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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로 간다 · 제 24화

설계된 주가 폭락

📅 2026-10-02 18:10•✍️ 만우자•👁️ 0•

1. 암흑의 프레임

 

태성C&I 본사 18층 복도 끝, 두꺼운 방폭문이 굉음과 함께 안쪽으로 찌그러졌다.

 

경첩이 뜯겨 나가며 피어오른 회백색 석고 먼지 너머로, 서늘한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강우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부회장실의 문턱을 넘어섰다.

 

오른쪽 관자놀이의 4센티미터 수술 흉터가 불에 달군 송곳으로 후벼 파이는 듯 맥동하고 있었다.

 

방화벽 백신 코어가 이진혁의 궤도 반전 당시 흡수한 거대한 인과율 에너지를 체내에서 억누르느라, 시신경 뒤편이 지끈거렸다.

 

방 안은 일반적인 임원실의 풍경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사방의 벽면은 3중 차폐 알루미늄 패널로 둘러싸여 있었고,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콘솔과 수십 대의 초고해상도 모니터가 푸른빛과 붉은빛을 교차하며 번쩍였다.

 

천장 한가운데에는 옥상 위성 송수신 안테나로 직결되는 굵직한 초고압 광케이블 다발이 뱀의 똬리처럼 얽혀 내려와 콘솔 본체에 박혀 있었다.

 

분산 백업 코어 1호.

 

역삼역 지하 7층 중앙 코어가 파괴되자마자 도심 상공의 격자망을 떠받치기 위해 우회 활성화된 바로 그 시스템이었다.

 

콘솔 앞, 최고급 가죽 의자에 앉아 있던 사내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단정한 은발을 뒤로 빗어 넘긴 태성그룹 부회장 최원석(崔元碩)이었다.

 

그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으나, 눈동자만큼은 이글거리는 살의와 광기로 뒤덮여 있었다.

 

우진의 시야에 최원석의 머리 위 약 10센티미터 상공이 맺혔다.

 

2단계 심층 분석을 가동하지 않았음에도 그 기괴한 형상은 망막을 짓이겨 왔다.

 

그것은 평범한 직장인들의 백색 네모도, 감시관들의 3차원 검은 육면체도 아니었다.

 

빛조차 빨아들이는 칠흑빛의 텅 빈 사각 테두리.

 

'암흑의 프레임(Dark Frame).'

 

면(面)조차 채워지지 않은 그 빈 껍데기 같은 사각형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삐걱거리며 불규칙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장 광케이블 사이 허공에서 뻗어 나온 수백 가닥의 반투명한 검은 와이어가 프레임의 빈 공간을 관통해 최원석의 정수리와 목덜미, 척수 신경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지배자의 권능 따위가 아니었다.

 

중앙 시스템의 거대한 연산 회로가 그의 자아와 뇌수를 실시간으로 빨아먹으며 오직 지상 송출용 단말로 부려먹고 있는 처참한 사육의 현장이었다.

 

"기어이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구나, K-07."

 

최원석이 메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목소리는 쇠를 긁는 듯 쇳소리가 섞여 있었고, 말마디마다 프레임의 검은 와이어가 파르르 떨렸다.

 

"감히 네까짓 불량품 하나가 시스템의 정교한 톱니바퀴에 모래를 뿌려?"

 

우진은 바닥에 질질 끌리던 방범 진압봉을 단단히 고쳐 쥐었다.

 

"80명의 청년들을 단지 엔트로피를 맞추기 위한 소모품으로 버리려 했더군. 그게 네놈들이 말하는 질서인가?"

 

최원석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무지한 것. 인간의 삶이란 본래 정해진 규격 안에 갇혀 있을 때 비로소 안전한 법이다. 자유의지? 주체성? 그따위 통제되지 않는 확률적 망상이 지난 세월 서울 하늘 아래 얼마나 많은 충돌과 피를 불렀는지 아느냐? 잉여 엔트로피를 태워 없애지 않으면 도시 전체가 붕괴한다. 몇몇 하층 노드의 탈락은 전체를 위한 지극히 경제적인 백신이야!"

