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채용 비리
1. 18층의 검은 침묵
태성C&I 본사 18층 대회의실 복도는 기이할 정도로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9월 초가을의 아침 햇살은 눈이 시릴 만큼 화창했으나, 그 온기는 두껍게 깔린 카펫 바닥의 한기를 조금도 걷어내지 못했다.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강우진(姜宇鎭)의 오른쪽 관자놀이 흉터가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는 듯 욱신거렸다.
'치밀어 오르는 통증의 결이 달라.'
우진은 숨을 가다듬으며 정장 옷깃 속으로 턱을 당겼다.
단순히 한두 사람의 머리 위에 뜬 도형을 관찰할 때의 자극이 아니었다.
시신경을 타고 전두엽을 짓누르는 이 묵직한 압박감은 공간 전체를 짓누르는 거대한 규격의 장막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회의실 안에는 짙은 남색 정장을 차려입은 80여 명의 청년이 긴장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양손을 단정히 무릎 위에 올린 채 허리를 곧게 펴고, 달달 외운 자기소개 문구를 곱씹으며 마른침을 삼키는 취업 준비생들이었다.
누군가는 굳은 손가락으로 다리춤을 쥐어짜고 있었고, 누군가는 창백하게 질린 입술로 연신 심호흡을 내뱉었다.
청춘의 절박함과 간절한 기대가 빼곡하게 차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우진의 망막에 비친 그들의 머리 위 풍경은 서늘하다 못해 끔찍했다.
80명.
그들 전원의 정수리 위 10센티미터 상공에 떠 있는 기하학적 형태는 일상의 백색 네모가 아니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칠흑빛의 도형, 검은 세모(△)였다.
검은 세모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일정한 속도로 불길하게 역회전하고 있었다.
그 세모의 꼭짓점마다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검은 실선 잔상이 피어올라, 천장의 에어컨 흡기구와 전산 배관 너머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전부…… 불합격으로 세팅되어 있어.'
우진은 턱관절을 강하게 깨물었다.
백색 네모는 개인의 의지와 환경이 빚어낸 안정된 일상이다.
반면 검은 세모는 외부 거대 세력의 인위적 조작과 강요에 의해 궤도가 강제로 파멸로 꺾여 들어갈 때만 나타나는 낙인이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지원자들은 면접관과 눈을 마주치기도 전에, 단 한마디의 답변을 꺼내놓기도 전에 이미 시스템에 의해 사회적 탈락자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들의 땀과 밤샘, 수년간 쌓아 올린 스펙과 이력서는 애초에 평가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우진의 뇌리에 새벽 지하 보일러실에서 서연의 단말로 해독했던 데이터 칩의 문구가 스쳐 지나갔다.
[Class-D 희생 노드 80기 할당: 태성그룹 대졸 공채 최종 면접 대상자 전원 파멸 궤도 강제 입력 완료.]
시스템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거대 카르텔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실패해야 한다.
그 파멸의 순번과 시간표를 배정받은 희생양들이 바로 이 자리에 모인 청년들이었다.
2. 미러 큐브의 족쇄
"수험번호 1047번, 이진혁 씨 계십니까?"
대기실 앞쪽에서 태성그룹 인사팀 배지를 단 진행 요원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호명했다.
벽가에 앉아 있던 20대 중반의 청년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넷!"
청년의 얼굴은 며칠 밤을 꼬박 새운 듯 거칠게 터져 있었고, 입고 있는 정장은 손목과 품이 헐렁해 형이나 아버지의 옷을 빌려 입고 온 태가 역력했다.
그가 급하게 일어서며 떨어뜨린 스마트폰 화면이 바닥에서 번쩍였다.
화면에는 푸른 육면체 큐브가 3차원으로 회전하는 아이콘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미러 큐브 AI 면접 비서: 오늘의 합격률 분석 98.4%.
면접관의 성향에 맞춘 최적의 미소와 발성을 유지하십시오.]
우진은 바닥에 떨어진 청년의 스마트폰과 그의 머리 위를 번갈아 응시했다.
