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할 용기
1. 옹이진 호두나무와 먹줄
이른 아침의 햇살이 상도동 147번지 작업실의 두꺼운 방범 유리창을 비스듬히 통과하며 작업대 위에 길쭉한 금빛 사선을 그렸다.
먼지 하나조차 고요하게 유영하는 공기 속에서 강우진은 깊고 느린 숨을 들이마셨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진한 호두나무 원목의 향과 아마인유의 쌉싸름한 냄새가 온몸의 감각을 부드럽게 깨웠다.
과거 시야를 어지럽히던 푸른색 궤적 잔상도, 관자놀이를 쪼개버릴 것 같던 송곳 같은 편두통도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눈을 깜빡여도 허공에는 오직 투명하고 정직한 아침 공기만이 가득했다.
우진은 작업대 위에 비스듬히 눕혀 놓은 두께 60밀리미터짜리 호두나무 판재 표면에 가만히 손바닥을 얹었다.
나무껍질 부근의 거친 결과 심재 쪽의 짙은 갈색 물결이 교차하는 지점에 손바닥만 한 옹이가 둥글게 박혀 있었다.
기성 가구 공장이라면 결함이라며 진작에 베어내거나 파쇄기로 넘겼을 자리였다.
나무가 자라나는 수십 년 동안 거센 바람에 나뭇가지가 찢겨 나가고, 그 상처를 스스로 메우기 위해 진액을 뿜어내며 굳어진 흔적.
나무의 흉터였다.
"상처가 없는 나무는 없지."
우진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손끝으로 옹이의 단단하고 불규칙한 요철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에 닿았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4센티미터의 희미한 수술 흉터.
한때는 시스템에 의해 강제로 박혔던 칩의 흔적이자 지옥 같은 두통의 발원지였지만, 이제는 자신이 살아남아 온전한 인간으로 서 있음을 증명하는 삶의 옹이였다.
우진은 벽돌 모양의 먹통을 집어 들었다.
검은 먹물을 듬뿍 머금은 무명실을 조심스럽게 뽑아 올려 호두나무 판재의 한쪽 모퉁이에 핀을 박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먹줄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 공중으로 살짝 들어 올렸다가 튕겼다.
탁.
맑고 건조한 파열음과 함께 나뭇결 위로 한 줄기 정직한 검은 먹선이 길게 그어졌다.
기계가 레이저로 그어낸 오차 없는 절대 좌표가 아니었다.
사람의 손등에 솟은 핏줄의 박동과 호흡의 떨림이 고스란히 담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인간의 선이었다.
이번 대한민국 친환경 가구 디자인 공모전의 출품 마감은 정확히 3일 뒤였다.
정해진 규격과 대량 생산에 맞춘 반듯한 박스형 식탁 대신, 나무 본연의 뒤틀림과 상처를 그대로 품어 안는 '비대칭 다이닝 테이블'.
우진은 먹선 바깥으로 삐져나온 거친 나뭇결을 정리하기 위해 대패를 양손에 쥐었다.
밀어낼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얇은 대뱃밥이 나비 날개처럼 둥글게 말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등줄기를 타고 기분 좋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공모전 심사위원들이 이 거친 옹이를 아름다움으로 볼지, 아니면 규격 미달의 흠집으로 치부할지는 그들의 몫이었다.
내일을 모른다는 사실이,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불확실성이 우진의 가슴을 오히려 청량한 바람처럼 시원하게 관통했다.
2. 실패의 맛과 차가운 맥주
딸랑.
작업실 문에 달린 작은 황동 풍경이 경쾌한 울림을 냈다.
우진이 대패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자, 문틈으로 시원한 바깥바람과 함께 익숙한 웃음소리가 밀려들었다.
"우진 씨, 아직도 사포질 안 끝났어요?"
연청색 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인 한서연이 손에 묵직한 비닐봉지를 든 채 성큼성큼 들어섰다.
그녀의 머리칼 끝에 묻어난 싱그러운 초여름 햇살이 작업실 바닥에 흩뿌려진 대뱃밥 위로 반짝였다.