 

"합리화하지 마."

 

우진이 차갑게 일갈했다.

 

"네 머리 위의 저 흉측한 껍데기나 보고 지껄여. 넌 지배자가 아니야. 시스템이 찌꺼기를 처리하려고 걸어둔 꼭두각시 소켓에 불과해."

 

그 말에 최원석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의 정수리에 꽂힌 보이지 않는 족쇄의 실체를 정곡으로 찔린 탓이었다.

 

2. 금융 파이프라인의 폭주

 

"닥쳐라!"

 

최원석이 발작하듯 콘솔 패널을 양손으로 내리쳤다.

 

콰앙!

 

"네놈이 그 건방진 면접자 놈의 궤도를 억지로 비트는 바람에, 관제망에 치명적인 공백이 생겼다. 알고 있나? 그 에러 로그의 대가가 무엇인지!"

 

콘솔 메인 모니터 전체가 시뻘건 경고창으로 뒤덮였다.

 

[FATAL SYSTEM ALERT: Node-ID 8021 Orbit Inversion]

 

[인과율 결손 발생: +18,400 EP]

 

[항상성 복구 프로토콜 강제 활성화: 금융 파이프라인 대체 노드 긴급 할당]

 

수치와 그래프가 미친 듯이 갱신되며, 화면 우측에 여의도 증권가의 실시간 주식 거래 전산망이 떠올랐다.

 

종목명 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 [네오바이오젠(NeoBiogen)].

 

최원석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기괴한 속도로 두드렸다.

 

그의 머리 위 암흑의 프레임에서 검은 전류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콘솔 단자로 쏟아져 들어갔다.

 

"네놈이 면접장 버러지 몇 놈의 목숨줄을 건져 올린 대가다! 시스템은 총량을 잊지 않아. 결손된 파멸 값은 그보다 열 배, 백 배 거대한 숫자로 채워 넣어야만 하지!"

 

우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인과율 보존 법칙.'

 

이진혁의 검은 세모를 억지로 백색 세모로 비틀어 올리며 발생한 시스템의 거대한 에너지 공백.

 

중앙 코어가 무너진 상태에서, 분산 백업 코어가 그 충격을 메우기 위해 즉각 '대체 희생양'을 찾아 전산망을 가동한 것이었다.

 

모니터 속 네오바이오젠의 주가 차트가 실시간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현재 시각 오전 9시 15분.

 

개장 직후 상한가를 향해 치솟던 주가 42,000원 선에, 갑작스러운 수백만 주의 유령 매도 폭탄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단 1분 만에 마이너스 15퍼센트, 그리고 하한가.

 

그것은 단순한 주가 급락이 아니었다.

 

화면 한편에 수천 명의 개인 투자자 계좌 정보와 그들의 생체 반응 신호가 실시간 격자망으로 락온되고 있었다.

 

[Class-S 강제 손실 집행]

 

[목표 희생 노드: 신용 미수 레버리지 개인 투자자 4,200명]

 

[파멸 궤도 지정: 회수 불능 파산 및 극단적 선택 유도]

 

"네오바이오젠은 넥스트 큐브가 3년 전부터 설계해 둔 미끼였다."

 

최원석이 피를 토하듯 광소를 터뜨렸다.

 

"원금 보장과 임상 3상 성공 찌라시를 미러 큐브 앱으로 은밀히 흘려, 빚을 내어 몰빵하도록 유도했지. 저 개미들은 지금 전 재산이 증발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될 거다. 그리고… 그들의 궤도는 완벽한 파멸의 세모로 뒤틀릴 것이다!"

 

그 순간, 부회장실 벽면의 유리창 밖으로 테헤란로 일대와 저 멀리 여의도 방향 하늘이 일렁였다.

