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탄압
1. 보도국으로 번진 검은 그림자
한서연(韓瑞娟)은 방송국 본관 7층 보도국 복도를 거의 달리다시피 걸었다.
손끝에 쥔 외장 SSD가 체온에 달아올라 있었다.
그 안에는 한남동 갤러리 '에테르'에서 강우진과 함께 확보한 H-스퀘어의 세뇌 알고리즘 로그와 피해자 정유진의 생생한 음성 증언이 담겨 있었다.
태성그룹 채용 비리에서 여의도 증권가 주가 조작, 그리고 대한민국 정재계 유력 인사들의 자제를 옭아맨 사각 궤도 규격화 공작까지.
넥스트 큐브라는 거대한 독버섯이 사회의 실핏줄을 쥐어짜 온 실체가 완성된 탐사보도 다큐멘터리 파일의 형태로 응축되어 있었다.
오후 8시 40분.
메인 뉴스 블록 직후로 편성된 시사 기획 특별 방송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0분 남짓이었다.
주조정실로 이어지는 복도 양옆의 모니터에서는 연신 긴급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속보: 테헤란로 태성C&I 총격 테러 용의자 강우진 및 공범 전국 공개 수배]
붉은 헤드라인 아래로 선명하게 박힌 강우진과 자신의 얼굴.
서연은 이를 악물었다.
경찰청의 공식 보도자료 배포 시각보다 10분 앞서 보도국 내부 전산망에 미리 송고되어 있던 그 끔찍한 조작 기사.
이미 방송국 심장부까지 놈들의 검은 손길이 닿아 있다는 증거였다.
서연은 숨을 가다듬으며 주조정실 강화유리문을 거칠게 밀어젖혔다.
"선배! 최종 마스터본 렌더링 끝났어요. 지금 송출 큐시트에 물려야 합니다!"
서연의 외침에 편집 콘솔 앞에 모여 있던 조연출과 작가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아닌, 기괴할 정도로 차가운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콘솔 데스크 중앙, 메인 프로듀서의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할 책임 PD 대신 낯익은 중년 남성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보도국장 오태식이었다.
헝클어짐 없는 백발과 값비싼 캐시미어 정장, 그리고 냉각된 유리알처럼 건조한 눈빛.
서연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오태식의 정수리 위 약 10센티미터 허공.
그곳에는 일체의 미세한 떨림이나 진동조차 존재하지 않는, 완벽하고 거대한 칠흑빛 직사각형이 떠 있었다.
고정된 검은 네모(■).
자유의지와 인간적인 고뇌가 완전히 거세된 채, 중앙 시스템의 파라미터만을 수신하는 기계화된 단말의 표식이었다.
2. 얼어붙은 주조정실
오태식 국장은 천천히 서연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의 시선에는 오랜 시간 함께 일해 온 후배를 향한 연민이나 놀라움 따위는 티끌만큼도 섞여 있지 않았다.
오직 정해진 절차를 밟아 불량 부품을 폐기하려는 관리자의 무감각한 사무적 태도뿐이었다.
"한서연 기자."
오태식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메말라 있었다.
"지금 전국에 긴급 수배령이 떨어진 테러 용의자가 제 발로 보도국 주조정실까지 걸어 들어오다니. 제정신인가?"
"국장님. 화면을 보십시오. 이 수배령 자체가 저들이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조작해 낸 프레임입니다! 넥스트 큐브가 여의도 금융망과 태성그룹, 그리고 정재계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무슨 짓을 벌여왔는지 이 안에 다 들어 있어요!"
서연은 품에서 꺼낸 외장 드라이브를 데스크 위로 내밀었다.
"오늘 9시 시사 기획 방송, 원래대로 편성 나가야 합니다. 이미 방통위 사전 심의와 데스크 승인까지 다 거친 기획입니다. 20분 뒤면 송출 스위치가 올라가야 해요!"
그러나 오태식은 책상 위에 놓인 드라이브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손가락 하나를 까딱여 콘솔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 속에는 서연이 며칠 밤을 새워 편집한 다큐멘터리 영상 클립들이 전부 회색빛 비활성화 블록으로 전환되어 있었다.