서연은 한 손으로 땀을 훔치며 작업대 한구석에 비닐봉지를 내려놓았다.
달그락거리는 유리병 소리와 함께 캔맥주 여섯 개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매콤한 닭강정 냄새가 작업실 안을 가득 메웠다.
"기자님 취재는 다 끝났습니까? 마감 치고 오신 분 얼굴이 너무 밝은데요."
우진이 면장갑을 벗어 작업대 위에 얹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서연은 턱을 살짝 치켜들며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당연하죠. 넥스트 큐브 청산 절차랑 금융감독원 불법 자금 환수 기사, 데스크에서 단 한 글자도 수정 안 하고 1면에 그대로 실렸거든요. 이제 펜으로 싸우는 일은 얼추 일단락됐어요. 그래서 오늘은 진짜 목수님 퇴근 시간 맞춰서 축하 파티 해주려고 온 건데."
서연의 시선이 작업실 중앙에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선 완성된 원목 테이블로 향했다.
우진이 일주일 밤낮을 매달려 완성한 호두나무 식탁이었다.
직사각형의 천편일률적인 모서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무가 자라난 원래의 곡선을 살려 한쪽은 완만하게 굽어 있었고, 상판 한가운데 둥근 옹이 부분은 맑은 천연 수지로 메워 나무의 흉터를 보석처럼 투명하게 드러나게 마감했다.
손바닥으로 상판을 쓸어내리던 서연의 입가에 감탄이 번졌다.
"와…… 진짜 근사하다. 차갑고 각진 느낌이 하나도 없어요. 사람 냄새가 나요, 우진 씨."
"옹이가 너무 도드라져서 심사위원들이 결함이라고 떨어뜨릴지도 모릅니다."
우진이 캔맥주 하나를 따서 서연에게 건네며 덤덤하게 말했다.
치익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솟아올랐다.
서연은 맥주 캔을 받아 들고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떨어뜨리면 그 양반들 안목이 덜 떨어진 거죠. 만약 탈락하면요, 이 식탁 그냥 저한테 파세요. 제 방 거실에 딱 들여놓고 매일 여기서 원고 쓸 테니까."
"기자님 거실에 놓기엔 너무 큽니다. 거실 문짝 다 뜯어내야 들어갈걸요."
"창문 뜯으면 되죠, 뭐. 지우개로 벽도 허무는 사람인데 창문틀 하나 못 뜯겠어요?"
서연이 장난스럽게 맥주 캔을 부딪쳐 왔다.
챙.
맑은 금속성 마찰음이 작업실 안에 울려 퍼졌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차가운 탄산과 쌉싸름한 홉의 향이 하루의 고단함을 단숨에 씻어냈다.
두 사람은 작업대 옆 간이 벤치에 나란히 걸터앉아 닭강정을 집어 먹었다.
벽면에 걸린 아날로그 시계 초침 소리가 째깍째깍 규칙적으로 흘러갔다.
과거 태성C&I 시절, 우진에게 시계 초침 소리는 코앞으로 다가오는 파멸의 카운트다운이자 공포의 전조였다.
하지만 지금의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축복이었다.
"오늘 자정에 공모전 1차 심사 결과 발표 난다고 했죠?"
서연이 스마트폰 시계를 흘깃 보며 물었다.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 홈페이지에 공지된다더군요. 1차 서류랑 포트폴리오 통과해야 다음 주에 실물 가구 들고 본선 전시장에 갈 수 있습니다."
"떨려요?"
서연이 우진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우진은 잠시 생각에 잠기듯 맥주 캔을 만지작거리다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떨린다기보다는…… 궁금합니다."
"궁금하다고요?"
"예전에는 결과를 이미 알고 살았잖아요. 3분 뒤에 누가 죽을지, 저 사람이 언제 파멸할지, 내 선택이 어떤 사고를 부를지 머리 위에 뜨는 도형으로 다 보였으니까요. 그땐 결과가 너무 확실해서 숨이 막혔습니다. 도망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궤도 안에 갇혀서."