 

우진의 망막에, 허공을 가로지르는 굵직한 붉은색 데이터 스트림이 보였다.

 

빌딩 옥상의 대형 위성 안테나에서 쏘아 올려진 신호가 도심 상공의 보이지 않는 사각 격자망을 타고 증권 전산망으로 꽂히고 있었다.

 

"막아야 해."

 

우진이 이를 악물며 콘솔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최원석은 비열하게 웃으며 책상 아래 붉은 레버를 당겼다.

 

치이익!

 

콘솔 주변 바닥에서 두께 10센티미터의 투명 특수 방탄 강화유리 차폐벽이 솟구쳐 올랐다.

 

우진의 진압봉이 차폐벽을 강타했으나, 둔탁한 파열음만 낼 뿐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소용없다, K-07! 이 차폐벽은 내부 통제 콘솔에서만 해제할 수 있다. 옥상의 위성 데이터 송출이 100퍼센트 완료되는 순간, 4천 명의 파멸 궤도는 영구히 고정된다!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네가 한 놈을 살릴 때마다 수천 명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꼴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3. 붕괴하는 장막

 

그때, 우진의 귓가에 꽂혀 있던 소형 인이어 무전기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서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치익, 치지직!

 

- 우진 씨!

 

들려요?

 

1층 중앙 방재실 전산망을 잡았어요!

 

우진은 차폐벽을 치던 손을 멈추고 귀를 눌렀다.

 

"서연 씨, 지금 18층에서 서울 금융망으로 대규모 강제 매도 패킷이 송출되고 있어. 네오바이오젠이라는 바이오 주식이야. 개미 투자자 수천 명을 희생 노드로 삼으려 하고 있어!"

 

- 네오바이오젠…!

 

세상에, 방금 증권가 찌라시로 허위 횡령 공시와 임상 실패 속보가 송고 대기열에 걸렸어요.

 

송고 시각이 9시 30분으로 세팅되어 있는데, 지금 시스템 데스크 서버가 멋대로 기사를 릴리즈 준비 중이에요!

 

또 사전 각본이에요!

 

15년 전 연구소 화재 때도, 역삼역 대기업 임원 사망 사고 때도 그랬다.

 

사건이 벌어지기도 전에 언론망에 속보를 심어 대중의 인식을 사각틀에 가두는 네모 프로젝트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 우진 씨, 방재실 메인 서버에서 옥상 위성 안테나 전원을 차단하려 해도 관리자 권한이 18층 부회장실에 락(Lock)되어 있어요.

 

외부에서는 강제 셧다운이 불가능해요!

 

"내가 옥상으로 간다."

 

우진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송출을 물리적으로 끊어야 해. 서연 씨는 채린이와 함께 방재실에서 사내외 언론망 백도어를 열어둬. 저들이 가짜 속보를 띄우는 순간, 진실을 덮어씌워야 해."

 

- 알겠어요.

 

하지만 조심해요, 우진 씨.

 

18층 비상계단 쪽에 사내 특수 경비 잔여 병력들이 집결하고 있어요!

 

통신을 끊은 우진은 차폐벽 너머의 최원석을 노려보았다.

 

최원석은 콘솔 의자에 파묻힌 채, 광기에 젖은 눈으로 모니터의 하락 그래프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 암흑의 프레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와이어들이 점점 더 굵어지며, 그의 목덜미 피부를 검붉게 괴사시키고 있었다.

 

시스템에 영혼을 판 자의 말로였다.

 

"지옥에서 기다리마, 최원석."

 

우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회장실을 박차고 나왔다.

 

복도에는 비상 사이렌이 붉은 회전등과 함께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비상계단 철문 앞에는 이미 검은 전술복을 입은 사내 보안 요원 4명이 총기를 겨눈 채 도열해 있었다.

 

그들의 정수리 위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고정된 검은 네모(■)'가 차갑게 박혀 있었다.

 

자유의지가 거세된 기계 인형들.