[ALERT: 방송 송출 승인 거부 - 편성국 직권 방송 보류 조치]
선명한 붉은 경고창이 타임라인 전체를 가로막고 있었다.
서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방금 전 긴급 편성위원회가 열렸다."
오태식은 품 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차갑게 던졌다.
"한서연 기자가 제출한 아이템은 취재 윤리 위반 및 미확인 가짜 뉴스 유포, 그리고 특정 기업에 대한 악의적 음해로 판단되어 영구 방영 불허 결정이 내려졌다."
"취재 윤리 위반이라니요? 피해 당사자들의 실명 증언과 물류 서버 포렌식 로그, 금융감독원 내부 문서까지 완벽하게 교차 검증을 마쳤습니다! 게다가 저건 정석현 의원의 따님인 정유진 씨가 직접 서명한 진술서예요!"
"검증?"
오태식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메마른 냉소가 스쳐 지나갔다.
"경찰에 쫓기는 중범죄 피의자가 가져온 출처 불명의 해킹 데이터를 무슨 수로 공영 방송의 전파에 태운다는 말이지? 한 기자, 자네는 선을 넘었어. 사회적 질서와 안정을 무너뜨리는 불온한 망상에 사로잡혀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어."
"질서요?"
서연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분노가 실렸다.
"수천 명의 개인 투자자가 하루아침에 한강 다리로 내몰리고, 억울한 청년들이 면접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불합격 낙인이 찍히는 게 국장님이 말씀하시는 질서입니까? 넥스트 큐브라는 정체불명의 집단이 사람들의 뇌와 목숨을 부품처럼 조작하고 있는데, 그걸 눈감아주는 게 언론의 역할입니까?"
3. 조작된 벽
주조정실 안의 엔지니어들과 스태프들은 누구 하나 서연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니터만을 멍하니 응시한 채,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을 멈추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연한 백색 네모들이 떠 있었으나, 공기 중에 희미하게 진동하는 저주파 신호에 짓눌려 있었다.
시스템이 방송국 사옥 전체에 보이지 않는 격자망을 덮어씌워 내부의 모든 인과를 통제하고 있는 탓이었다.
오태식 국장은 천천히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정수리 위 칠흑빛 검은 네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싸늘한 한기가 서연의 피부를 바늘처럼 찔렀다.
"한 기자. 세상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설픈 정의감으로 굴러가지 않아."
오태식의 목소리는 너무나 낮고 단호해서, 마치 콘크리트 벽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면 사회는 붕괴해. 탐욕과 이기심, 무질서한 충돌이 엔트로피를 폭발시키고 결국 문명을 파멸로 몰고 가지. 각자의 분수에 맞는 사각형 규격 안에 안치되어야만 비로소 세상은 평온을 유지하는 법이야. 자네가 지금 벌이고 있는 짓은 그 정교한 톱니바퀴 사이에 모래알을 쑤셔 넣는 테러에 불과해."
서지훈이 죽기 직전 토해냈던 논리와 소름 끼치도록 일치하는 문장.
서연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외압을 받거나 뇌물을 챙긴 부패 언론인의 태도가 아니었다.
오태식의 영혼은 이미 시스템의 알고리즘에 완전히 침식되어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사회의 붕괴를 막는 파수꾼이라 믿고 있었다.
"국장님 뒤에 연결된 그 꼭두각시 줄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서연이 오태식의 머리 위 허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국장님은 진실을 지키는 언론인이 아니라, 넥스트 큐브가 짜놓은 대본을 읽는 확성기로 전락한 거라고요!"
그 순간, 오태식의 눈빛에서 인간적인 감정의 편린마저 완전히 지워졌다.
그의 머리 위 검은 네모의 모서리가 번뜩이며 붉은빛 전자기 스파크를 튀겼다.
"말이 길었군. 보도본부 징계위원회의 긴급 의결 사항을 통보하겠다."
오태식은 냉정하게 문서를 읽어 내렸다.
"사회부 한서연 기자는 회사 명예 실추, 무단 결근, 기밀 데이터 불법 취득 및 테러 연루 혐의로 즉각 대기발령 및 해고 절차에 회부한다. 아울러 사내 출입 자격을 박탈하며, 현 시간부로 보안요원에게 신병을 인계하여 경찰에 고발 조치한다."