청년, 이진혁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검은 세모는 다른 지원자들의 것보다 유난히 짙은 먹빛을 띠고 있었다.
그 도형 표면에는 0과 1로 이루어진 미세한 디지털 코드가 빗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진이 시야의 초점을 좁히며 2단계 심층 분석을 가동하자, 관자놀이의 흉터가 찢어질 듯 달아올랐다.
치익, 하는 환청과 함께 청년의 귓바퀴 뒤쪽 신경계와 스마트폰의 블루투스 신호가 보이지 않는 격자선으로 얽혀 있는 것이 보였다.
'알고리즘 순응도 96.8%.'
미러 큐브 앱을 깔고, 그 추천에 따라 옷을 고르고, 걸음걸이를 교정하고, 답변을 준비해 온 청년이었다.
자신의 모든 일상을 스마트폰 속 편리한 AI 시스템에 맡겨버린 결과, 그의 자유의지는 갉아먹혔고 뇌파는 시스템의 사각 격자망에 완벽히 동기화되어 있었다.
그 대가는 합격이 아니었다.
가장 다루기 쉽고, 가장 반발력이 적은 완벽한 '희생 노드'로서의 배정이었다.
"진혁아, 긴장하지 마."
대기실 의자 끝에 앉아 있던 다른 지원자가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너 스터디할 때 진짜 잘했잖아. 네가 떨어지면 여기 붙을 사람 아무도 없어."
"고맙다, 민재야. 손이 자꾸 떨려서…… 이번에 떨어지면 진짜 학자금 대출도 못 갚는데……"
이진혁은 가슴을 쥐어뜯듯 주먹을 쥐며 떨리는 다리를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진의 가슴 한구석에서 묵직한 분노가 치밀었다.
저 청년은 자신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줄 알 것이다.
면접관 앞에서 말을 더듬어서, 질문의 요지를 잘못 파악해서, 혹은 다른 뛰어난 지원자에게 밀려서 불합격 통보를 받는다고 자책할 것이다.
그 절망감이 청년의 영혼을 갉아먹고, 끝내 사회의 밑바닥으로 추락하게 만드는 검은 궤도의 시작점이 될 터였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이곳은 실력을 겨루는 시험장이 아니라, 사전에 설계된 도살장이었다.
3. 1호 면접실의 내정자
우진은 진행 요원의 눈을 피해 슬그머니 대기실 뒤편 비상계단 통로로 빠져나왔다.
가슴팍 안주머니에는 한서연이 위조해 준 태성C&I 총무부 임시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윤채린이 본사 1층 로비 인근에서 동그라미의 척력 파동을 간헐적으로 방출하며 사옥 중앙 방재실의 그리드 스캐너를 교란하고 있는 덕분에, 우진의 생체 코드는 아직 시스템에 탐지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우진은 18층 복도 벽면을 타고 조용히 걸음을 옮겨, 첫 번째 면접이 진행 중인 1호 면접실의 반투명 유리창 너머를 살폈다.
탁 트인 방 안에는 다섯 명의 면접관이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에 세 명의 지원자가 굳은 표정으로 착석해 있었다.
가운데 앉은 지원자가 방금 전 호명된 청년, 이진혁이었다.
면접관들의 정수리 위에는 무감각하고 안정된 일상을 상징하는 잿빛 네모들이 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지루하다는 듯 서류철을 건성으로 넘기며 태블릿 화면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면접관들의 정중앙에 앉은 중년 남성의 머리 위가 기괴했다.
은회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태성그룹 인사총괄 전무의 머리 위에는, 일반적인 평면 네모가 아닌 입체적인 육면체의 윤곽이 희미하게 어른거리고 있었다.
완전한 감시관의 큐브는 아니었으나, 시스템의 직접적인 통제 회선이 정수리 한가운데로 꽂혀 있는 조작의 하수인 형태였다.
"지원자 1047번 이진혁 씨."
전무가 건조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자소서를 보니 물류 데이터 최적화 알고리즘에 대해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적었더군요. 하지만 우리 태성C&I의 인프라는 그런 이상론적인 모델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의 변수 처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본인이 생각하는 기술적 한계가 뭡니까?"