 

우진은 턱을 당기며 관자놀이의 통증 속으로 의식을 집중시켰다.

 

찌르르!

 

시신경이 오버클럭되며 2단계 심층 분석 능력, '변화 감지'가 개안(開眼)했다.

 

눈앞의 공간이 미세하게 쪼개지며, 보안 요원 4명의 총구와 발끝에서 푸른빛의 반투명한 궤적선이 뻗어 나왔다.

 

0.4초 뒤.

 

좌측 요원이 3점사 사격을 가할 궤적.

 

우측 요원이 테이저건을 발사하며 전진할 동선.

 

중앙 두 명이 교차 사격을 개시할 탄도.

 

미래의 궤적이 망막 위에 선명한 선으로 각인되었다.

 

타앙!

 

타당!

 

총성이 복도를 찢는 찰나, 우진의 몸이 이미 오른쪽 대리석 기둥 뒤로 미끄러져 들어가 있었다.

 

총탄이 기둥 모서리를 때리며 석재 파편이 튀었다.

 

우진은 망설임 없이 기둥을 박차고 나가며 소화전 호스를 휘둘렀다.

 

0.3초의 인과율 지연 시간.

 

명령을 수신하고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발생하는 적들의 기계적 병목 현상을 파고든 우진의 진압봉이 첫 번째 요원의 손목을 정확히 후려쳤다.

 

콰득!

 

무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우진은 요원의 턱을 팔꿈치로 꺾어 올리며 중심을 무너뜨렸다.

 

이어 두 번째 요원이 테이저건을 겨누는 순간, 쓰러지는 적의 육신을 방패 삼아 전진해 가슴팍에 정권을 꽂아 넣었다.

 

순식간에 두 명이 바닥을 굴렀다.

 

남은 두 요원이 당황하여 총구를 돌리려 했으나, 우진의 움직임은 그들의 연산 속도보다 한 박자 빨랐다.

 

바닥을 쓸어 차 다리를 꺾고, 진압봉으로 관자놀이를 가격해 기절시켰다.

 

단 7초 만에 벌어진 제압이었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우진은 옥상으로 이어지는 방화문을 걷어찼다.

 

쾅!

 

차가운 가을 아침의 돌풍이 옥상 테라스로 쏟아져 들어왔다.

 

4. 옥상의 안테나

 

태성C&I 빌딩 30층 옥상.

 

지상 130미터 상공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우진의 땀에 젖은 머리칼을 사정없이 흩뿌렸다.

 

옥상 중앙에는 지름 8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군용 규격의 초고압 위성 송수신 파라볼라 안테나가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테나의 중심 피드혼(Feed Horn)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출력 전자기 펄스가 도심 상공을 향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우진의 궤도 시각화 능력에 비친 서울의 하늘은 지옥도 그 자체였다.

 

안테나에서 방출된 칠흑 같은 검은 실선들이 거미줄처럼 허공으로 뻗어 나가, 여의도 금융가와 강남 일대의 상공에 거대한 격자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격자망을 타고, 수만 가닥의 검은 꼭두각시 줄이 지상의 건물과 도로를 향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송출 진행률: 84%]

 

안테나 하부 제어반 콘솔의 붉은 디지털 숫자가 숨 가쁘게 올라가고 있었다.

 

우진은 안테나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품속에서 윤채린이 주었던 비상 장비, 은빛 동그라미의 잔류 파동을 응축시킨 고주파 펄스 발생기를 꺼내 들었다.

 

그때였다.

 

파앙!

 

고막을 찢는 파열음과 함께 우진의 발 바로 앞 콘크리트 바닥이 움푹 패며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우진은 반사적으로 옆으로 굴렀다.

 

저격이었다.

 

안테나 반대편 통신 중계탑 난간 위, 검은 롱코트를 입은 사내가 저격총을 겨눈 채 서 있었다.

 

그의 머리 위를 본 우진의 숨이 턱 막혔다.

 

단순한 감시관이 아니었다.