치직.
주조정실 인터폰에서 경비상황실장의 기계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보안 1팀, 7층 주조정실 앞 도착했습니다.]
강화유리문 너머로 검은 정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 네 명이 곤봉과 케이블 타이를 든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정수리 위에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정렬된 '검은 네모'가 떠 있었다.
본사 18층에서 우진과 맞닥뜨렸던 그 기계화 경비 병력들이 이미 방송국 로비와 보안 데스크까지 완벽히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4. 끊어진 활로
"드라이브를 압수하고, 밖으로 끌어내."
오태식의 냉혹한 명령이 떨어졌다.
보안요원들이 유리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이닥쳤다.
"손대지 마!"
서연은 반사적으로 콘솔 데스크 모서리를 돌며 뒤로 물러섰다.
외장 SSD를 코트 안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 지퍼를 채웠다.
이 데이터마저 놈들의 손에 넘어가 포맷된다면, 강우진과 윤채린이 목숨을 걸고 버텨온 모든 인과가 물거품이 된다.
태성 사옥 비상계단에서 산화한 민도현의 희생도, 한남동에서 간신히 굴레를 벗어던진 정유진의 눈물도 전부 어둠 속에 묻히고 만다.
첫 번째 보안요원이 서연의 팔을 낚아채려 손을 뻗었다.
서연은 망설임 없이 데스크 위에 놓여 있던 무거운 오디오 믹서 모니터를 양손으로 들어 올려 사내의 가슴팍을 향해 내던졌다.
쾅!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모니터 플라스틱 하우징이 깨져 나가며 사내가 비틀거렸다.
주조정실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잡아! 문 막아!"
오태식이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당황이 아닌 차가운 연산 지시만이 담겨 있었다.
두 번째 요원이 허리춤에서 테이저건을 뽑아 드는 찰나, 서연은 주조정실 구석에 위치한 비상 방송 송출용 보조 부스의 방음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철컥!
육중한 방음 도어가 닫히며 내부 수동 잠금 레버가 내려갔다.
탕!
탕!
탕!
바깥에서 보안요원들이 어깨로 방음문을 거세게 들이받기 시작했다.
강화유리 창살 너머로 오태식 국장의 싸늘한 얼굴이 보였다.
그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태연하게 마스터 키 카드를 꺼내 들고 있었다.
방음 도어의 전자 도어록이 해제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1분 남짓.
서연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보조 부스의 메인 송출 단말기 앞에 주저앉았다.
화면에는 국가 비상사태나 대형 재난 발생 시 공영 방송망 전체를 강제로 점유하도록 설계된 특수 비상망, 'K-Alert 포트'의 로그인 창이 떠 있었다.
지난번 태성 사옥 방재실에서 우진을 엄호하기 위해 임시로 우회 접속했던 바로 그 백도어 경로였다.
서연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외장 드라이브를 USB 포트에 꽂고, 넥스트 큐브의 데이터와 H-스퀘어 세뇌 보고서를 강제 업로드 목록에 올렸다.
[SYSTEM: K-Alert 국가 재난 전송망 접속 시도]
[인증 코드 입력 요구: 보도국장 직인 전자 서명 필요]
붉은 경고 메시지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제발... 제발 좀 넘어가라...!"
서연은 이를 악물고 우회 패킷을 주입했다.
그러나 화면 중앙에 떠오른 방화벽 아이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소프트웨어 암호가 아니었다.
오태식의 머리 위에 떠 있던 검은 네모가 발산하는 시스템의 상위 통제 권한이, 방송국 내부의 모든 비상 네트워크 프로토콜을 원천 봉쇄하고 있었다.
[접속 거부: 상임이사회 레벨-4 보안 락 발동]
[데이터 강제 소각 프로세스 가동: 잔여 시간 30초]
경고음이 귓전을 때렸다.
단말기 화면이 붉게 물들며, 외장 드라이브 내부의 파일들이 바이트 단위로 지워져 나가기 시작했다.