시작부터 날카로운 압박이나 검증이 아니었다.
명백히 답변을 차단하고 기를 꺾기 위해 던지는 모욕적인 궤도 유도성 질문이었다.
이진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아, 그 부분은…… 실제 물류 배송 차량의 GPS 오차 데이터를 실시간 칼만 필터로 보정하여 오차 범위를 3% 이내로 줄이도록 설계했습니다. 결코 이상론에 그치지 않고 현장 실증 테스트까지……"
"됐습니다. 다음 지원자."
전무는 이진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볼펜을 딱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말을 잘랐다.
이진혁의 목울대가 격렬하게 떨렸다.
그 순간, 우진의 시야에 면접관들의 태블릿 모니터 화면이 스쳐 지나갔다.
이진혁의 평가표 상단에는 이미 붉은색 글씨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평가 결과: 불가(D) - 사유: 조직 부적합 및 엔트로피 과다 노드]
면접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전산망에 고정된 결과값.
그때였다.
이진혁의 옆자리, 1048번 명찰을 달고 있는 다른 남성 지원자가 입을 열었다.
"태성C&I의 차세대 물류망은 중앙 집중형 데이터 센터와의 실시간 동기화가 핵심입니다. 저는 대학 시절 넥스트 큐브의 데이터 표준화 프로토콜을 이수하며 시스템 최적화 규격을 연구해 왔습니다."
그 남자의 정수리를 본 순간 우진의 동공이 잘게 진동했다.
남자의 머리 위에는 검은 세모가 없었다.
그의 정수리 위에는 칠흑처럼 어두우면서도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는 순도 높은 '검은 네모(■)'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미세한 떨림도, 흔들림도 없는 완전한 정지 상태.
그것은 지하철 2호선 터널에서 우진을 포위했던 무장 집행 조직원들의 머리 위에 떠 있던 도형과 정확히 일치하는 형태였다.
자유의지가 완전히 거세된 채, 시스템의 코드를 그대로 수신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기계화된 인간의 표식이었다.
4. 규격화된 인간
'저 자는 지원자가 아니야.'
우진은 주먹을 쥐었다.
1048번 지원자의 눈동자에는 긴장감도, 합격을 향한 간절함도 없었다.
초점 없는 유리구슬 같은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막힘없이 정해진 문장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렇군요. 지원자 1048번 박도현 씨의 견해가 우리 태성그룹이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물류 표준과 정확히 부합합니다."
인사총괄 전무의 입가에 비로소 기계적인 미소가 걸렸다.
전무가 쥐고 있는 태블릿 화면에는 이미 초록색 합격 인장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적격(Pass) - Node ID: NC-Sync-8812 / 넥스트 큐브 데이터 적합자]
'내정자.'
그것도 단순한 사내 유력자의 청탁이나 낙하산 인사가 아니었다.
넥스트 큐브와 네모 프로젝트가 도시의 기업망을 틀어쥐기 위해, 시스템의 통제 코드를 완벽하게 수신할 수 있는 규격화된 인간을 조직 내 핵심 혈맥에 심어 넣는 과정이었다.
이 면접장에 모인 80명의 청년은 들러리조차 되지 못했다.
그들은 저 검은 네모의 인형들을 합격시키기 위한 정당성의 구색이자, 시스템이 요구하는 파멸의 총량을 대신 짊어지고 바닥으로 떨어져야 할 제물들이었다.
이진혁은 멍한 눈으로 옆자리의 박도현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밤을 새워가며 만든 포트폴리오보다 훨씬 조잡하고 천편일률적인 답변이었음에도, 면접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이진혁의 머리 위 검은 세모가 더욱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꼭짓점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독기가 청년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듯했다.
'안 돼.'
우진은 본능적으로 복도 벽에 등을 밀착시켰다.
이진혁의 어깨가 눈에 띄게 처지며, 그의 눈동자에서 삶을 지탱하던 마지막 생기가 증발하고 있었다.
패배감과 절망.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부술 수 없는 거대한 벽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찾아오는 영혼의 붕괴였다.