 

세 겹의 칠흑빛 검은 육면체가 서로 다른 축으로 회전하며 영점을 조율하고 있는 자.

 

역삼역 지하 7층 중앙 코어를 호위하던 최상위 친위대, '중앙 집행관'이었다.

 

"K-07. 귀하는 시스템의 허용 한도를 초과했습니다."

 

중앙 집행관의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과한 기계음처럼 감정이 거세되어 있었다.

 

"태성 노드의 대체 파이프라인 송출은 시스템 항상성 유지를 위한 절대 불가피 명령입니다. 오염 노드의 물리적 영구 소거를 집행합니다."

 

철컥.

 

집행관의 총구가 다시 우진의 미간을 겨누었다.

 

우진의 관자놀이 흉터가 찢어질 듯 타올랐다.

 

머리 위의 세 겹 큐브가 회전하며 탄도를 계산하는 찰나, 우진은 그 큐브들의 꼭짓점이 일직선으로 정렬되는 순간을 포착했다.

 

0.05초의 위상차.

 

데이터를 교환하며 발생하는 영점의 결함.

 

우진은 품속의 펄스 발생기를 집행관의 머리 위 허공을 향해 전력으로 투척했다.

 

동시에 진압봉을 양손으로 쥐고 바닥을 박찼다.

 

공중으로 솟구친 발생기에서 푸른빛의 전자기 섬광이 터져 나왔다.

 

화아악!

 

은빛 동그라미의 비간섭 척력 파동이 순간적으로 방출되며, 집행관의 3중 육면체 사이로 쐐기처럼 파고들었다.

 

치지지직!

 

집행관의 머리 위 큐브들이 서로 충돌하며 붉은 스파크를 튀겼다.

 

"연산 오류… 궤도… 락온 해제…!"

 

기계적인 신음과 함께 집행관의 총구가 0.1초 허공으로 흔들렸다.

 

그 찰나의 틈새를 놓치지 않고, 우진은 맹수처럼 쇄도해 집행관의 가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쾅!

 

두 사람의 육중한 신체가 통신탑 난간 아래 옥상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5. 여의도의 비명

 

같은 시각, 여의도의 한 대형 증권사 객장.

 

유리문 너머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차 날카로운 비명과 절규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전광판에 붉은색과 파란색 숫자들이 어지럽게 명멸하는 가운데, 한쪽 벽면을 차지한 코스닥 바이오 섹터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네오바이오젠: 29,400원 (-30.00% 하한가 잔량 4,800,000주)]

 

객장 구석, 구겨진 양복을 입은 50대 남성 강태식이 핏발 선 눈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떨리는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화면에는 마이너스 82퍼센트라는 경악스러운 수익률이 찍혀 있었다.

 

퇴직금 2억에 집을 담보로 받은 대출 3억, 그리고 증권사 신용 미수금까지 끌어모은 7억 원이 단 20분 만에 휴지 조각이 되어 있었다.

 

"말도 안 돼… 어제까지만 해도 미러 큐브에서… 분명히 임상 성공 확률 98퍼센트라고… 최고 추천 종목으로 떴단 말이야…!"

 

태식의 중얼거림은 공포에 질려 떨리고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 AI 비서 앱 '미러 큐브'는 불과 10분 전까지 [강력 매수: 일상 최적화 자산 증식 궤도]라는 푸른 알림창을 띄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앱 화면은 검게 꺼진 채, 섬뜩한 텍스트 한 줄만을 띄우고 있었다.

 

[시스템 알림: 귀하의 자산 궤도가 허용 오차를 벗어났습니다.

 

손실 복구 불가.

 

청산 절차가 시작됩니다.]

 

"사기야… 이건 사기라고!"

 

태식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틀거렸다.

 

그의 정수리 위, 허공 약 10센티미터 상공에 떠 있던 은은한 백색 네모가 급격히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네모의 네 변이 비틀리며 날카로운 세 모서리로 재구성되었다.