우진이 벤치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회벽으로 마감된 평범한 천장.
그곳에는 더 이상 허공을 꿰뚫고 내려오는 칠흑 같은 꼭두각시 줄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내가 만든 이 식탁이 1등을 할지, 아니면 예선에서 가차 없이 탈락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게 참…… 사람을 살아있게 만듭니다. 결과를 모르니까 설레고, 결과를 모르니까 최선을 다하게 돼요."
서연이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우진을 바라보았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뜻이네요."
"실패하면 속은 쓰리겠죠. 공들여 깎은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예전처럼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니까요. 다시 깎으면 됩니다. 나무는 세상에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서연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남은 맥주 캔을 들어 올렸다.
"아주 훌륭한 목수의 철학이네요. 자, 그럼 그 불확실한 결과를 기다리며 건배합시다. 떨어지든 붙든, 강우진 목수님의 첫 번째 도전을 위해서."
"건배."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상도동의 어둑해진 골목길로 따뜻하게 번져 나갔다.
3. 붉은 글씨와 유쾌한 파안
자정이 가까워지자 작업실 안에는 미세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는 '대한민국 목공예가협회 신진 가구 디자인 공모전 심사 결과 발표' 창이 띄워져 있었다.
서연은 마우스 커서를 새로고침 버튼 위에 올려두고 연신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59분 50초…… 55초…… 12시 정각 됐어요!"
서연이 떨리는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클릭했다.
화면이 하얗게 점멸하더니 수험번호와 접수자 명단이 담긴 PDF 파일 링크가 새로 올라왔다.
서연이 링크를 열고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다.
우진의 접수 번호는 047번이었다.
041번…… 044번…… 046번…….
스크롤이 멈췄다.
046번 다음 줄에 적힌 숫자는 049번이었다.
047번은 존재하지 않았다.
명단 하단에 작은 글씨로 적힌 안내 문구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합격자에 한하여 실물 작품 반입 일정 개별 통보.
명단에 없는 지원자는 심사 기준 미달로 불합격 처리되었습니다.]
작업실 안에 일순간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니터 불빛을 받고 선 서연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화면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다시 한번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어? 이상하다…… 왜 없지? 오타인가? 우진 씨, 접수 번호 047번 맞죠? 호두나무 비대칭 다이닝 테이블, 접수 완료 문자 받았잖아요."
서연의 목소리에 당혹감과 미안함이 뒤섞여 떨려 나왔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낙선한 것처럼 입술을 깨물며 우진의 눈치를 살폈다.
우진이 모니터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화면 속 텅 빈 047번의 공백.
그 옆에 첨부된 심사평 요약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우진이 마우스를 쥐고 심사평을 클릭했다.
[신진 부문 총평: 전반적으로 창의적인 시도가 돋보였으나, 일부 출품작의 경우 원목의 심각한 결함(대형 옹이 및 변재 뒤틀림)을 그대로 노출하여 상업적 내구성과 규격 표준화 측면에서 기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함.
예술성과 실용 가구의 경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음.]
'상업적 내구성과 규격 표준화 측면에서 기본 요건 미달.'
과거 넥스트 큐브의 사각 격자 알고리즘이 읊조리던 것과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는 문장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반듯하고 규격화된 네모를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다.
나무 본연의 상처를 드러낸 우진의 식탁은, 심사위원들의 정해진 채점표 속 네모난 칸에 들어맞지 않았던 것이다.
서연이 조심스럽게 우진의 팔을 잡았다.
"우진 씨…… 저 사람들 완전히 꼰대들이에요. 규격 표준화라니, 공장에서 찍어내는 합판 가구 뽑는 것도 아니고 공모전에서 저런 소리를 해요? 내가 내일 협회에 전화해서 심사 기준 정보공개 청구할게요. 이건 명백히……."
그때였다.
"푸하하."
나직하지만 참을 수 없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우진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
서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진을 바라보았다.