저 상태로 면접장을 나가 불합격 통보를 받는 순간, 청년의 검은 세모는 영구히 고착화되어 그를 빚더미와 고립, 끝없는 우울의 수렁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시스템의 궤도 강제 덮어쓰기 알고리즘이 가동되어, 김 씨처럼 뇌출혈로 쓰러지거나 지하철 선로로 몸을 던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우진의 귓가에 무전기 너머 한서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어폰을 타고 흘러드는 서연의 음성은 극도로 낮고 떨리고 있었다.
"우진 씨, 들려요? 나 지금 1층 중앙 방재실 전산망 백도어에 접속했어요. 채린이가 로비에서 그리드 노이즈를 일으켜준 덕분에 사내 인사 DB를 긁어냈는데…… 상상 이상이에요."
"서연 씨, 1호 면접실 확인했습니다. 합격자가 이미 시스템 코드로 내정되어 있어요."
"맞아요. 80명 전원 불합격 처리는 이미 어젯밤 11시에 전산 결재가 끝난 상태였어요. 최종 합격자 명단에 올라 있는 5명은 전부 넥스트 큐브의 '미러 큐브' 순응도 100%를 기록한 데이터 동기화 개체들이에요. 태성그룹 신규 전산망과 물류 보안망을 통째로 넘겨받을 관리자 계정으로 심는 거예요!"
서연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리고…… 우진 씨, 조심해요. 18층 복도 끝 임원실에 누군가 있어요. 역삼역 코어가 무너지면서 분산 백업 코어를 원격 가동한 인물이에요. 사내 IP 접속 위치가 바로 그 임원실로 잡혀요!"
5. 파열하는 세모
"알겠습니다. 서연 씨는 예정대로 1층 로비 대형 스크린과 사내 방송망 해킹 준비를 끝내세요."
"알았어요. 신호만 주면 바로 태성그룹 전 사옥과 테헤란로 전광판으로 이 조작 문건을 송출할게요."
통신을 끊은 우진은 복도 유리창을 다시 응시했다.
면접실 안에서는 마지막 순서인 세 번째 지원자의 답변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역시 머리 위에 위태로운 검은 세모를 띄운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면접관들의 표정에는 조소와 피로감이 가득했다.
이제 1분 뒤면 면접이 종료되고, 저 청년들은 절망을 한 아름 안은 채 문밖으로 걸어 나올 것이다.
그리고 다음 조의 희생양들이 다시 저 도살장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막아야 해.'
우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무작정 문을 박차고 들어가 고함을 치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었다.
그 순간 경비 보안 요원들이 들이닥칠 것이고, 중앙 코어의 지령을 받는 집행 세력이 개입해 지원자들을 현행범 난동의 공범이나 피해자로 얽어매어 궤도를 더욱 참혹하게 덮어써 버릴 것이다.
게다가 인과율 보존 법칙.
과거 강남역에서 어린아이를 구했을 때, 갈 곳을 잃은 파멸적 에너지가 튕겨 나가 무고한 청년의 부친에게 크레인 참사로 전이되었던 기억이 우진의 뇌리를 차갑게 스쳤다.
한 사람의 궤도를 억지로 꺾으면, 시스템은 총량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타인의 궤도를 부숴버린다.
'그렇다면 국소적인 물리력으로 세모를 네모로 바꾸는 게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논리적 모순을 유도해야 해.'
우진은 아버지 강정호가 남긴 연구 노트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시스템의 사각 격자망은 완벽한 예측을 전제로 한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 즉 시스템의 규칙 내부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충돌(Data Collision)이야말로 격자를 스스로 붕괴시키는 열쇠다.]
우진의 시선이 면접관들의 책상 위에 놓인 태블릿과 연결된 18층 로컬 네트워크 라우터로 향했다.
그리고 면접관들 뒤편, 대형 프레젠테이션 스크린에 띄워진 태성C&I 신규 물류 데이터 시스템 구성도가 눈에 들어왔다.
저들이 내정자로 앉혀둔 1048번 박도현.