 

그리고 천장 환기구 너머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뻗어 내려온 굵직한 칠흑빛 검은 와이어가 그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번쩍!

 

태식의 머리 위에 뜬 도형은 칠흑 같은 어둠을 뿜어내는 '검은 세모(△)'로 완벽히 뒤틀렸다.

 

그것은 단순한 금전적 파산을 넘어선, 예정된 죽음의 표식이었다.

 

태식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완전히 빠져나갔다.

 

마치 깊은 최면에 걸린 인형처럼, 그는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객장 안에는 그 혼자가 아니었다.

 

모니터 앞에 주저앉아 가슴을 쥐어뜯는 주부, 벽에 머리를 찧으며 오열하는 30대 청년, 넋이 나간 채 허공을 응시하는 노인.

 

그들 수십 명의 정수리 위로, 예외 없이 칠흑빛 검은 세모가 붉은 안개를 뿜어내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뇌리로, 시스템이 주입하는 거부할 수 없는 절망의 파동이 흘러들었다.

 

'끝났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

 

'한강으로 가라.'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

 

태식은 마치 유령에 홀린 사람처럼, 옥상으로 이어지는 비상구 계단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 위 검은 세모가 섬뜩한 회전 속도를 올리며, 죽음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있었다.

 

6. 궤도를 자르는 칼

 

태성C&I 옥상.

 

우진은 바닥에 나뒹굴던 중앙 집행관의 팔을 꺾어 누르며, 진압봉 끝을 그의 흉부에 강하게 내리꽂았다.

 

쿠웅!

 

집행관의 가슴 보호구가 깨져 나가며 검은 윤활유 같은 체액이 뿜어져 나왔다.

 

기계와 생체 조직이 끔찍하게 융합된 몸체 안쪽에서 전선 합선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궤도… 동기화… 실패…"

 

집행관의 머리 위에서 회전하던 세 겹의 검은 큐브가 산산조각 나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마침내 기능이 정지한 적을 밀쳐낸 우진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입안 가득 비릿한 피 맛이 맴돌았다.

 

갈비뼈 부근에 심한 타박상을 입어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폐를 찔렀다.

 

그러나 쉴 시간이 없었다.

 

안테나 하부 콘솔의 숫자는 이미 96퍼센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송출 진행률: 97%]

 

[여의도 금융 지구 희생 노드 락온: 4,120명 동기화 완료]

 

서울 상공의 붉은 격자망이 피처럼 짙어지며, 지상을 향해 거대한 파멸의 그물을 조여오고 있었다.

 

우진은 안테나 제어반으로 달려갔다.

 

키보드를 두드려 셧다운을 시도했으나, 화면에는 [접근 거부: 마스터 권한 필요]라는 차가운 에러 메시지만 뜰 뿐이었다.

 

물리적 파괴밖에는 답이 없었다.

 

우진은 쓰러진 집행관이 떨어뜨린 고출력 철갑탄 자동권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안테나와 사옥 지하를 잇는 거대한 메인 전력 공급 트랜스포머와 초고압 광케이블 연결부를 겨누었다.

 

탕!

 

탕!

 

탕!

 

철갑탄이 변압기 외벽을 뚫고 들어가며 내부의 냉각유가 뿜어져 나왔다.

 

이어 우진은 옥상 난간에 비치된 대형 소방용 도끼를 양손으로 치켜들었다.

 

관자놀이의 4센티미터 흉터가 붉게 달아오르며, 체내의 방화벽 백신 코어가 폭발적인 출력을 뿜어냈다.

 

우진의 양팔 근육 위로 은빛의 기하학적 문양이 핏줄처럼 돋아났다.

 

"끊어져라…!"

 

우진의 포효와 함께, 도끼날이 뱀처럼 꿈틀거리던 초고압 광케이블 다발을 향해 내리찍혔다.

 

콰아아앙!

 

수만 볼트의 고압 전류와 압축된 인과율 데이터가 폭발하며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섬광이 옥상 전체를 집어삼켰다.

