 전파를 타고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좋다.

 

도심 청소 프로토콜을 취소한다.

 

도시 전체의 감시관과 남은 피실험자 병기 전원에게 최고 비상 계엄 령을 하달해라.

 

지금 이 순간부터, 시스템의 모든 방어 기제를 K-07 강우진의 물리적 사살에 집중한다.

 

서울 시내를 통째로 뒤집어서라도 놈을 찾아내 죽여라!]

 

치이익-.

 

무전이 뚝 끊겼다.

 

차 안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서연과 채린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우진을 바라보았다.

 

대상자 001.

 

시스템이 부여한 식별 코드이자, 15년 전 아버지가 백신을 각인시켰던 최초의 특이점.

 

우진의 궤도는 이제 거대한 네모 프로젝트의 슈퍼컴퓨터조차 단 1초 앞을 계산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완전히 이탈해 있었다.

 

"우진 씨……."

 

서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우진의 팔을 감쌌다.

 

"이제 도시 전체가 우진 씨를 죽이려고 달려들 거야. 숨을 곳이 없어. 경찰, 군대, 언론, 그리고 저 기계화 병기들까지…… 전부 우리를 쫓을 거라고."

 

우진은 피투성이가 된 무전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부러진 갈비뼈가 숨을 쉴 때마다 칼로 베는 듯한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자수정빛 안광이 더욱 또렷하게 타올랐다.

 

"도망치지 않습니다."

 

우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들이 나를 계산할 수 없다면, 이제 판을 짜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요?"

 

채린이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아저씨 몸도 이런데…… 거점 7번의 한민우 부소장님께 가야 할까요?"

 

우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선이 차창 밖, 빗줄기 너머로 아스라하게 보이는 서울의 서북쪽 하늘을 향했다.

 

기억의 심연 속에서, 오래도록 봉인되어 있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널 버린 거다. 널 팔아넘긴 거다.'

 

15년 전, 관자놀이에 흉터를 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울부짖으며 내뱉었던 그 기괴한 거짓말.

 

시스템의 감시 속에서 평생을 공포에 질려 아들을 밀어내려 했던 어머니.

 

왜 어머니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척하며 침묵해야만 했을까.

 

왜 어머니의 정수리에는 언제나 가늘고 검은 실선이 위태롭게 드리워져 있었을까.

 

7. 핏줄의 궤적

 

"어머니에게 가야 합니다."

 

우진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차 안의 공기가 멈칫 굳어졌다.

 

서연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어머님께요……? 하지만 우진 씨 집 주변은 이미 감시관들의 락온이 걸려 있을 텐데…… 거긴 너무 위험해요!"

 

"아파트가 아닙니다."

 

우진이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실종된 이후, 1년에 단 한 번……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늘 혼자 찾아가던 곳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 외곽, 버려진 옛 벽돌 공장 터 뒤편의 낡은 사당."

 

우진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17세 이전의 기억이 지워진 저에게, 유일하게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늘 누군가를 위해 제사를 지내듯 향을 피우고 울고 계셨어요. 어린 시절의 저는 그게 죽은 친척을 기리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연구소에서 탈출시킨 아이들, 혹은 15년 전의 비극과 관련된 장소였던 겁니다."

 

우진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어머니는 알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왜 나를 K-07로 개조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내 관자놀이에 칩을 심고, 다시 그 칩을 뜯어내며 기억을 지워야만 했던 그날의 진짜 진실을요."

 

시스템의 총력 추격이 시작된 지금, 가장 안전한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자신이 누구인지,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진정한 유산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그것이 15년 전 끊겨버린 자신의 궤도를 온전히 되찾는 유일한 길이었다.

 

"고양시로 차를 몹니다."

 

우진이 결연하게 명령했다.

 

서연은 잠시 우진의 결연한 눈빛을 바라보더니, 굳게 고개를 끄덕이며 스티어링 휠을 돌렸다.

 

카니발은 폭우가 쏟아지는 강변북로를 향해 어둠을 찢으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백미러 너머로, 서울 도심 상공을 뒤덮은 거대한 사각 격자망이 결손 수치를 견디지 못하고 푸른 스파크를 튀기며 기괴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난 단 하나의 거대한 변수, K-07.

 

그의 발걸음이 마침내 15년간 봉인되어 있던 과거의 가장 깊은 성역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