그의 머리 위에 뜬 검은 네모는 시스템의 명령을 0.3초의 지연 시간을 두고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단말이었다.
자유의지가 없기에 돌발적인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
우진은 양복 주머니에서 윤채린이 건네주었던 작은 금속 칩을 꺼내 들었다.
윤 연구원의 데이터 칩에서 복사해 둔, 넥스트 큐브의 고유 프로토콜 역위상 코드였다.
우진은 복도 천장의 점검구를 슬그머니 밀어 올렸다.
먼지가 내려앉는 배관 틈새로 손을 뻗어, 1호 면접실로 직결되는 통신 광케이블 분기점을 찾아냈다.
손가락 끝으로 케이블 피복을 벗겨내고 금속 칩의 접점을 맞물리는 순간, 우진의 관자놀이 흉터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찌릿하는 전류와 함께 우진의 망막에 푸른빛의 궤적선들이 쏟아져 내렸다.
2단계 심층 능력의 각성 상태인 '변화 감지'.
면접실 안의 시간 축이 우진의 시야 속에서 미세하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0.3초 뒤.
면접관 전무가 태블릿의 '면접 종료' 버튼을 누르려 손가락을 뻗는 궤적이 반투명한 푸른 잔상으로 허공에 그려졌다.
그보다 0.1초 앞선 순간, 우진은 광케이블을 통해 역위상 패킷을 면접실 라우터로 밀어 넣었다.
6. 전복된 각본
지지직!
면접실 벽면에 걸려 있던 85인치 대형 디스플레이가 거칠게 점멸했다.
"음? 스크린이 왜 이러지?"
전무가 손가락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화면 가득 떠 있던 태성C&I의 홍보 영상이 순식간에 깨져나가며, 푸른색 바탕의 기괴한 시스템 코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면접관들의 태블릿 화면이 제멋대로 깜빡거리며 오류 경고창을 띄웠다.
[경고: 외부 프로토콜 충돌 발생 / Core Code: OMEGA-Collision]
면접관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전산실에 연락해 봐!"
"태블릿이 안 먹힙니다!"
그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스크린 한가운데에 거대한 텍스트 창이 강제로 팝업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1048번 지원자 박도현의 정수리에 박혀 있는 통제 코드와 정확히 동기화된 시스템 질의어였다.
[시스템 긴급 질의: 태성C&I 차세대 물류망의 암호화 키를 파기하고 상위 코어로 데이터를 전송하시겠습니까?
(Y/N)]
순간, 1048번 박도현의 머리 위 검은 네모가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일체의 흔들림도 없던 기계적 도형이 예측하지 못한 시스템의 돌발 호출 신호를 수신하자, 그의 신경계에 심각한 병목 현상이 발생한 것이었다.
박도현의 눈동자가 허공을 맴돌며 기괴하게 뒤틀렸다.
그는 면접관들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전송을 승인합니다. 넥스트 큐브 코어 ID 8812, 보안 프로토콜을 해제하고 사내 소스코드를 상위 노드로 이관합니다."
박도현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면접 답변이 아니었다.
시스템의 꼭두각시로서 뇌간에 각인되어 있던 기계적 이행 명령이었다.
면접관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뭐, 뭐라고? 지원자,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소스코드 이관이라니? 저 친구 지금 우리 회사 기밀 프로토콜을 어떻게 알고 저러는 거야?"
박도현은 면접관들의 외침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의 머리 위 검은 네모에서 불꽃 같은 칠흑의 노이즈가 튀어 올랐다.
중앙 코어의 통제가 차단된 상태에서 국소적인 역위상 패킷을 수신한 결과, 인형의 회로가 쇼트를 일으킨 것이었다.
박도현은 비틀거리며 책상을 짚더니, 입가에 침을 흘리며 똑같은 말을 기계처럼 반복하기 시작했다.
"데이터 동기화율 100%. 희생 노드의 반발을 억제하고…… 억제하고……"
"저, 저자 끌어내! 당장 보안 요원 불러!"
전무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우진은 숨을 죽인 채 이진혁을 바라보았다.
이진혁의 머리 위에 떠 있던 검은 세모가 멈추어 서 있었다.