 

도끼날을 타고 우진의 몸으로 억겁의 파멸적 엔트로피가 역류해 들어왔다.

 

우진의 입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시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 속에서, 우진의 백신 코어가 맹렬히 회전하며 그 악성 패킷들을 강제로 씹어 삼켰다.

 

쩌저적, 콰드득!

 

마침내 두꺼운 광케이블 다발이 완전히 두 동강 나며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파라볼라 안테나의 회전 날개가 불꽃을 튀기며 힘없이 멈춰 섰다.

 

동시에, 서울 상공을 뒤덮고 있던 검은 격자망에 거대한 균열이 가며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통신 두절: 궤도 송출 강제 차단]

 

[연산 에러: 금융 파이프라인 링크 유실]

 

옥상 콘솔의 모든 모니터가 일제히 백색 노이즈를 내뿜으며 꺼져 들어갔다.

 

7. 벼랑 끝의 사람들

 

여의도 증권사 건물 옥상 난간.

 

강태식은 난간 모서리에 맨발로 올라서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테헤란로만큼이나 아득한 여의도 아스팔트 도로와 장난감처럼 작은 차들이 보였다.

 

칼바람이 그의 얇은 와이셔츠를 펄럭였다.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고, 오직 '뛰어내려라'라는 차가운 명령만이 뇌간을 울리고 있었다.

 

태식이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으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팟!

 

머리 위를 짓누르던 끔찍한 압박감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정수리를 관통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검은 와이어가 팽팽하게 당겨지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튕겨 올라간 것이었다.

 

"…어?"

 

태식의 풀려 있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차가운 바람의 감촉, 발밑의 아찔한 높이,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 소리가 한꺼번에 감각을 강타했다.

 

"히익…!"

 

태식은 기겁하며 난간 안쪽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내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지?'

 

그의 머리 위에 위태롭게 떠 있던 검은 세모가 멈추더니, 칠흑빛 외피에 하얀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비록 전 재산이 날아간 절망적인 현실은 그대로였으나, 시스템이 억지로 주입하던 '자살의 강제 궤도'만큼은 끊겨 나간 것이었다.

 

아래층 객장에서도 넋을 잃고 쓰러졌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하나둘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리 위를 짓누르던 검은 실선들이 일제히 증발하듯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증권사 객장의 대형 TV 화면과 스마트폰 전산망에 정규 방송을 뚫고 긴급 라이브 속보가 강제로 팝업되었다.

 

치지직, 팟!

 

화면에 나타난 것은 단정한 정장 차림의 한서연 기자였다.

 

그녀의 뒤편으로 태성C&I 1층 중앙 방재실의 서버 랙과 불법 도청 및 조작 콘솔 화면들이 적나라하게 비치고 있었다.

 

- 긴급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저는 대한일보 특별취재팀 한서연 기자입니다.

 

오늘 오전 코스닥 시장에서 발생한 네오바이오젠의 기록적인 주가 폭락은, 기업의 펀더멘털이나 시장 논리가 아닌 특정 거대 카르텔에 의한 '인위적 전산 조작 및 사전 각본'에 의한 것임이 확인되었습니다.

 

객장 안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화면 앞으로 몰려들었다.

 

- 본 취재팀이 단독 입수한 태성C&I 전략기획실 내부 기밀 문서와 전산 로그에 따르면, 배후 세력은 AI 비서 플랫폼 '미러 큐브'를 통해 특정 종목으로 개인 투자자들을 대거 유인한 뒤, 사전에 세팅된 유령 계좌를 통해 대규모 허위 매도 폭탄을 투하하여 의도적으로 시장을 파멸로 몰아넣었습니다.

 

지금 화면에 보시는 것이 바로 그들이 작성한 '희생 노드 배정 및 강제 청산 시간표' 원본입니다.