우진은 헛웃음을 짓는 것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배를 잡고 어깨를 들썩이며 시원하게 웃어 젖히고 있었다.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힐 만큼 유쾌하고 거침없는 파안대소였다.
"우진 씨? 왜 웃어요? 충격받아서 그래요?"
"아닙니다, 서연 씨. 충격받은 게 아니라…… 너무 완벽해서 그럽니다."
우진이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서연을 마주 보았다.
그의 얼굴 어디에도 절망이나 패배자의 그늘은 없었다.
오히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앉은 사람처럼 맑고 투명했다.
"탈락했잖아요! 그것도 결함 있는 나무를 썼다고 대놓고 깎아내렸는데, 이게 왜 완벽해요?"
"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떨어졌잖아요. 그게 너무 좋습니다."
우진이 작업대 위에 놓인 큼직한 옹이진 호두나무 테이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 머리 위에 시커먼 세모가 떴을 겁니다. '공모전 탈락, 인생의 낙오, 우울증 궤도 진입' 같은 거창하고 끔찍한 파멸의 각본이 강제로 덧씌워졌겠죠. 시스템은 내가 실패하는 꼴을 가만히 두지 않고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었을 테니까요."
우진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런데 보세요. 난 떨어졌는데, 머리 위에 아무것도 안 뜹니다. 벼락이 치지도 않고, 심장이 멎지도 않아요. 그냥…… 떨어진 겁니다. 내 식탁이 그 사람들의 규격에 안 맞았을 뿐이에요."
서연은 멍하니 우진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가에 미소를 번져 냈다.
우진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온전히 이해한 까닭이었다.
"실패가…… 그냥 실패로 끝나는 거군요."
"맞습니다. 실패는 파멸이 아니라, 그냥 내가 시도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틀릴 수도 있고, 거절당할 수도 있는 자유. 이게 진짜 우리가 되찾은 세상이잖아요."
우진이 캔맥주 하나를 새로 따서 서연의 빈 캔에 툭 부딪쳤다.
"축하해 주십시오, 서연 씨. 저 오늘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주 완벽하고 정직하게 실패했습니다!"
서연이 참지 못하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밤 깊은 작업실 안을 환하게 밝혔다.
4. 헌책방의 삐걱거리는 의자
이튿날 오후, 유월의 초여름 햇살이 쏟아지는 상도동 골목길은 평화로운 활기로 가득했다.
우진은 멜빵 달린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고 낡은 공구 가방을 어깨에 멘 채 언덕길을 내려갔다.
전날 밤의 공모전 낙선은 우진의 발걸음에 티끌만 한 무게도 더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슴 안쪽이 텅 빈 도화지처럼 가벼워져 발걸음마다 경쾌한 리듬이 실렸다.
골목 어귀에 위치한 헌책방 겸 북카페 '모퉁이 서재'의 유리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달랑거리는 풍경 소리와 함께 우진이 안으로 들어서자, 카운터 뒤에서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책장을 넘기던 예순 살의 여사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머, 강 목수님! 바쁠 텐데 진짜로 와줬네."
사장은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안에는 손때 묻은 헌책 냄새와 은은한 원두 향이 부드럽게 섞여 감돌고 있었다.
창가 쪽 낡은 2인용 목재 원형 테이블에서는 여대생 둘이 나란히 앉아 공책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고, 구석진 서가 앞에서는 등산복 차림의 노인이 시집 한 권을 집어 들고 서 있었다.
"어제 지나가다 보니까 창가 쪽 원목 의자 다리가 심하게 흔들리더라고요. 손님이 앉았다가 넘어지면 큰일 나니까요."
우진이 공구 가방을 내려놓으며 삐걱거리던 자작나무 의자를 손으로 살짝 흔들어 보였다.
의자 다리와 좌판을 연결하는 장부 맞춤 부위가 오랜 세월에 헐거워져 2센티미터가량 유격이 생겨 있었다.
앉을 때마다 끼익거리는 비명이 날 만했다.