5. 파열하는 진실
서연은 황급히 케이블을 뽑아 드라이브를 회수했다.
그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턱 끝으로 떨어졌다.
공중파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넥스트 큐브는 단순히 취재를 방해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국가 기간 방송망 자체의 혈도를 틀어쥐고, 진실이 전파를 타고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길목을 철저히 틀어막아 버렸다.
철컥, 삐비비빅!
방음 도어의 전자 잠금장치가 녹색 불을 켜며 풀리는 소리가 울렸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보안요원 세 명이 들이닥쳐 서연의 양팔을 뒤로 꺾어 바닥에 짓눌렀다.
"크윽...!"
차가운 리놀륨 바닥에 뺨이 짓눌리는 순간, 극심한 굴욕감과 분노가 서연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오태식 국장이 천천히 부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허리를 굽혀 서연의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외장 드라이브를 서늘한 손길로 낚아챘다.
"기자의 사명감이라... 가상하군."
오태식은 드라이브를 구두 밑창 아래에 내려놓았다.
빠각!
단단한 알루미늄 케이스가 찌그러지며 내부 메모리 칩이 산산조각 났다.
파괴된 기판 사이로 미세한 정전기 스파크가 튀었다.
서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태식... 당신이 그러고도 기자야? 당신이 30년 동안 마이크 앞에서 떠들어댄 정의는 다 가짜였어?"
"진실은 대중을 구원하지 못해."
오태식은 무감각하게 서연을 내려다보았다.
"대중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내일 아침에도 지하철이 제시간에 오고, 은행 계좌의 숫자가 유지되는 안온한 일상이다. 그 일상을 지탱하기 위해 누군가는 사각형의 테두리를 치고, 누군가는 그 밖으로 튕겨 나간 오염물을 치워야 하지. 한서연, 자네는 오늘부로 그 오염물이 된 거야."
오태식은 보안요원들에게 턱짓했다.
"지하 주차장 비공개 통로로 이송해.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차량을 대기시켜 뒀다. 외부 기자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입을 막아."
사내들이 서연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팔을 케이블 타이로 결박하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위이이잉—!
방송국 사옥 전체의 형광등이 일제히 꺼지며 비상등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천장의 스프링클러 배관 너머로 날카로운 고주파 파동이 스며들었다.
공기가 찌르르 떨려왔다.
오태식의 머리 위에 미동도 없이 떠 있던 검은 네모가 기괴하게 흔들렸다.
벽면의 콘솔 모니터들이 지지직거리며 푸른 노이즈를 내뿜더니, 방송국 내의 모든 디지털 시계가 일제히 정지했다.
[8시 51분 00초].
단 1초도 흘러가지 않는 시간의 동결.
"...뭐지?"
오태식의 표정에 처음으로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그의 검은 네모 주변으로 뻗어 있던 검은 꼭두각시 와이어들이 허공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며 비명을 지르듯 뒤틀렸다.
6. 신호의 저편
주조정실 유리창 너머 복도에서 요란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쾅!
비상계단 방화문이 통째로 뜯겨 나가며 회색 연무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농밀한 백색 연무는 단순한 최루가스가 아니었다.
은빛 동그라미(○)의 비간섭 척력 파동을 응축시켜 만든 그리드 교란 연막.
연기가 스며드는 곳마다 벽면에 매설되어 있던 시스템의 감시 센서와 검은 격자선들이 물리적으로 밀려나며 산산이 흩어졌다.
"콜록! 무슨 짓이야! 보안 2팀, 당장 투입해!"
오태식이 소리쳤으나 인터폰에서는 오직 먹먹한 백색 소음만이 흘러나왔다.
연무를 가르고 주조정실 안으로 뛰어든 그림자가 있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날렵한 체구의 소녀, 윤채린이었다.
채린의 손에 들린 그리드 오버라이더 단말기에서 은빛 펄스가 부채꼴 형태로 뿜어져 나오며 보안요원들의 신경계를 강타했다.
"커억!"
자유의지가 거세된 채 시스템 명령만을 수신하던 보안요원들은, 뇌간으로 전송되던 통제 신호가 순식간에 차단되자 극심한 연산 지연과 신경 쇼트를 일으키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언니, 일어나요!"