 

화면에 넥스트 큐브의 푸른 육면체 워터마크가 찍힌 극비 문서와, 방금 전 9시 30분으로 세팅되어 있던 언론사 허위 횡령 기사 예약 송고창이 그대로 폭로되었다.

 

순간 여의도 증권가 전체가 거대한 충격과 분노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8. 비틀린 파편

 

태성C&I 빌딩 옥상.

 

끊어진 광케이블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연기 속에서, 우진은 무릎을 꿇은 채 피를 토해냈다.

 

쿨럭!

 

바닥에 붉은 핏자국이 흩뿌려졌다.

 

광대역 그리드 송출을 강제로 절단하면서 체내로 흡수한 인과율 역류의 대가는 참혹했다.

 

오른쪽 눈의 시야가 핏빛으로 물들어 흐릿했고, 관자놀이의 흉터는 뼈까지 시릴 정도로 욱신거렸다.

 

하지만 우진은 이를 악물며 벽을 짚고 일어섰다.

 

안테나는 완전히 침묵했고, 서울 상공의 사각 격자망은 찢겨 나갔다.

 

최소한 수천 명의 무고한 투자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음으로 내몰리는 파멸의 급행열차는 멈춰 세웠다.

 

치익, 치지직.

 

귀에 꽂힌 무전기에서 서연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 우진 씨…!

 

해냈어요.

 

방재실 전산망을 통해 사내외 전 언론망과 금융감독원 서버로 조작 문건을 일제히 배포했어요.

 

한국거래소에서 방금 네오바이오젠의 매매 거래를 긴급 정지시켰어요!

 

"…다행이군요."

 

우진이 갈라진 목소리로 답했다.

 

- 우진 씨, 괜찮아요?

 

목소리가 너무 안 좋아요…!

 

"괜찮습니다. 옥상 송출 라인은 완전히 끊었습니다. 이제 18층의 최원석을…"

 

우진이 말을 채 맺지 못하고 옥상 출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옥상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최원석이 아니었다.

 

쿵.

 

쿵.

 

쿵.

 

일정한 보폭, 기계처럼 절제된 발소리.

 

짙은 회색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연무를 뚫고 옥상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일체의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우진의 심장이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남자의 머리 위.

 

그곳에는 최원석의 조잡한 암흑의 프레임도, 집행관들의 3중 큐브도 아니었다.

 

완벽한 정육면체의 형태를 유지한 채, 중심에서부터 기괴한 붉은빛을 뿜어내며 천천히 역회전하고 있는 미지의 입체 도형.

 

우진의 2단계 심층 분석조차 그 내부 구조를 투과하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프로토타입 K-07."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분노도, 당혹감도 없었다.

 

마치 매일 아침 전산실의 오류 로그를 확인하는 관리자의 메마른 어조였다.

 

"하부 노드의 궤도 하나를 비틀어 분산 백업 코어를 흔들고, 금융 파이프라인의 엔트로피 배정까지 교란하다니. 강정호 박사가 심어둔 백신 코드는 실로 흥미로운 변수군요."

 

우진은 피 묻은 도끼를 고쳐 쥐며 남자를 응시했다.

 

"누구냐, 넌."

 

남자가 품속에서 은색 명함 케이스를 꺼내며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넥스트 큐브 본사 통제감사실 수석 감사관, 도진우(都鎭宇)입니다."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옥상 출입구 너머에서 서늘한 기계 구동음과 함께 서너 명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에는 기존의 화약 총기가 아닌, 푸른빛의 인과율 집속 병기가 들려 있었다.

 

도진우의 서늘한 눈동자가 우진을 꿰뚫었다.

 

"최원석 부회장은 이미 자신의 궤도를 다하고 시스템에서 영구 폐기 처리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 비정상적인 폭주 역시… 여기서 종료됩니다."

 

남자의 머리 위 붉은 입체 큐브가 날카로운 금속음을 내며 4차원 다포체 형태로 기괴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우진의 관자놀이 흉터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전율과 함께 비명을 질렀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