사장이 미안한 표정으로 따뜻한 결명자차 한 잔을 내밀었다.
"그렇잖아도 버리고 새로 싼 플라스틱 의자나 들여놓을까 고민하던 참이었어요. 십 년 넘게 손님들 엉덩이 받쳐주던 녀석이라 정이 들어서 버리진 못하고 구석에 치워뒀었는데…… 고칠 수 있겠어요?"
"나무는 부러진 게 아니면 다 고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세월이 타서 결이 단단해졌네요."
우진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의자를 거꾸로 뒤집었다.
공구 가방에서 가죽 망치와 목공용 수성 접착제, 그리고 미리 깎아온 얇은 참나무 쐐기 조각을 꺼냈다.
헐거워진 결합부에 접착제를 꼼꼼하게 밀어 넣고, 쐐기를 틈새에 단단히 박아 넣은 뒤 삐져나온 접착제를 젖은 헝겊으로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탁, 탁, 탁.
작업실 안에서 울리던 거친 대패질 소리와는 다른, 조심스럽고 다정한 망치질 소리가 헌책방 안에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책장을 넘기던 손님들이 소리에 방해받기는커녕, 편안한 표정으로 우진의 손놀림을 흘깃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책방 사장이 차를 홀짝이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참, 강 목수님. 지난번에 서연 아가씨가 와서 자랑하더라고요. 이번에 전국 가구 공모전에 멋진 식탁 냈다면서요? 결과는 어떻게 됐어요? 당연히 붙었겠죠?"
망치질을 하던 우진의 손이 멈칫하지도 않았다.
그는 쐐기 끝을 끌로 깔끔하게 잘라내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떨어졌습니다, 사장님."
"어머나…… 세상에. 떨어진 사람 목소리가 왜 그렇게 씩씩해? 속도 안 상해요? 서연 씨가 사진 보여줬을 때 난 무슨 궁궐에 들어가는 보물인 줄 알았는데."
사장이 제 일처럼 눈을 크게 뜨며 안타까워했다.
우진은 고정 클램프를 조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심사위원분들이 보시기엔 너무 제멋대로 생긴 나무였나 봅니다. 반듯하지 않고 옹이가 너무 크다고 기준 미달이래요."
"어유, 맹추 같은 양반들! 나무에 옹이 있는 게 당연하지, 플라스틱으로 찍어낸 것처럼 반듯한 게 어디가 좋다고 그래? 나처럼 늙어서 주름진 사람들은 서러워서 살겠나."
사장의 구수한 타박에 창가에 앉아 있던 여대생들이 큭큭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시집을 고르던 노인도 고개를 돌려 우진을 보며 껄껄 웃었다.
"목수 양반, 낙심할 거 하나 없어. 나도 젊었을 적에 사법시험 열두 번 떨어지고 결국 동사무소 서기로 평생 밥 먹고 살았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낙방이었어. 실패해 봐야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알게 되는 법이지."
"영감님 말씀이 백번 맞습니다. 저도 이번에 떨어져 보고 알았습니다. 제가 진짜 만들고 싶었던 건 상장 받는 완벽한 가구가 아니라, 사람들이 편하게 기대앉을 수 있는 정직한 나무였다는 걸요."
우진이 클램프를 풀고 의자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그 자작나무 의자에 털썩 걸터앉아 보았다.
더 이상 삐걱거리는 소리도, 흔들리는 유격도 없었다.
오랜 세월 손님들의 온기를 머금은 낡은 나무가 단단하고 묵직하게 우진의 몸을 받쳐주었다.
우진의 가슴 한구석에서 뭉클한 전율이 올라왔다.
네모도, 세모도, 동그라미도 없는 세상.
누구도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실패한 자를 낙오자로 낙인찍지 않으며, 서로의 흠집과 모난 구석을 쐐기처럼 메워주며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들의 공간.
이 소박한 온기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이 그 지옥 같은 사각 격자망을 찢어발겼던 것이다.
"다 고쳤습니다, 사장님. 앞으로 십 년은 끄떡없을 겁니다."
