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 너머로
1. 새벽안개와 흩어진 파편
남원(南原)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새벽은 유난히 차가웠다.
요천(蓼川) 물줄기를 타고 번져온 짙은 물안개가 삼거리 어귀의 낮은 기와지붕들을 잿빛으로 덮어 누르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 틈으로 들이치는 축축한 바람에서는 밤새 뿜어져 나온 붉은 래커 페인트의 독한 신나 냄새와 비린 흙냄새가 뒤섞여 풍겼다.
산산조각 난 통유리창 파편들은 콘크리트 바닥 위에 마치 은빛 비늘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바스러지는 유리가 사각거리며 섬뜩한 비명을 질렀다.
한지유는 쪼그리고 앉았던 무릎을 천천히 폈다.
손등을 스친 유리 파편 때문에 찢어진 살갗에서는 피가 배어 나와 굳어 있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손등을 타고 손목 안쪽 맥박까지 뻐근하게 울렸다.
하지만 지유는 상처를 살필 겨를조차 없었다.
방금 전 골목 저편으로 요란하게 흙탕물을 튀기며 사라진 남원경찰서 중앙파출소 순찰차의 붉은 경광등 잔상이 망막에 박힌 채 지워지지 않았다.
“학생, 어린 나이에 부모 대신 가게 꾸려가는 건 기특한데 말이야. 법이란 게 그렇게 감정으로 되는 게 아니야.”
비아냥거리던 늙은 경사의 얼굴과, 그 옆에서 귀찮다는 듯 하품을 씹어 삼키던 젊은 순경의 번들거리던 눈빛.
그들은 피해자인 자신을 향해 혓바닥을 차며, 마치 이 모든 난장판이 상인들의 정당한 개발을 가로막은 어린 계집의 오기 때문이라는 양 훈계를 늘어놓았다.
지유는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메모 수첩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볼펜 심으로 거칠게 눌러 쓴 경찰관들의 소속과 관등성명, 출동 시각, 그리고 그들이 내뱉은 직무유기 발언들이 종이가 찢어질 듯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며 수첩 모서리가 하얗게 짓이겨졌다.
‘이게 너희들이 말하는 법이구나.’
가진 자들의 탐욕에는 비단길을 깔아주고, 빼앗긴 자들의 피눈물 앞에서는 등을 돌리는 법.
아버지 한석규(韓錫奎)의 과수원을 빼앗아 갔던 그 시절의 서류더미 위에도 틀림없이 이런 법의 도장이 찍혀 있었을 것이다.
지유는 수첩을 앞치마 깊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바닥에 뒹굴고 있던 넓은 투명 박스 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2. 거친 손길과 날카로운 파편
가게 안쪽 조리대 밑에서 꺼내 온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손에 쥐었을 때, 손등의 상처가 다시 터져 피 한 방울이 투명한 유리 파편 위로 뚝 떨어졌다.
지유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붉은 핏방울이 차가운 유리 위에서 둥글게 맺혔다가 흐릿하게 번졌다.
“지유야, 손!”
가게 문짝에 임시로 덧댄 합판을 밀치며 들어오던 최민재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신문사 편집국에 사건 보고를 올리고 시청 출입기자실을 들렀다 온 길인지, 그의 낡은 야상 점퍼는 땀과 새벽이슬에 젖어 있었다.
“너 손등에서 피가 계속 나잖아. 내가 치울 테니까 어서 보건소든 약국이든 가자, 응?”
민재가 떨리는 손으로 지유의 손목을 조심스레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지유는 민재의 손길을 가만히 비껴내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민재야. 살짝 긁힌 거야.”
“살짝 긁히긴 뭐가 살짝 긁혀! 뼈 보일 뻔했어, 이 미련한 바보야! 깡패 새끼들이 쇠파이프 들고 설친 것도 모자라 경찰 놈들까지 그따위로 굴었는데, 너 왜 울지도 않아? 왜 소리 한번 안 지르고 이러고 있냐고!”
민재의 목소리가 젖은 흙바닥에 메아리치듯 갈라졌다.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부패한 남원의 거대한 벽 앞에서 느끼는 청년의 무력감이 그의 두 눈을 벌겋게 충혈시키고 있었다.