채린이 쏜살같이 달려와 서연의 팔을 묶으려던 케이블 타이를 단도로 끊어냈다.
서연은 입에 물려 있던 천을 뱉어내며 거칠게 기침했다.
"채린아... 네가 여길 어떻게? 우진 씨는?"
"우진 아저씨가 방송국 주변 격자망의 이상 징후를 먼저 읽었어요. 언니 신호가 끊기는 걸 보고 도진우의 함정이라는 걸 눈치챘고요!"
채린이 서연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며 외쳤다.
"빨리 빠져나가야 해요! 한남대교를 건너던 피실험자 5명 중 2명이 이쪽으로 경로를 틀었어요!"
그 순간,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던 오태식 국장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이마에는 핏줄이 불거져 있었고, 눈동자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머리 위 검은 네모가 거칠게 박동하며 부서진 외장 드라이브 조각들을 발로 짓밟았다.
"소용없다... 이미 공중파 전산망은 완전히 잠겼어. 네년들이 가진 자료는 영원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
오태식이 광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는 시스템을 이길 수 없어. 이 도시 전체가 이미 거대한 네모의 감옥이다!"
서연은 쓰러진 사내들 틈에서 깨진 모니터 조각을 쥐어 잡았다가, 천천히 오태식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좌절이나 공포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서늘하게 타오르는 기자의 오기만이 서려 있었다.
"그래, 네모의 감옥이겠지."
서연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당신들이 짠 사각형 전파망이 막혔다고 해서, 진실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야."
서연은 채린의 손을 굳게 잡았다.
"가자, 채린아. 저들이 통제할 수 없는 곳으로."
7. 또 다른 전장을 향해
비상계단을 타고 사옥 지하 3층 화물 하역장으로 내려가는 내내 경보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사옥 밖 테헤란로 일대는 이미 경찰 순찰차와 정체불명의 검은 밴들로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었다.
하역장 셔터문 앞에는 시동을 켠 채 대기 중인 진회색 카니발이 서 있었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창백한 안색의 강우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진의 오른쪽 관자놀이 4센티미터 수술 흉터는 붉게 달아올라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4단계 '과거 추적'의 여파로 안압이 치솟아 실핏줄이 터진 오른쪽 눈에서 붉은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지만, 그의 시선은 테헤란로 상공을 가르는 거대한 검은 격자망을 서늘하게 꿰뚫고 있었다.
"서연 씨, 다친 곳은 없습니까?"
우진이 다급하게 다가와 서연의 어깨를 살폈다.
"난 괜찮아요. 하지만... 방송이 막혔어요. 국장마저 검은 네모에 잠식당해 있었어요. 외장 드라이브도 그 자리에서 부서졌고요."
서연의 목소리에 배어 있는 비통함을 감지한 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자료는 상관없습니다. 윤 연구원님의 백업 칩과 제 기억 속에 H-스퀘어의 소스코드가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진은 조수석 문을 열어 서연과 채린을 태웠다.
"공중파가 막혔다면 다른 길을 찾으면 됩니다. 저들이 틀어쥔 방송 전파망 밖에서, 시스템의 검열을 우회할 수 있는 독립 서버를 열어야 합니다."
차량이 급발진하며 지하 하역장 경사로를 박차고 지상 도로로 튀어나갔다.
테헤란로의 네온사인 불빛 아래로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백미러 너머로 방송국 사옥 옥상 안테나에서 푸른빛의 인과율 스파크가 신경질적으로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넥스트 큐브는 성공적으로 언론의 입을 틀어막았다고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연은 품속에서 자신의 개인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에는 방송국 입사 동기이자 현재 독립 탐사보도 팟캐스트를 운영 중인 믿을 수 있는 동료 기자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너희가 짠 사각형 안에서는 진실을 말할 수 없다면.'
서연의 손가락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우리가 직접 새로운 판을 짠다.'
달리는 차 안에서 우진의 시야에 테헤란로 상공을 가로지르는 붉은 궤적선들이 어지럽게 교차하기 시작했다.
본사에서 출격한 피실험자 병기들의 신호가, 점점 더 거센 파동으로 이 도시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