"고마워요, 강 목수님. 오늘 저녁에 복덕방 할머니랑 슈퍼 사장님이랑 다 같이 우리 집에서 칼국수 끓여 먹기로 했는데, 꼭 와요. 거절하면 안 돼!"
"예, 일 끝내고 꼭 가겠습니다."
우진이 공구를 챙겨 들고 일어서며 고개를 숙였다.
헌책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그의 등 뒤로, 방금 수리한 의자에 손님이 털썩 앉으며 내쉬는 편안한 한숨 소리가 음악처럼 따라붙었다.
5. 상처를 품은 벤치
상도동 작업실로 돌아온 우진은 작업복을 갈아입지 않고 곧장 작업대로 다가갔다.
공모전 심사평이 적힌 인쇄물이 모니터 옆에 뒹굴고 있었다.
[규격 표준화 측면에서 기본 요건 충족 미달.]
우진은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대신, 벼루 옆에 놓인 작은 자석으로 작업대 앞 철판 벽면에 단단히 붙여두었다.
부끄러운 오점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 숨 쉬며 세상과 부딪쳤음을 증명하는 훈장이었다.
우진은 연필을 쥐고 백지 한 장을 새로 펼쳤다.
스케치북 위로 사각거리는 연필 선이 거침없이 뻗어 나갔다.
이번에는 식탁이 아니었다.
작업실 앞 언덕길, 오가는 이웃들이 잠시 땀을 식히고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널찍한 '평상형 원목 벤치'.
완벽하게 다듬어진 직사각형이 아니라, 나뭇결의 자연스러운 곡선을 살리고 한쪽 귀퉁이에는 옹이가 그대로 드러나 꽃병이나 찻잔을 올려놓을 수 있는 비대칭의 쉼터였다.
실패를 경험했기에 비로소 그릴 수 있는, 한층 더 자유롭고 솔직한 형태였다.
탕, 탕.
그때 작업실 밖에서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노란색 야구 모자를 삐딱하게 쓴 꼬마 준우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유리창에 코를 납작하게 대고 서 있었다.
손에는 알록달록한 수제 바람개비가 들려 있었다.
우진이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준우 왔구나. 바람개비 잘 돌아가니?"
"아저씨! 안녕하세요!"
준우가 씩씩하게 인사하며 작업실 안으로 폴짝 뛰어 들어왔다.
아이의 눈동자가 작업실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호두나무 식탁을 향했다.
준우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식탁 한가운데 박힌 투명한 옹이 부분을 작은 손가락으로 콕 찔러보았다.
"우와…… 아저씨, 이거 나무에 난 배꼽이에요?"
배꼽이라니.
우진은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혔다.
"배꼽은 아니고, 나무가 자라다가 다쳤던 상처란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가지가 뚝 부러졌거든."
"그럼 나무가 아팠겠네요? 피 났어요?"
"피는 안 나지만 많이 아팠겠지. 그런데 나무는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를 더 단단하게 채웠어. 그래서 이렇게 예쁜 동그라미가 된 거야. 다른 데보다 훨씬 단단하단다."
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으로 옹이 주변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꼭 보석 같아요. 아저씨, 이 식탁 다른 나라 임금님한테 파는 거예요?"
"아니, 시험에 떨어졌어. 반듯하지 않다고 빵점 맞았단다."
우진이 쾌활하게 말하자, 준우가 눈을 깜빡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선생님이 나빴네! 이렇게 멋진데 왜 빵점을 줘요? 우리 유치원 선생님은 삐뚤빼뚤 그려도 잘했다고 칭찬 도장 찍어주는데."
아이의 순수한 역정에 우진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맑은 온기가 번져나갔다.
"선생님이 나쁜 게 아니라, 그분들이 찾는 모양이랑 아저씨가 만든 모양이 달랐을 뿐이야. 괜찮아, 준우야. 떨어져도 다시 만들면 되니까."
"진짜요? 또 만들 거예요?"