지유는 빗자루를 꼭 쥔 채, 깨진 유리 조각들을 쓸어 담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울면 지는 거잖아.”
“지유야…….”
“내가 여기서 주저앉아 울면, 저 사람들이 제일 먼저 웃을 거야. 지레 겁먹고 도망칠 거라고, 애송이라서 별수 없다고 손가락질하겠지. 난 안 울어. 한 방울도 안 보여줄 거야.”
지유의 목소리는 파편처럼 날카로웠지만, 동시에 깊은 요천 강바닥의 조약돌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민재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주먹을 쥐었다.
그는 지유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맨손으로 커다란 유리 조각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손 베여. 장갑 끼고 해.”
“너도 맨손이잖아. 잔말 말고 비켜, 내가 다 쓸어낼 테니까.”
두 사람은 말없이 바닥을 치웠다.
바스러진 유리 가루가 쓰레받기에 쓸려 들어갈 때마다 사락사락 거친 쇳소리가 났다.
카운터 앞, 붉은 페인트로 휘갈겨졌던 ‘다음은 네년 목이다’라는 살벌한 문구는 신나를 묻힌 걸레로 몇 번을 문질러도 핏빛 흉터처럼 붉은 얼룩을 짙게 남겨두고 있었다.
그 흉측한 낙인을 지워내기 위해 지유는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손바닥이 짓무르고 걸레가 붉은빛으로 물들 때까지, 지유는 단 한 번도 허리를 펴지 않았다.
3. 금이 간 유리창을 깁다
바닥의 파편을 대강 치워낸 뒤, 지유는 남아 있는 유리창 틀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산산조각 나 구멍이 뻥 뚫린 중앙부와 달리, 창틀 가장자리에는 여전히 날카로운 유리 칼날들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간 금들이 유리면 전체를 위태롭게 뒤덮고 있었다.
작은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어 닥치면 당장이라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새 유리로 갈아야 해. 오늘 낮에 유리 가게 불러서…….”
민재가 주머니를 뒤적이며 지갑을 꺼내려 했다.
지유가 손을 뻗어 민재의 팔을 부드럽게 눌렀다.
“새 유리를 끼워봤자 오늘 밤에 또 깨러 올 거야.”
“뭐?”
“그자들은 우리가 겁먹고 포기할 때까지 부술 거야. 지금 돈 들여서 새 유리를 맞추는 건 저들이 던진 칼날 위에 돈을 얹어주는 거나 다름없어. 어머니 병원비도 빠듯해. 이런 데 쓸 돈 없어.”
지유는 굵은 투명 박스 테이프의 끝을 이빨로 물어 뜯어냈다.
짜르륵, 정적을 가르는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접착 테이프가 길게 풀려 나왔다.
지유는 의자를 가져와 그 위에 올라섰다.
손을 뻗어, 흉측하게 금이 간 유리창의 가장 높은 곳에 테이프를 붙였다.
‘X’ 자로 엇갈리게, 그리고 틈새를 촘촘하게 엮어가며 테이프를 덧발랐다.
유리창에 힘이 가해질 때마다 찌르르하는 미세한 파열음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조금만 힘을 잘못 주면 날카로운 파편이 손목 동맥을 그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작업이었다.
“조심해, 지유야. 내가 잡고 있을게.”
민재가 의자 다리를 꽉 붙들며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다.
지유는 대답 대신 테이프를 거듭 눌러 붙였다.
투명한 테이프가 겹겹이 쌓이며 깨진 유리의 금을 단단히 옥죄었다.
테이프를 붙이는 지유의 손길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마치 살점이 찢겨 나간 상처 위에 붕대를 감아 올리듯, 부서진 자신의 삶을 온 힘을 다해 봉합하는 손길이었다.
금이 간 틈새로 아침을 깨우는 차가운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바람결에 지유의 짧은 단발머리가 흩날렸다.
테이프 너머로 비치는 남원의 풍경은 온통 일그러져 있었다.
비뚤어진 전신주, 금이 간 요천 둑길의 버드나무, 그리고 저 멀리 안개 속에서 육중한 성채처럼 솟아 있는 남원시청의 회색 건물.
그 일그러진 세상의 한가운데에, 지유는 테이프를 단단히 문지르며 서 있었다.