청년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광경을 똑똑히 목도하고 있었다.
자신을 짓누르고, 자신을 무능력자로 낙인찍으려 했던 그 거대하고 완벽해 보였던 '합격자'의 실체.
그것이 실력자가 아니라, 정체불명의 악성 프로그램을 읊조리는 망가진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알고리즘의 신화가 깨졌어.'
우진은 확신했다.
미러 큐브가 심어놓은 절대적인 패배감, 시스템이 강요한 자책의 굴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진혁의 눈빛에 서려 있던 죽은 잿빛이 걷히고, 당혹감과 함께 억눌려 있던 인간적인 의문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었어.'
청년의 마음속에서 터져 나온 무언의 외침이 공기를 진동시켰다.
그 찰나, 이진혁의 머리 위에서 불길하게 회전하던 검은 세모의 표면에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미세한 균열이 발생했다.
새까만 외피가 조각나며 떨어져 나가더니, 그 틈새로 눈이 시리도록 투명한 백색의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외부의 강제된 조작(검은색)을 당사자의 자유의지와 진실에 대한 자각이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세모의 날카로운 세 꼭짓점이 진동하며 바깥으로 벌어졌다.
파멸을 향해 치닫던 각도가 서서히 날카로운 상승의 각도를 세우며 찬란한 백색 세모의 벡터를 형성하려 꿈틀거렸다.
그러나 시스템의 억압을 뚫고 온전한 백색 세모로 폭발하기에는 아직 인과율의 에너지가 부족했다.
시스템이 덮어씌운 불합격의 각본은 여전히 전산망에 남아 있었고, 면접실 문밖에는 무장한 사옥 보안 요원들이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7. 문의 저편
우진은 천장 배관에서 손을 떼고 복도 바닥으로 조용히 내려섰다.
관자놀이의 통증이 뼛속까지 시려왔지만, 입가에는 차가운 호흡이 번졌다.
첫 번째 균열을 냈다.
하지만 이것은 국소적인 혼란에 불과했다.
18층 대기실에 남아 있는 80명의 청년 전원의 머리 위에 뜬 검은 세모를 지워내지 못한다면, 저들의 삶은 오늘 이 빌딩을 나서는 순간부터 서서히 파괴될 것이다.
그리고 저 망가진 꼭두각시 박도현을 조종하고, 전산망을 통해 채용 비리와 인생 궤도 조작을 총괄 지휘하는 배후의 손길.
우진의 고개가 18층 복도 맨 끝, 굳게 닫힌 중역실의 육중한 체리목 문을 향했다.
문패에는 [전략기획실 부회장실]이라는 금색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두꺼운 방음문 틈새로, 일반인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기류가 뱀처럼 기어 나오고 있었다.
우진이 2단계 심층 분석의 시선을 던지자, 부회장실 천장 허공을 뚫고 솟구쳐 있는 거대한 검은 통제선의 다발이 보였다.
그것은 일개 감시관의 꼭두각시 줄 따위가 아니었다.
태성C&I 빌딩 옥상의 대형 위성 송수신 안테나를 거쳐, 서울 상공의 보이지 않는 전산 격자망으로 직결된 초고압 궤도 송출 라인이었다.
그곳에 분산 백업 코어를 쥐고 있는 자가 있었다.
서지훈이 붕괴하는 지하 코어에서 언급했던, 도시의 기업과 금융을 사각 틀로 주무르는 진짜 총괄 집행관.
쿵, 쿵, 쿵.
복도 반대편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3차원 검은 육면체의 그림자를 드리운 특수 경비 요원들이 18층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18층 전 구역 차단! 미등록 오염 신호 K-07을 포착했다!"
차갑게 울려 퍼지는 기계음.
우진은 주머니 속에서 아버지의 유품 노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이곳에서 청년들의 빼앗긴 궤도를 되찾고, 사각의 감옥을 부수지 못한다면 아버지가 목숨을 바쳐 열어준 길은 다시 닫히고 만다.
우진은 뒤를 돌아보는 대신, 복도 끝 부회장실의 문을 향해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