"응. 이번에는 저기 밖에다 둘 큰 의자를 만들 거야. 준우랑 준우 엄마랑, 슈퍼 할머니랑 다 같이 앉아서 아이스크림 먹을 수 있는 의자."
"와! 진짜요? 나도 도울래요!"
준우가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우진은 아이에게 작은 사포 한 장을 쥐여주며 남은 자투리 나무 조각을 건넸다.
사포를 쥐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무를 쓱싹쓱싹 문지르는 아이의 정수리 위를 우진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과거 그곳에 아른거리던 미래의 예고선도, 행동을 제약하던 보이지 않는 사각의 틀도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아이의 미래는 무한한 우주의 진공처럼 비어 있었고, 그렇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실패할 수도 있고,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일어나 다시 걸어갈 수 있는 권리가 아이의 작은 어깨 위에 오롯이 얹혀 있었다.
6. 서랍 속의 낡은 시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며 상도동 골목에 붉은 노을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준우를 엄마 품으로 무사히 돌려보내고 작업실 안을 정리하던 우진은, 작업대 맨 아래쪽 깊숙한 서랍을 열었다.
공구와 샌딩 페이퍼가 어지럽게 쌓인 서랍 안쪽 구석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낡은 가죽 필통 하나가 보였다.
우진이 필통을 꺼내 지퍼를 열었다.
그 안에는 과거 태성C&I 기획2팀 시절, 회의 때마다 결재판 옆에 꽂아두었던 은색 볼펜과 사원증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깔려 있던 작은 종이쪽지 하나.
15년 전 실종되었던 아버지 강정호가 남겼던 연구 수첩의 복사본 파편이었다.
[엔트로피의 보존과 궤도의 필연성: 닫힌 계(Closed System) 내부의 모든 입자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렬된다.
인간의 선택 역시 통제망 내부에서 단 하나의 최적해(Optimal Solution)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메마르고 정밀했던 옛 필적.
세상을 거대한 기계 장치로 보고, 인간을 그 안에서 삐걱거리는 부품으로 여겼던 과거의 시스템.
그 시스템 속에서 우진은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완벽한 톱니바퀴가 되기를 강요받았었다.
실패는 곧 파멸이었고, 규격 이탈은 곧 폐기였다.
우진은 그 쪽지를 조용히 뒤집었다.
뒷면의 하얀 여백에 4B 흑연 연필을 대고 꾹꾹 눌러썼다.
[인간은 닫힌 계가 아니다.
실패는 궤도의 붕괴가 아니라, 새로운 우주가 시작되는 틈새다.]
연필 끝이 종이를 긁으며 사각거리는 단단한 소리를 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적어 내려간 새로운 삶의 정의였다.
우진은 쪽지를 다시 가죽 필통 속에 고이 접어 넣었다.
버리거나 불태우지 않고, 자신이 걸어온 궤적을 잊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작업실 문가에 기대어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어스름이 내리는 골목길 가로등이 하나둘 주황색 불을 밝히고 있었다.
복덕방 할머니가 쟁반에 갓 끓인 바지락 칼국수 냄비를 이고 뒤뚱거리며 언덕길을 올라오고 있었고, 그 뒤를 서연이 웃으며 반찬통을 들고 따르고 있었다.
"강 목수! 문 열어! 국수 불어 터지기 전에 얼른 먹어야지!"
할머니의 우렁찬 목소리가 골목의 정적을 시원하게 깼다.
"예, 할머니! 지금 나갑니다!"
우진이 환하게 웃으며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문을 활짝 열었다.
밤하늘 저 높이, 사각 격자망이 영구히 지워진 서울의 하늘 위로 수억 년 전의 빛을 품은 별들이 저마다의 불규칙한 궤도로 자유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실패해도 괜찮았다.
틀려도 상관없었다.
내일은 다시 새로운 먹줄을 튕기고, 새로운 나무를 깎으면 되니까.
살아있다는 것은, 그렇게 매일매일 실패할 용기를 품고 백지 위에 첫 발을 내딛는 일이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