‘부숴봐. 얼마든지 부숴봐.’
네놈들이 깨뜨릴 때마다 나는 기워 붙일 것이다.
네놈들이 빼앗으려 할 때마다 나는 더 깊숙이 뿌리를 내릴 것이다.
너희들이 휘두르는 그 폭력은 강함의 증거가 아니라, 카운터 밑에 숨겨진 진실을 두려워하는 비겁한 자들의 발악일 뿐이니까.
4. 양철 상자 속의 흑청색 약속
가게 안팎의 정리가 끝났을 무렵, 동쪽 지리산(智異山) 능선 너머로 희미한 여명이 번져오기 시작했다.
민재는 시청과 신문사 동향을 더 알아봐야 한다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골목을 나섰다.
“하은이한테는 연락해 뒀어. 곧 올 거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신문사로 전화해, 지유야.”
떠나는 민재의 등 뒤로 문을 걸어 잠근 지유는 홀로 텅 빈 김밥집에 남았다.
주방 가스레인지 불을 켜고 물을 얹었다.
새벽부터 핏물과 먼지를 뒤집어쓴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지유는 미닫이문을 열고 가게 안쪽에 딸린 작은 단칸방으로 들어갔다.
한 사람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비좁은 방 안에는 낡은 목제 책상 하나와 얇은 이부자리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지유는 책상 앞에 앉아 서랍을 열었다.
서랍 깊숙한 곳, 낡은 양철 과자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뚜껑을 열자 익숙하고 단정한 잉크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 안에는 차곡차곡 쌓인 백여 장의 편지들이 가지런히 묶여 있었다.
서울 신림동(新林洞) 고시촌에서 광화문 우체국 소인을 달고 날아왔던 성재환(成宰桓)의 관제엽서들과, 지유가 밤마다 써 내려갔으나 끝내 부치지 못하고 간직해 둔 답장들이었다.
지유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엽서 뭉치 맨 위에 놓인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모서리가 조금 닳아 있는 반명함판 증명사진.
단정한 교복 차림에 흐트러짐 없는 눈빛을 한 소년, 성재환의 얼굴이 담긴 학생증 사진이었다.
봄날 광한루원(廣寒樓苑) 오작교(烏竹橋) 위에서, 서울로 떠나기 직전 재환이 제 학생증 모서리를 가위로 잘라 지유의 손바닥에 쥐여주었던 그 사진.
지유의 손끝이 사진 속 재환의 눈매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차갑게 굳어 있던 가슴 한구석이 걷잡을 수 없이 아려왔다.
사진을 뒤집자, 하얀 뒷면에 흑청색 잉크로 정갈하게 새겨진 글씨가 나타났다.
‘약속. 반드시 돌아온다. 成宰桓’
지유가 남원여고 앞 문구점에서 용돈을 모아 선물했던 그 흑청색 잉크였다.
깊은 밤하늘빛을 머금은 글씨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바래지 않은 채 여전히 선명한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글씨를 바라보던 지유의 눈가에 끝내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고였다.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려 손등의 피딱지 위로 떨어졌다.
지유는 떨리는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훔쳐냈다.
‘재환아.’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지 못했다.
그 이름 석 자를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지난밤의 공포와 외로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5. 약속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지유는 가슴에 사진을 꼭 품어 안았다.
차가운 인화지 너머로 재환의 체온이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서울 신림동의 좁은 고시원 방에서, 뼈를 깎는 고통으로 법전을 파고들고 있을 소년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재환은 지유에게 보낸 편지마다 무릎 흉터는 다 나았는지, 밥은 거르지 않는지, 남원의 바람은 여전히 따뜻한지를 물어왔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외로움이나 고단함 따위는 단 한 줄도 적지 않은 채, 오직 ‘법복을 입고 돌아가겠다’는 그 한마디만을 묵직하게 새겨 넣던 사람이었다.
지유는 알고 있었다.
재환이 그곳에서 홀로 치르고 있는 싸움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를.
자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죄악을 제 손으로 단죄하기 위해, 피붙이의 가슴에 사법의 칼날을 겨누기 위해 스스로를 유폐시킨 채 청춘을 불사르고 있다는 것을.
‘약속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야.’
지유의 입술에서 작은 읊조림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서글픈 탄식이 아니라, 영혼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서약이었다.
그 애가 서울의 차가운 단칸방에서 홀로 법을 벼리고 있다면, 나는 이곳 남원의 깨진 유리창 뒤에서 우리의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그 애가 돌아와 정의를 세울 수 있도록, 그 애의 발걸음이 머물 터전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지유는 책상 서랍에서 흑청색 잉크병을 꺼냈다.
유리병 바닥에 여전히 반쯤 남아 있는 깊고 푸른 잉크.
그리고 낡은 펜촉을 잉크에 푹 적셨다.
하얀 편지지 위에 지유는 펜을 대었다.
사각, 사각.
새벽의 고요를 깨뜨리는 펜촉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재환아, 남원은 오늘도 맑아.
요천 변의 수양버들은 가을바람을 맞아 더 짙은 푸른빛을 내고 있어.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조금씩 차도를 보이고 계시니 아무 걱정하지 마.
가게에는 여전히 아침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가득하고, 민재와 하은이가 곁에서 큰 힘이 되어주고 있어.
나는 매일 아침 오작교를 건너는 꿈을 꿔.
네가 돌아오는 날, 가장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김밥 한 줄을 말아줄 수 있도록 나는 여기서 내 자리를 단단히 지키고 있을게.
그러니 밥 잘 챙겨 먹고, 감기 조심해.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던 그 말, 나는 너를 믿어.’
거짓말이었다.
가게 유리창은 산산조각 났고, 벽에는 살인 협박 낙서가 새겨졌으며,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지유는 이 편지를 부칠 생각이 없었다.
이것은 재환을 속이기 위한 거짓이 아니라, 언젠가 재환이 돌아왔을 때 부끄럽지 않은 얼굴로 건네주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呪文)이었다.
지유는 편지를 반듯하게 접어 양철 상자 속, 어제 쓴 편지 바로 위에 얹었다.
그리고 상자 뚜껑을 닫았다.
탁,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지유의 눈빛에서 흔들리던 슬픔이 완전히 걷혔다.
그 자리에는 서릿발처럼 차갑고 맑은 결기만이 오롯이 차올라 있었다.
6. 문밖의 그림자
단칸방을 나온 지유는 다시 홀로 선 김밥집 주방으로 들어섰다.
앞치마를 단단히 여며 매고, 찬물에 손을 씻었다.
손등의 상처가 쓰라리게 타올랐지만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큰 양푼에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밥을 퍼 담고, 방앗간 참기름과 굵은 소금을 둘렀다.
고소한 참기름 향이 피비린내와 신나 냄새로 물들어 있던 가게 안을 천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늘 해오던 방식 그대로였다.
세상이 아무리 더럽고 흉포하게 굴어도, 밥을 짓는 손길만큼은 정직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
지유는 단무지를 썰고, 달걀지단을 부치고, 시금치를 무쳤다.
테이프로 덕지덕지 기워 붙인 통유리창 너머로 아침 햇살이 비쳐 들었다.
유리에 난 무수한 금들이 햇빛을 받아 무지갯빛 파편으로 반짝였다.
흉측한 상처였던 금들이, 마치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가는 푸른 잎맥처럼 찬란하게 부서져 내렸다.
지유는 김밥 발을 펴고 김 한 장을 얹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가게 셔터문 틈새로 길게 늘어지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골목 어귀에서 육중한 배기음을 내뿜으며 멈춰 서는 자동차 소리.
단순한 승합차나 트럭의 소리가 아니었다.
낮고 묵직하게 가라앉은 최고급 엔진 소리.
지유의 손이 김밥 발 위에서 우뚝 멈추었다.
테이프로 엮어놓은 깨진 유리창 너머로, 검은색 대형 세단 로얄 살롱 한 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보닛 앞부분에 부착된 남원시 상징 봉황 깃발이 아침 바람에 서늘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뒷좌석 문이 열리고, 번쩍이는 검은 가죽 구두가 아스팔트 바닥을 디뎠다.
강태석(姜泰錫) 남원시장이었다.
새벽의 테러가 실패로 끝나고, 어린 여학생이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다는 보고를 받은 권력의 정점.
그가 직접, 비열한 미소를 입가에 띤 채 깨진 유리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